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호

[회원인터뷰] 민언련이 언론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언론환경은 지금보다 더 나빠졌을 것 (정연우 회원)
등록 2020.04.0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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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호 ‘회원 인터뷰’ 주인공은 정연우 회원이다. ‘회원 인터뷰’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민언련 고문 등 어르신들, 신임 이사‧정책위원‧미디어위원, 신문‧방송 모니터위원회 위원장. ‘올해의 회원상’을 받으신 회원님들을 주로 모시다보니 정작 현직 대표나 정책위원장께는 인터뷰 차례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호에는 그런 규칙을 깨고 현직 상임대표를 모시고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그리고 2018년부터 2년 동안 민언련 대표를 역임했고, 2020년 3월 20일 총회에서 상임이사직을 내려놓는다. 정말 그날이 오면, 이제 정말 민언련에서 해야 할 큰 숙제는 다 마친 것 같다는 정연우 상임대표. 언론학자인 그는 어떤 마음으로 두 번이나 민언련 대표를 맡았던 것일까? 너무 친숙한 분이지만 정작 찬찬히 들어본 적은 없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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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 대표 표지.JPG

민언련과의 만남, 언론운동 이야기

김언경 : 민언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언제인가요?

정연우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시절이던 1992년, 당시 정동익 의장님께서 언론학교를 만들었으니 광고 관련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때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마 김언경 처장이 그 강의를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언경 : 맞아요. 제가 1992년 2월 2기 언론학교 학생이었는데, 당시 대표님이 강의를 하셨어요. 사실 그때는 손석희 아나운서 말고는 강사들 면면을 잘 몰랐는데요. 나중에 자료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당시 정연우 대표님이 정말 엄청 젊으셨더라고요. 저나 대표님이나 참 오랜 시간 민언련에서 함께 늙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언론학교 강의를 하신 뒤 계속 민언련에서 활동하셨던 거예요?

정연우 : 아닙니다. 지방으로 학교로 옮기면서 활동을 못 하고 편하게 잘 지냈죠. 그러다가 민언련 전 대표이신 신태섭, 신임 대표가 되실 김서중 두 분의 꾐에 넘어가 2005년 무렵부터 정책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김언경 : 그 당시가 민언련 정책위원회의 위상이 높고 역할을 정말 멋지게 해내던 때였어요. 굉장히 멋있는 맨파워를 가지고 있는 때로 기억합니다.

정연우 : 당시 참여정부는 언론개혁에 관심이 높았고 시민단체와 논의도 많이 했던 시절이이라 정책위원회가 정책제안을 많이 했지요. 정부가 우리 정책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수렴하려고 했어요. 우리도 정부 혹은 각 언론단체들과 공동으로 태스크포스팀도 만들었고요. 어디서 언론 관련 토론회가 열리면 우리 정책위원들이 패널로 참석하지 않을 때에도 찾아가서 발표문도 가져오고 내용을 요약해서 정책위원회에 와서 보고도 했습니다.

 

김언경 : 그랬죠. 생각해보면 지금 있는 미디어 제도나 정책들은 대부분 그때 만든 것들, 다시 말해서 옛날 미디어를 위한 정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2020년 민언련 정책위원회가 2004년 당시처럼 다시 열심히 언론정책을 토론하고 입안하며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연우 : 네. 지금 정책위원회도 정책현안을 잘 논의하고 있지요. 다만 요즘 정책위에서는 단일한 의견을 도출하기 어려운 때도 많잖아요. 그건 우리가 불성실해서라기보다는 사실 2004년 당시만 해도 미디어시장이 지금보다는 단순했습니다. 그래서 민언련이 단일한 입장을 모으기도 쉬웠죠. 반면에 지금은 굉장히 복잡해졌잖아요. 각 사안에 대한 해석과 입장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김언경 : 회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민언련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중심으로 언론 상황과 민언련의 대응을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연우 : 2000년 이전 언론운동은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신문 언론들을 감시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공영방송 KBS‧MBC는 5공 청산 프로그램들, 그러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런 개혁적인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하려 해도 노조가 워낙 힘이 있을 때이니 쉽지 않았죠. 그러니 민언련은 조중동이나 신문시장이 자본의 압력으로 변질되는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했습니다. 또 한겨레신문 창간이나 우리 민언련의 말지 발간으로 인해서 진보적인 매체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여론의 공정하고 제대로 된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 고민하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그 때 사진을 보면 앳된 모습의 김처장께서 실무적인 중심이 되어 지금까지 해온 선거보도감시활동을 92년부터 시작하여 선거 때마다 꾸준히 이어왔지요.

