[2018년10월호] [영화이야기] 어른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 진짜 어른 맞아요?" <어른도감> 
등록 2018.11.0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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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 진짜 어른 맞아요?": 영화 <어른도감> 

(개봉 2018년, 한국, 감독: 김인선 / 출연: 엄태구, 이재인, 서정연)

성공은 누구보다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실패는 남의 것으로 나누는 사회. 타인을 느끼길 거부하고, 자기이익이라는 작은 유리벽 속으로 스스 몸을 숨기는 사회. 어린 시선으로 보면 그런 어른들의 사회가 비굴해 보였지만 어느덧 ‘책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피부로 체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20대에서 30대로, 청년에서 어른으로.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넘어 책임 회피와 자기 보존의 역학관계에서 꼰대를 합리화하는 스스로의 나이듦을 발견한다. 문자 그대로 어른다운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 풍토 속에서 김인석 감독의 신작  <어른 도감>은 묻는다. 

“당신 도대체 진짜 어른 맞아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보고 찔렸을 것 같은 김인선 감독의 도발은 아버지를 잃은 열네 살 소녀 물음으로 부터 시작한다.

 한 겨울 홀로 앉아 있는 경언(이재인)은 외로워 보인다. 카메라는 이내 오늘이 아버지의 상을 치루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누구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이지만 어린 경언은 꽤나 의연하게 슬픔과 맞서 싸운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함만이 가득한 프레임 속에, 뜻밖의 손님이 등장한다. 자신을 아버지의 동생, 삼촌이라고 소개하는 황재구(엄태구).  생면부지의 삼촌이지만 어린 경언과 삼촌 재구의 불편한 동거가 영화의 앞부분에 이어진다. 자신의 직업을 셰프라고 소개하며, 재구는 슬퍼보이는 경언에게 따뜻한 요리와 밝은 농을 던진다.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온 경언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생면부지의 삼촌이 아버지에 대한 보험금에 대해 묻자, 경언은 그의 핸드폰까지 백업하며 그를 조심스럽게 관찰한다.

 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은 재구가 경언의 가족사진 속에서 자신을 지목했을 때다. 사진 속 가족이라곤 재구 삼촌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경언은 사진 속 어린 삼촌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본다. 하지만 경언의 말처럼 제대로 된 어른이었다면 삼촌 재구가 그녀를 지금에서야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언은 그를 믿고 후견인으로 지정해 놓은 상황에서, 되려 재구는 형의 보험금 8000만원을 가지고 사라진다. 이어진 활극에서 경언은 삼촌을 결국 찾게 되지만 재구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책임있는 어른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아버지의 보험금은 모두 썼음은 물론 보험 사기, '제비' 생활, 사업 실패 등의 행적이 탈로난 상황. 그 무엇보다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회피하려고 하는 재구의 습관에서 제대로 된 어른이 가져야 할 마땅한 책임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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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과 양심보다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망설임없이 거짓말을 밥먹듯 일삼는 재구. 그에게 보험금을 되찾는 방법은 아이러니하지만 그의 딸이 되어주는 것이다. 재구는 산악회에서 만난 약사 점희(서정연)를 꼬시려하고, 점희와의 연대감을 만들기 위해 경언을 자신의 딸이라 속인다.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약사 점희와 사고뭉치 삼촌 재구, 그리고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린 소녀 경언은 그렇게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영화는 새로운 균열을 향해간다. 거짓말에 무감각한 어른 재구에 비해 어린  경언은 자신의 거짓에 도덕적 죄책감을 가지고 타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아무도 믿지 말라는 경언의 경고를 깨닫고 재구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점희는 자기보호라는 벽에 스스로를 가두고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삼촌 재구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만든 타인들의 상처에 뒤돌아 그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고 현실 밖으로 도망쳐 나간다. 제대로 책임과 봉합없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삶.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속 어른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어른도감'에 수록된 또 다른 인물인 경언은 다르다. 완벽하지 않지만 부족한 우리들을 인정하고 마지막까지 타인을 느끼길 시도한다. 점희를 찾아가 진심이 담긴 편지를 전하고 아버지의 보험금이 아닌 삼촌, 그 존재 자체를 찾아 떠난다.

 결국 만나게 된 두 사람. 마지막 만남에서 재구는 경언을 엄마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기름값이 없을 정도로 궁핌하지만 재구는 경언을 데리고 시골에 있는 한 집으로 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마지막 도덕적 시험대에 올려 놓는다. 마치 재구가 경언을 산골에 있는 집에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비추기 때문이다. 재구는 경언을 엄마에게 데려다 주고 먼저 간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까지도 도덕적 책임을 거부한 채 그녀를 버리고 도망간 것인가? 영화는 결말을 끝까지 말해주지 않고 되려 경언의 자유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엄마의 집을 등지고 삼촌을 찾아 내려온 경언은 기름이 없어 멈춘 삼촌을 발견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여러 짐작이 가능하지만 영화는 다시 함께 걷는 두사람의 뒷모습만으로 도덕과 규범, 제도와 혈연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책임지는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어린 경언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를 여는 첫 물음을 던진 경언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답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이재홍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