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회원인터뷰] 숨어있는 보석 같은 사람, ‘시민회원 정찬미’
등록 2019.08.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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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저함이 없이 흔쾌하다. 이번 회원소식지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그랬다. 평일엔 인터뷰가 어려우니,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로 와주실 수 있는지 건넨 질문에 “네, 물론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찬미 회원의 집은 경기도 광주고, 큰 딸 태연이(13살), 큰 아들 태형이(10살), 작은 아들 민재(9살)의 엄마이기도 하다. 출근하느라 평일에 함께하지 못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늘어지게 눈을 붙이는 휴일 아침과 맞바꾸는 거였지만, 주저 없이 답하며 오히려 토요일에 출근하는 활동가들을 걱정했다. 민언련 광주순례에도, 캠프에도, 급하게 부탁하는 원고에도 언제나 ‘갈게요, 할게요’라고 답하는 고마운 회원이다.

 

올해 봄부터 팟캐스트 ‘미디어탈곡기’에 회원인터뷰가 나가기 시작했다. 그전에 회원을 만나 따로 인터뷰를 하고 글로 옮겨 소식지에 싣던 작업을 넘어, 회원과 마이크 앞에서 인터뷰하고, 그 음성이 약간의 편집을 거쳐 유튜브로 나가는 방식이다. 어렵지 않을까 걱정한 활동가들의 우려와 달리, 인터뷰에 응하는 회원들은 숙달된 방송인처럼 참여했고, 회원인터뷰는 많은 이들이 즐겨 들었다. 해서, 이번 달부터는 음성 뿐 아니라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영상까지 함께 내기로 했는데, 그 첫 타자가 정찬미 회원이었다. 불편할 수 있는 제안에도 또 흔쾌히 응해 준 정찬미 회원, 인터뷰 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시민회원 정찬미’입니다

김언경 먼저 소개부터 해주세요.

정찬미 안녕하세요, 민주언론시민연합 시민회원 정찬미입니다.

김언경 시민회원이라는 말,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말인데요, 민언련이 해직 언론인과 출판인으로 구성됐다가 1990년대부터 시민들을 회원으로 받기 시작했어요. 그때 들어온 저 같은 회원들은 ‘시민회원’이라고 했어요. 언론인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정체성으로 들어온 회원들의 가치가 중요하다라고 해서요. 그런데 이젠 모두 ‘시민회원’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됐는데, 이렇게 들으니 반갑네요.

정찬미 저는 그런 연혁과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김언경 덕분에 멋진 표현을 오랜만에 듣게 됐습니다. 정찬미 회원 가족은 민언련에서 매우 유명합니다. 사실 진작에 회원 인터뷰에 모셨어야 했는데, 정찬미 회원이 일을 하고 계셔서 평일에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을 못 드렸어요. 이번 인터뷰는 토요일 오전에 시간을 잡아 요청을 드렸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처음 민언련과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요.

정찬미 2007년 1월에 결혼해서 12월에 첫째 아이를 낳았어요. 첫째를 낳고 2009년에 아이를 다시 갖게 됐죠. 이명박 정권 때라 아이 태명을 ‘민주’라고 지었는데, 유산이 되고 말았어요. 그 때, ‘아 지금은 민주가 살 수 없는 시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창 이명박 정권이 언론장악을 시도하고 탄압하는 시기여서, ‘내가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민언련이라는 단체를 찾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에 다시 아이를 갖게 됐는데, 아이 태명을 ‘희망’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 둘째 태형이에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땐 딱히 뭐를 할 수 있는지 몰라서 후원만 했고, 애기를 다 키우고 뭔가를 해봐야겠다고만 다짐했었어요.

김언경 원래 언론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정찬미 학교 다닐 때 어렴풋이 언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뭘 딱히 한 건 없어요. 수업에서 매스 미디어 수업 들은 게 전부였어요. 학생회 활동 정도?