그러다가 98년인가요. 조선일보가 본격적인 왜곡보도를 했습니다. 특히 최장집 교수 관련해서 악의적인 보도를 하면서 지식인들과 함께 안티조선운동을 했죠. 그 운동을 하면서 그런 보도가 만들어지는 구조와 제도 개혁이 필요하겠다 싶어 민언련과 언론노조가 중심이 되어서 언론개혁시민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언론법제 투쟁과 통합 방송법 만드는 데 관여도 하고, 참여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는 신문법을 포함한 언론관련 개혁입법을 하는데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2008년, 2009년에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과 미디어법 투쟁이 있었고요. 결국 둘 다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는 것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지형을 만들기 위해 조중동에게 방송을 내주려고 무리하게 법을 강행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인식하게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미디어법에 대한 반대여론이 훨씬 더 높아졌으니까요.

 

김언경 : 대표님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 민언련은 언제나 참 열심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언론운동을 해온 것 같은데, 언론 상황은 정말 더 나빠진 것 같기만 합니다. 어떻게 보세요? 한숨이 나오네요. 좋아졌다고 생각하세요?

정연우 : 별로 좋아지지 않았고 퇴행하는 면도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 민언련이 언론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보다 더 나빠졌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권력에 장악되어 있던 공영방송이 지금 정상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데도 김처장께서 이끌었던 ‘KBS․MBC정상화시민행동’ 즉, 돌마고 캠페인이 큰 역할을 했지요.

 

김언경 : 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또 위안이 되네요. 저도 최근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시민사회에 민언련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에는 민언련 같은 언론을 감시하는 단체가 없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언론운동을 30년 넘게 유지하고 있냐고 감탄하시더라고요.

정연우 제가 알기에는 전 세계에 이렇게 조직적으로 언론운동을 하는 이런 대규모 단체는 우리가 유일하다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언론운동을 조직적으로 지속하게 된 데는 동아투위, 조선투위, 80해직 언론인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 분들께 우리 사회, 우리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빚진 것이라고 봅니다. 한겨레신문 같은 국민주 방식의 신문 창간, 그리고 민언련이 낸 말지처럼 제도언론을 떠나 비판적으로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을 다룰 수 있는 매체를 창간한 것도 다 그분들이 중심이 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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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자의 언론운동 참여에 대하여

 

김언경 : 대표님은 언론학자시잖아요. 솔직히 저는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언론문제가 뭔지 궁금한 시민이었는데요. 처음 민언련에 왔을 때 나름 젊은 언론학자들을 뵈면요. 좀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솔직히 저 분들은 왜 여기에서 기웃거리실까 생각했어요(웃음). 아마 제가 이전에 들었던 언론학자들은 대부분 매우 보수적이었기에 선생님들의 모습이 좀 신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언련에서 활동하는 언론학자들의 명분과 진정성이 분명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언론학자들의 언론운동 참여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세요.

정연우 : 언론학자들이 민언련 같은 운동단체에 관여하게 된 것은 대략 이런 것 같습니다. 제 세대는 1980년대 당시 대학원에 다녔던 사람들인데요. 당시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가거나 노동현장에 간 친구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사실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보면, 투쟁하다가 투옥되거나 고문을 당하는 등의 고생을 하지는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죠. 이런 소장학자들이 명분을 찾은 것이 ‘우리는 학술이라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대학원생이던 언론연구자들이 한국사회언론연구회를 만들고 우리 연구를 통해서 사회 변혁을 위한 이론을 만들자고 했죠. 이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실천 활동으로 민언련에 많이 관여를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아까 ‘기웃거린다’는 표현을 하셨지만 실제로 학계 안에서 그런 정서가 있기도 합니다. 학자들이 연구논문을 쓰거나 교육을 등한시하고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언론운동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때로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일하게 되는데 그런 ‘감투’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습니다. 실제로 언론운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자리에 가기도 하니까요. 주변에서는 이에 대해 한편 부러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시도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김언경 : 정말 오해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 ‘감투’ 때문에 민언련이나 언론운동을 한다고 여기기에는 너무나 오랫동안 고생하며 꾸준하게 해주시거든요. 저는 민언련에서 활동하신 학자들을 보면 ‘아! 저 아저씨들 참 여전하시군’(웃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찡한 마음이 듭니다. 진심으로 선생님들이 떠나지 않고 민언련에서 활동하시는 것이 대단하다 생각하고, 회원님들께서도 이 사실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참여하시는 곳 중에서 민언련 이외에도 언론운동을 하시는 학자그룹이 있잖아요. 그 그룹들에 대한 소개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연우 : 아까 말씀드린 한국사회언론연구회는 1980년대에 대학원생들 중심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실천 가능한 이론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던 것이었고요. 이들이 1998년에는 언론정보학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미디어 관련 학회로 언론학회, 방송학회, 언론정보학회를 꼽는데요. 언론정보학회는 그중 진보적인 언론을 지향하는 학회입니다. 또 미디어공공성포럼을 같이 하죠. 미디어공공성포럼은 2008년 당시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KBS가 장악 당하던 시기에 학자들의 반대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싶어 민언련이 제안해서 언론학자 40여명이 선언을 했습니다. 그 후 더 많은 학자들이 모여 100여 명이 2차 선언을 했는데요. 당시 민언련 정책위원장인 김서중 교수께서 조직화를 해보자고 제안해서 언론학자 208명으로 시작을 했던 게 미디어공공성포럼입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법을 정당화해주려는 일부 학자들의 억지논리를 반박하고 비판하는데 앞장을 섰고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언경 : 저도 미디어공공성포럼에 토론자로 자주 가게 되는데 갈 때마다 배울 게 많고 창의적인 토론회를 만들어내는 게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요. 언론학자로서 활동과 언론시민단체에 속해서 활동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요?

