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호

[회원인터뷰]100년 조선・동아의 기자에게 "그 자리가 ‘편안함과 성공’이라는 인식에서 빨리 벗어나라!"(성한표)
등록 2019.12.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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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조선투위) 위원장은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에 산 증인이다. 75년 3월 조선일보에서 제작거부 농성을 하다 33명의 기자와 함께 해고된 그는 민언련, 한겨레의 탄생에 함께했다. 한겨레 부사장을 지냈고 SBS의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오랜 기간 뉴스비평을 진행한 원로 언론인이다. 올해로 조선·동아는 100주년을 맞았다. 이런 오욕의 신문들이 100년을 멀쩡하게 지낸 것 자체가 한국 언론의 위기를 상징한다. 언론 위기의 시대,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에게 길을 묻고 싶었다고 하자 그는 주저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실행위원이며 <말>지를 함께 만든 당사자이지만, 최근 언론운동의 일선에 참여하는 일이 조금 줄어들어서 맘에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언론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권력의 압박을 받은 기자들의 열패감과 패배주의가 폭발한 사건”

김언경 선생님과는 먼저 조선자유언론실천투쟁위원회(이하 조선투위) 이야기부터 해야겠지요. 사실 동아투위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조선투위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선 당시 언론의 상황부터 좀 말씀해주시죠.

 

성한표 대략 60년대 초반까지는 신문과 권력의 긴장관계가 어느 정도 유지되어왔습니다. 그런데 한일회담이 타결되면서 권력과 언론 사이의 독립적인 관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 상업차관이 들어왔는데, 언론들이 여기 관심을 가지면서 권력의 힘이 언론사들에게 스며들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의 경우 코리아나 호텔이 일본 상업차관으로 지어졌거든요. 그게 그냥 주어진 것이겠습니까. 또 코리아나 호텔이 처음에 장사가 잘 안되자 그곳을 국회의원회관으로 사용했는데요. 이 상황도 보통 관계가 아니면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언론이 조금씩 권력과 유착해 가던 것이 60년대 후반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언론이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괴리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전태일 분신 사건은 사회면 본면(당시 발간되던 4면 중 3면)도 아니고 지방뉴스 등이 실리는 4면에 아주 조그맣게 실렸거든요. 동료들과 어떻게 이렇게 보도가 나가냐고 한탄하니까 어떤 선배가 “광주 학생사건 때 조선일보가 그걸 몇 단으로 다뤘는지 아느냐, 2단인가 1단인가 이렇게 다뤘다. 그런 신문이다. 괜한 기대, 괜한 소리 말고 정신 차려라”라고 한 것이 생각납니다. 70년대 초반에 유신체제가 들어서자 권력의 압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래서 74년까지는 정말 숨죽여 지내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기자들은 정말 열패감이나 패배주의에 빠져 ‘기자하지 말고 차라리 어디 다른 거 할까’ 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지냈습니다.

 

김언경 조선투위의 계기는 신홍범・백기범 기자의 해직이었죠?

 

성한표 조선투위의 시작은 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이전에도 자유언론선언은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실천’에 방점이 찍힌 것이 달랐고요. 그래서 그때 동아일보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선언문을 신문에 실으라고 편집 책임자와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관철이 됐어요. 편집책임자도 다른 데 눈치를 보다가 동아일보가 실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실었을 겁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니까 그 다음부터 기자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매일 신문이 나오면 모니터를 해서 그걸 인쇄해서 편집국에 돌리기 시작했거든요. 그 와중에 신홍범 선생님과 백기범 선생님이 유신정권의 입장에서 쓴 외부인사의 칼럼에 대해서 항의를 했는데 그것 때문에 해직을 당했어요. 맨 앞에서 원체 그러니까 신문사에서 이 두 사람을 해직시키고 나면 좀 조용해지겠거니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불을 붙여버리는 것이 됐고, 그렇게 다음해 3월 6일 33명이 해직당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기자들이 저항하는 힘과 언론사를 앞세우는 권력이 세게 충돌한 사건이었죠.

 

공시형 제가 인터뷰를 앞두고 과거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요.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이 조선일보 선우휘 주필이 한 법정증언이었습니다. 거기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 간부들이 기자들을 따로 불러서 ‘자유언론투쟁을 우리도 해야 되지 않겠나’ 하면서 기자들의 투쟁을 종용하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성한표 지금이야 언론 자체가 권력이 되어가지고 누가 뭐라 하든 자기들 계획대로만 하지만, 그때만 해도 뭔가 권력에 너무 앞잡이가 된다는 인상은 안 주려고 애를 썼던 때입니다. 그래서 간부들이 간혹 편집국에 내려와서 내근하는 기자들한테 “우리가 1등은 못해도 2등은 해야되지 않겠어?”, “동아일보는 하는데 우리는 왜 가만있느냐”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우리들도 뭔가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 말을 들어서는 아니었고요. 간부들이 권력하고 다 맥이 통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까 이 사람들이 지금 당장 우리가 뭘 한다고 강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구나 이렇게 감을 잡는데는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조선일보 간부들은 기자들이 선을 넘었다 싶으면 언제든지 권력에 붙을 준비는 되어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정권의 탄압에 어려웠지만 조선투위 참가한 것에 흔들림은 없었다”

 

김언경 그렇게 조선일보에서 쫓겨나신 이후 지금까지 복직을 못하시고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걸어오셨어요. 10년 정도의 굉장히 긴 시간인데, 박정희정권이 언제 끝날지도 사실은 모르는 것이었고 그 사이 또 군부독재가 시작돼서 여러모로 불투명한 시간이었는데요. 조선투위에 참여한 것에 대해 흔들림은 없으셨나요.