김언경 보통 ‘정권’에 상황에 따라 아이 태명을 짓거나 하진 않아요. 그래서 뭔가 운동을 했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줄 알았어요. 제 주변 지인들도 박근혜 정권 때 촛불이 일어나니 그때 뭔가 알기 시작했지, 이명박 정권 때는 자기 사는 거에 바빴던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시민의식이 강한, 말 그대로 ‘깨어있는 시민’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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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의 첫 만남, ‘광주순례’…“모든 날이 좋았다”

김언경 정찬미 회원과 처음 만난 게 2015년 광주순례였어요. 아이 셋을 카시트에 태우고 온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죠.

정찬미 항상 가고 싶었는데 애기가 너무 어리고, 남편이 계속 외국에 있을 때라 혼자 육아를 해야 했어요. 집에 날아오는 소식지나, 메일에서 광주순례 홍보가 오면, 언제 갈 수 있을까 시점을 보고 있었죠. 2015년에는 막내가 유모차를 타면 갈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한 해, 한 해 상황은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 거잖아요. 얼마나 더 힘든 가의 문제지. 그래서 애들에게 가고 싶은지 물어보고, 엄마 말을 잘 듣겠노라는 다짐을 받고 참가했어요. 갔을 때 워낙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김언경 전에 광주에 가본 적이 있었나요?

정찬미 광주에 연고가 없는데, 대학 때 딱 한번 광주를 가 본적이 있었어요.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그 수업을 째고, 친구한테 가보자고 했죠. 우리가 한번 광주는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런데 막상 왔는데, 하나도 아는 게 없어서 뭘 봐야할지, 어떻게 봐야하는지 몰라서 그냥 쓱 둘러보고만 갔어요. 다녀오긴 했는데, 뭘 보고 왔는지 뭔가 해결되지 않은 기분이었죠. 그런데 민언련 광주순례를 갔는데 너무 설명을 잘해주시는 거예요. 저는 민주열사들이 구묘역에 계신지도 몰랐어요. 2015년에 구묘역에 처음 가보고, 설명을 듣고 하는 게 너무 좋았아요. 왠지 모르게 광주에는 계속 빚진 마음이 있어요. 아직 진상규명이 다 되지도 않았잖아요.

김언경 광주에는 특별한 마음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광주에 와서 1년동안 살아갈 힘을 얻고 가는 회원들도 많고, 정찬미 회원이 말한 그런 부채감 얘기하며 눈물 짓는 분들도 계시죠.

정찬미 2015년 참석 이후, 광주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매년 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어요. 항상 가족들과도 이때쯤 가겠거니 하고 일정을 미리 잡아둬요.

김언경 광주에 아직 와보지 못한 회원분들에게 민언련 광주순례를 추천하는 멘트 좀 해주세요.

정찬미 광주 묘역에는 혼자 가기 힘들어요. 이렇게 잘 챙겨서 설명해주는 자리는 없어요. 또 함께 가야 그 덕에 가게됩니다. 후원만 하고 계시는 많은 회원분들, 내년에는 꼭 함께해주세요. 민언련 광주순례는 아이가 있던 없던, 친구가 있던 없던 오실 수 있습니다. 한 번, 첫걸음이 중요합니다.

김언경 처음 만났던 민언련, 어떤 느낌이었어요?

정찬미 그전에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 너무 좋았어요. 다 투사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편한 분위기 일 줄 몰랐거든요. 광주 간 첫해에 이용마 기자님도 회원으로 함께 참석했어요. 이용마 기자님이 본인도 쌍둥이 아이가 있다고 하면서, 저희 아이들 목마도 태워주시고 같이 돌봐주셨죠. 그 때 너무 감사해서 다음에 만나면 꼭 인사를 드려야지 했는데, 아직 못 뵀습니다. 언론인들은 세고 날카롭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푸근하고 따뜻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민언련에게 받았던 그 첫 인상이 계속 민언련에 발걸음 하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김언경 사실 정찬미 회원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신 것은 정찬미 회원이 민언련 행사의 ‘홍보대사’격이기 때문입니다. 광주순례도 그렇지만, 회원캠프도 정찬미 회원 가족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죠. 이제 곧 회원캠픈데, 빠지지 않고 매년 회원캠프에 참석하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정찬미 회원캠프가 달라졌어요. 처음엔 캠프를 갔을 때는 활동가들이 애들을 봐줬어요.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보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생겼죠. 사실 전 애가 셋이라 이렇게 데리고 가는 게 민폐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캠프에 가니, 애기 셋인 집이 너무 많아요.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아이 있는 집만 오는 게 아니라, 청년들도 오고, 오래된 민언련 회원들과도 만날 수 있어서 어떤 분들이나 오셔도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인 거 같아요.

