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여는글] 가짜뉴스와 주역(周易), 그리고 상보성 원리
등록 2019.08.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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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축사에서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기자 정신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된 한상혁 후보자는 “최근 문제 되는 가짜뉴스와 허위조작 정보는 표현의 자유 보호 범위 밖에 있다”면서 규제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정부의 규제에 반대하며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의 견해를 확인해보자. 이준웅은 2018년 『서울대학교 法學』에 게재된 논문 “모든 더러운 말들: 증오발언 규제론 및 규제반대론 검토”에서 ‘민주적 자기통치 이론’을 근거로 하여 국가가 공적 영역의 증오발언을 처벌하겠다고 나설 수 없으며, 강건한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개별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칙을 자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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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의 주장은 볼린저(Lee C. Bollinge)의 관용사회론을 배경으로 한다. 나찌의 시위와 같은 극단적 주장까지도 수용하는 관용적 시민들로 구성된 관용사회야말로 더 많은 발언과 토론이 가능한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준웅의 결론은 “강건한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민적 관용의 역량을 신장할 필요가 있다.”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규제해야 하는가, 자율에 맡겨야 하는가? 양측의 입장이 바뀌거나 접점이 찾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역(周易)에서 답을 찾아보자.

 

주역은 점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기록이 축적되어 가치를 인정받게 됨으로써 해설서로 10종의 역전(易傳)이 나오고, 역경(易經)이 되었다. 그리고 학문으로 발전하여 역학(易學)이 되었다. 주역에는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주역의 핵심은 음양의 조화다.

한번 음(陰) 하고 한번 양(陽)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역전의 하나인 『계사전』에 나오는 얘기다. 주역은 자연철학이요 과학이다. 인식의 대상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다. 그러면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와 자율의 대립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며, 강한 것은 양이고 부드러운 것은 음이듯이, 규제는 양이고 자율은 음이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연의 이치요 삶의 지혜다. 정부는 규제를 하고, 시민사회는 자율의 노력을 함으로써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는 ‘상보성 원리’를 제기하여 양자역학이 성립되는 데 기여함으로써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었다. 양자역학이란 원자 안에 전자의 운동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 전까지 사물의 운동은 뉴턴역학으로 완벽하게 설명이 되었지만 전자의 운동은 달랐다.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과 달리 전자는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확인할 수 없다. 전자는 파동으로 움직이다가 관찰하면 입자로 나타난다. 파동으로 관찰하면 입자로서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고, 입자로 관찰하면 속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보어는 이 난제를 상보성 원리로 해결하였다. 입자모델과 파동모델이 동시에 성립하지 않으니 상보적으로 적용하여 전체를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라는 입자모델과 슈뢰딩거의 파동모델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상보성 원리에 따른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하여 물리학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 보어는 ‘주역’에서 상보성 원리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음일양이다. 보어는 주역에 심취해서 태극문양이 들어간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니기도 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화생물학자 에얼릭(Paul R. Ehrlich)은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이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본성은 유전적,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의 다양한 산물이기 때문에 문화적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식적, 집합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유전적으로 타고나지만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변화하고 양육된다.

촛불 시민과 태극기 시민의 본성은 다르다. 문화적 진화 및 양육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영향이다. 태극기 시민들의 경우, 독재정권 시절의 통제된 언론의 허위조작정보가 본성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태극기 시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들은 이제 유튜브의 가짜뉴스에 꽂혀서 왜곡된 신념이 강화되는 중이다. 따라서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자율도 필요하지만 규제의 노력도 필요하다.

독일 정부는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에 대해 최고 602억 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정부가 가짜뉴스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은 없다. 일음일양(一陰一陽) 내지는 상보성 원리, 그리고 진화론의 지혜로 풀어 가야 할 일이다. 정부는 정부의 일이 있고, 시민사회는 시민사회의 일이 있다. 관용사회는 미래의 이상이고 가짜뉴스의 폐해는 현실이다. 규제 없는 자율은 방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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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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