 

성한표 아마 해직한 기자들에 대해서는 권력 쪽에서 약간의 압력을 가한 것인지, 우리들이 좀 괜찮은 직장에 다시 취직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한 5~6년 겪다가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간강사도 나가고 아는 분이 운영하는 마트 같은 곳에서 일하기도 하고 온갖 일을 지냈어요. 하지만 조선투위에 참가한 것에는 흔들림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소굴에서 잘 빠져나왔다 하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리고 언젠가는 이겨서 돌아간다 이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버텼던 거죠.

 

김언경 민언련을 만드실 때는 실행위원으로 활동을 하셨고, 이후에 한겨레 창립에 참여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시게 된 건가요? 최근에 임재경 선생님께서 한겨레가 창립 당시부터 성별이나 직종에 대한 차별없이 민주적 분위기를 만드는 등 좀 더 바람직한 언론사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자랑을 하셨는데, 후일담 같은 것도 들려주세요.

 

성한표 처음에 한겨레 창간을 떠올린 사람은 정태기 씨였어요. 조선일보에서의 언론운동을 이끌던 책임자였던 분입니다. 굉장히 유능한 경제부 기자이기도 하셨죠. 이 분이 조선투위와 동아투위 등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한겨레를 만들면서 “나는 경영을 할 테니 편집은 임재경 선생님이나 저 같은 이들이 하라”고 했어요. 역할분담을 한 건데 저는 정치부와 경제부를 합친 정치경제부의 책임을 맡았었죠.

한겨레는 처음엔 간부들의 호칭부터 달랐습니다. 부장은 편집위원이었고, 편집국장은 편집위원장으로 불렀죠. 저절로 쓰는 사람들이 예전 호칭을 그대로 써서 이것은 흐지부지됐지만, 더 중요한 문화가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그 때는 좀 취재가 어려운 부처에 출입하는 기자들은 취재하고 와서는 부장이나 사장에게 가서 귓속말로 보고를 해서 판단을 구했죠. 한겨레는 그런 거 하지 말고 무조건 쓰라고 했었습니다. 또 촌지를 안 받는 것은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여성들에 관해서는, 그때 여성들은 무조건 문화부로 배치하는 악습이 있었는데 여기자회에서 몇 분이 “왜 맨날 우리는 문화부만 시키려고 하느냐, 우리도 경찰서에 내보내서 우수하다고 생각되면 정치부도 가고 경제부도 가는 것이 맞다”고 해서 전부 풀어버린 경우가 있었네요.

 

“거짓과 배신의 100년, 거짓이 쌓이면 배신으로 나타나는 것”

 

김언경 제가 성한표 선생님을 다시 인터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기자회견 때문이었어요. 그동안 공식적인 활동을 안하던 조선투위가 일본 경제침략이 발생했을 때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셨거든요. 저희는 신홍범 선생님께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조금 거들어 드렸던 건데, 그날 조선투위 선생님들을 보면서 저희는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조선투위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신 배경을 좀 설명해주세요.

 

성한표 사실 조선투위 위원 중 많이 뵙는 신홍범 선생님 경우는 좀 예외적인 존재에요. 그 외에는 사실 저를 포함해서 위원들이 언론운동에 별로 참여를 안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위 조선·동아 100주년이 올해 3월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는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다. 그런 생각들을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동아투위 이부영 선생님과도 여러 가지 연계를 하면서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을 만들기로 했잖아요. 조선투위가 그간 활동이 없다가 이름만 걸고 숟가락하나 놓는 형식으로 조선·동아 100년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에서 전체적인 의사로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공시형 저는 처음에 ‘거짓과 배신의 100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짓은 계속 봐왔으니 뭔지 알겠는데 배신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신을 하려면 배반할 믿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다면 처음에는 뭔가 조선·동아에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소리인가? 저는 선우휘 주필을 비롯한 언론사주와 간부들을 두고 배신이라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성한표 배신이라는 말이 우리가 만들었던 언론자유 투쟁에 대한 책에 나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일을 배신이라고 하려면 애초 뭔가 믿었어야 했는데, 정말 믿는 것은 아니었고요. 우리가 연대체 명에 ‘배신’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1930년대부터 조선일보는 굉장히 배신을 되풀이했기 때문일겁니다. 조선일보는 형편이 좋을 때는 신간회라는 좌우합작 독립운동 조직을 굉장히 옹호하기도 하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일 부역을 서슴지 않고 했죠. 그런 것이 배신이죠. 또, 거짓과 배신이라고 하는데 사실 거짓이 쌓이면 배신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결국 거짓이 바로 배신인 것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조선일보는 배신의 역사죠.(웃음)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에서 보인 눈물의 의미