김언경 맞아요. 처음에는 민언련 회원인 아빠 혼자 왔다가, 와보니 ‘아내가 같이 와도 좋겠네’라는 생각으로 다음엔 가족들과 함께 와요. 그러면 아내분도 어울리면서 스트레스 풀고 가시죠. 아이를 키우다보면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데, 민언련 캠프에서 푸는 거죠.

정찬미 저는 아직 못했는데, 다음 해에 친척이나 지인을 데리고 오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꼭 챙겨보는 민언련 컨텐츠는 ‘빡뉴스’

김언경 민언련 홍보대사로 광주순례와 회원캠프를 열심히 광고해주셨는데, 이런 거 말고 민언련 컨텐츠는 어떠세요?

정찬미 전 최근에 시작한 ‘빡뉴스’가 너무 좋더라고요. 처음에 보고, 민언련이 트렌드에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엔 아이들도 유튜브에서 긴 컨텐츠를 잘 안봐요. 컨텐츠가 짧아지고 추센데, ‘1분’이라는 컨셉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제가 미디어 탈곡기는 다 챙겨서 듣고 있진 못하거든요. 출퇴근 시간이 길지 않아서 따로 다 챙기질 못해요. 그런데 ‘1분 컨텐츠’는 안 들을 수가 없잖아요. 1분으로 요약해서 핵심만 알려주는데...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거 같아요. 다른 컨텐츠를 만들더라도, 이런 식으로 만들면, 사람들에게 민언련을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김언경 이 아이디어는 EBS <지식채널-e>를 만들던 김진혁 이사가 낸 거에요. 미디어탈곡기도 그렇고 우리가 말이 너무 길어지고 중언부언 되는 게 있어서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저런 고민을 얘기하는 회의에서 김진혁 이사가 1분 컨텐츠를 제안했어요. 1분안에 축약해서 말하고 1분내에 말을 못하면 폭탄이 ‘뻥’ 터지면 재밌지 않겠냐고요.

정찬미 얼마 전에 엄재희 활동가가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나가서 ‘빡뉴스’를 찍어서 올렸는데, 정말 좋았어요. 현장감이 느껴졌어요.

김언경 ‘빡뉴스’라는 컨셉이 활동가들이 얼마든지 어디서든지 찍을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다양하게 찍었으면 좋겠어요.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도 찍을 수 있잖아요. 방금 전에 뉴스를 봤는데 너무 황당했다면서 찍는거죠.

정찬미 다양한 버전으로 ‘빡뉴스’가 나오고 색다른 시도도 하면 더 좋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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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체들이 오래 평화롭게 사는 걸 꿈꾼다

김언경 혹시 민언련 말고 후원하는 단체가 또 있나요?

정찬미 카라(동물권행동), 생명의 숲, 아름다운 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을 후원하고 있어요.

김언경 후원하는 단체가 많네요. 혹시 수입에 몇 퍼센트는 사회활동을 한다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 건가요?

정찬미 처음에 시작할 땐, 종교가 있는 분들은 헌금을 내지만, 전 종교가 없으니 그만큼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김언경 정말 의식이 남다르네요. 저도 처음엔 고정수입이 오르면 딱 그만큼 올려서 사회단체에 후원하곤 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자꾸 줄이게 되더라고요. 그 단체가 뭔가 활동을 잘 안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꾸 비용을 줄인다는 개념으로 줄였던 거 같아요. 지금 들으니 반성하게 되네요.

정찬미 저는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언제까지 다닐지 몰라서, 지금 버는 돈의 비율을 정해서 막 늘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2008년에 처음 어린이 후원을 시작했는데, 그 어린이가 이제 다 커서 마지막 후원이라고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어요.

김언경 후원하는 단체를 살펴보니, 동물, 아이, 환경 이런 곳이네요?

정찬미 카라(동물권행동)는 2008년부터 했어요. 2008년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에요. 제가 사실 하는 일 중에 동물실험이 있어요. 그래서 후원을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카라 활동하는 분들이 보시면 어떻게 생각하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윤리를 다해서 하려고 해요. 윤리를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닌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변명을 하면서요.

김언경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인가요?

정찬미 신약물질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꿈은 제인구달처럼 사는 거였어요. 동굴에 있는 박쥐를 연구하고 싶었죠. 그래서 대학을 환경생태학으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제인구달도 대학을 나온 건 아니었는데, 대학을 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 거죠.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 영 맞질 않았어요. 그러다가 심리학과 수업을 교양으로 듣게 됐는데, 동물행동심리에 대해 알게 됐죠. 너무 재밌어서 생물심리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인구달과는 정반대에 직장에 들어오게 됐네요.

김언경 원래 환경 이런데 관심이 많으시군요?

정찬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환경이에요. 지구를 잘 보존해서 생명체들이 오래오래 평화롭게 사는 게 제 첫 번째 가치관이에요. 방사능이나 환경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한겨레21>에서 냈던 ‘아스콘 공장 벤조피렌 배출 사건’ 같은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김언경 고단한 삶을 살겠네요. 알면 알수록 하지 말아야하고, 쓰지 말아야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화장을 지울 때 쓰는 클렌징에 있는 알갱이가 미세플라스틱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뭘 써야하나, 무엇을 피해야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정찬미 환경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요. 후원만 하지 제 삶을 다 내놓진 못하고 있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언론 감시는 어떤 정권이어도 계속돼야 한다

김언경 후원하는 단체가 많은데,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시나요?

정찬미 이렇게 회원활동을 하는 단체는 민언련 뿐이에요. 저에게 특별한 단체고, 그래서 평생 같이 가고 싶어요. 제가 가입했을 땐 이명박 정권 때였는데,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들어섰잖아요. 이럴 땐 민언련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누군가에 민언련 가입을 권하기도 어렵고, 이쪽으로 눈을 돌리는 시민들이 많이 없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언론 권력 감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섰던지 계속 돼야하는 거잖아요. 이럴 때 잘 지켜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김언경 감사하게도 계속 가입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정찬미 이런 상황에서 가입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한 분들인거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가입하셨는지 꼭 물어보고 싶네요.

김언경 어떤 언론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세요?

정찬미 의제를 선택하는 거요. 다뤄야할 이슈를 다루지 않고, 다루지 말아야 할 이슈를 부각하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문제도 언론이 철저하게 다루지 않았잖아요.

김언경 이건 단골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언련에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정찬미 친구들이 저에게 독특하다고 해요. 몽상가적 기질이 있어서 사람 사귀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그런데 좋아하면 열심히 ‘덕질’해요, ‘덕후’처럼. 저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민언련은 좋은 사람이 많아서 자꾸 오게 돼요. 너무 자주와서 부담스러워 하실까봐 걱정이죠.(웃음) 지금 민언련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 같아요. 활동가분들도 다들 열심히 하시고, 이렇게 가면 정말 잘 되겠구나하고 생각해요.

김언경 민언련 회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정찬미 회원캠프에서 만나요!

 

‘숨어있는 보석 같은 사람’. 김언경 사무처장이 정찬미 회원과의 인터뷰 말미에, 그를 이렇게 지칭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평범한 시민’, ‘시민회원’임을 말하는 그는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라고 답했다.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시민의 힘’이 결국 우리 사회를 바꿔냈고, 지금도 바꿔나가고 있다. 민언련에 ‘숨어있는 보석’을 만나고 싶다면, 주저말고, 흔쾌히 ‘회원캠프’로 오시라.

 

인터뷰_김언경, 글_ 유민지, 사진_고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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