 

공시형 저도 조선일보 앞에서 한 기자회견 때 눈물을 보이시면서 성명서를 읽으시던 모습이 저희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요. 그 때 하신 말씀이 기자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셨어요. 어떤 심정이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성한표 조선일보에서 파면을 당할 때 나이가 서른셋이었는데요. 사실은 그 때 고민을 좀 했어요. 저는 정치부 기자였고 선배들 중에서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여기 주저앉아 그냥 할까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도 좋을까. 그러나 그대로 남아있으면 그냥 자리는 안정이 될지는 몰라도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후배들이 생각났어요. 물론 고민도 안하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며 뛰어다니는 후배들은 이야기할 거리가 아닌데, 고민하는 후배들은 지금 선택이 남아있는 40~50년까지 가는 건데 ‘아이구 쟤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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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의 위기는 신문으로 해결해야

 

공시형 요즘은 기자 지망생 스스로도 신문 산업이나 언론사 기자가 사양 산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도 기자를 지망하는 건 양가감정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한쪽으로는 지사적인 기자 상을 떠올리고 어떤 사명감을 느끼고, 한쪽으로는 그냥 자기 여건 맞춰서 갈 수 있는 글 공장을 찾는 것 같습니다. 더 심각한 건 언론사들인데, 언론사들 행태를 보면 내리막길에 접어든 신문 산업을 정해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한표 신문 산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은 맞는 이야기 같고요. 그런데 신문사들의 적응 전략을 보면, 전부 방송이나 다른 걸 새로 만들려고 해요. 신문 아닌 다른 뭔가를 벌려가지고 커버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다른 길로 빠져버리면 그건 언론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신문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건, 지금까지는 신문해서 재벌 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중앙은 아예 재벌이고, 조선 동아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언론인, 특히 언론 사주들이 그런 생활이 보장되면 안 되는 거죠. 경영자도 기자도 정말 ‘신문이 아니면 내 삶이 의미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신문을 하라는 거죠. 대신 1인 매체들이 아무거나 대충 갈겨대면 기사가 되는 시대에 기자를 100명씩 동원에서 만드는 뉴스의 가치가 대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느냐, 언론인들은 사실 그걸 연구해야 돼요. 한명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주르륵 쓰는 뉴스하고 훈련된 기자들이 분업해서 쓰고 있는 뉴스가 차이가 확 나야죠. 그래서 적당히 대충 쓴 뉴스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과 판단과 통찰력을 규모가 좀 있는 언론사들이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히 매출액이 얼마 줄었다, 광고가 얼마 줄었다는 위기는 피할 수 없어도 최소한 우리가 말하는 언론 자체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죠.

 

조선・동아 기자의 지위가 ‘편안함과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인식에서 빨리 벗어나야

 

김언경 제가 어제 ‘언론개혁이 왜 필요한가,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시민 대상 강의를 했는데요. 한 어르신이 마지막 질문으로 “그래서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언론을 바꿀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셨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워서 언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언론을 많이 소비하고 응원하고 발굴해야 한다’, ‘미디어탈곡기 듣고 민언련 후원하자’(웃음) 이런 세트에요. 그런데 이게 참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께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우리 시민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한표 우리가 모임을 가지면 보통 ‘조선·동아 폐간하라’ 이런 구호가 나오죠. 그런데 그건 구호로써는 굉장히 강한 구호인데 거의 현실성이 없죠. 조선·동아가 자진 폐간할 가능성은 높지 않거든요. 그러면 도대체 독자와 국민들은 뭘 해야 하는가는 사실 우리 고민이기도 해요. 그냥 생각해 보면 결국 거부운동이나 불매운동 같은 것을 강하게 해 나가는 게 오히려 좀 실질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운동을 통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언론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길 밖에는 없죠.

 

김언경 조선·동아 백년을 앞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

 

성한표 저는 사주들에게 말을 해 봤자 안 들을 테니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조선・동아 기자들에게는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편안함과 성공을 가져다 준다’는 그런 의식에서 제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 의식을 빨리 버리고 당신들이 서 있는 그 곳이 얼마나 나중에 어려운 자리가 될 것인가, 당신들의 인생을 어떻게 왜곡시켜 나가는 자리가 될 것인가 생각을 해 달라는 것이죠.

 

김언경 마지막으로 민언련 회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성한표 민언련은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비해서 상당히 힘이 강해지고 제대로 체계가 잡혔습니다. 그래서 민언련에 대해서는 조언보다는 파이팅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뷰_김언경 사무처장, 정리_공시형 활동가, 사진_이병국 이사,

영상편집_고은지 활동가, 미디어탈곡기 편집_이정일 활동가

(인터뷰는 미디어탈곡기 유튜브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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