정연우 : 학자들은 아무래도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론은 변화의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으니까 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론을 넘어서 실천을 통해서 언론현실을 변화시켜보려 한 것이고요. 특히 언론은 다른 영역보다 굉장히 빠르게 바뀌잖아요. 10여 년 전에 한미FTA 이야기를 할 때 방송에 어떤 장르를 개방할 것인가를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넷플릭스가 통째로 들어왔어요. 여기에 대항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대항하고 맞설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는데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요.

 

민언련을 너무 사랑하는 것 아닌가요?

 

김언경 : 이번 질문은 이정일 활동가가 줬는데요. 제가 그냥 그대로 읽을게요. “정연우 대표님께서는 2008년 민언련 대표를 4년이나 하셨어요. 그런데 2018년에 또 대표가 되셨습니다. 민언련을 너무 사랑하시는 거 아닌가요?”(웃음)

정연우 : 제가 원죄가 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권 때 공영방송을 막으려고 그때 김 처장도 같이 하셨는데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시민들도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 행진하면서 KBS를 지키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 뒤로 검찰이니 경찰이니 많은 기관을 동원해서 정권이 KBS를 장악했잖아요. 2년 후에는 MBC에서는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면서 공영방송을 완전히 망쳤습니다. 그게 제가 대표 시절 어쨌든 못 막았던 게 있고요. 또 당시 가장 큰 이슈는 미디어법이였습니다. 당시에 ‘조중동 방송저지 범국민행동’도 만들어 싸웠는데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죠. 그래서 탄생한 종편이 공론장을 난장판을 만들게 되었는데 네 개 중에 한 방송사라도 퇴출시켰어야하는데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김처장께서 ‘종편때찌’를 하면서 많은 시민들께서 회원으로 가입해주셔서 우리가 견제하는 역할을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김언경 : 민언련 대표로 6년 활동하시면서 가장 아팠던 기억은 뭐였나요?

정연우 : 저들이 KBS를 장악하려고 정연주 사장을 내쫓으려고 할 때, 시민들과 KBS 앞에서 농성도 하고 천막을 치고 밤도 새고 그랬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천막을 칼로 찢고 갔어요.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버이연합 추선희씨였어요. 그때 좀 더 단호하게 대응을 해서 뭔가 강력한 처벌을 받게 했어야 했는데 그때 싹을 잘라버리지 못하니까 나중에 그들이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패악질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가장 화나고 아팠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사무처 활동가들이 너무 고생한다는 겁니다. 제가 학교나 다른 단체에 행정에 관여해보기도 했지만 우리 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입니다. 거의 혹사 수준입니다. 특히 김언경 처장은 주말도 계속 쉬지 못하고 거의 하루 종일 모든 시간을 열정적으로 민언련에 바쳤잖아요. 좀 쉬어야하는데 너무 무리하게 하다 보니 건강도 안 좋다고 하니까 짠하고 그렇습니다.

 

김언경 : 기뻤던 일은요?

정연우 : ……기뻤던 일은 별로 없어요.

 

김언경 : 없었어요? 아이 참. 민언련 대표가 참 좋은 직업은 아니군요.

정연우 : 아니 훌륭한 자리기도 하고 할 역할이 많은데, 제가 보람 있는 일을 잘 못해낸 것이겠죠. 다만 이제 회원들이 늘고, 회원들 모시고 수련회 가서 만났을 때가 가장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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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우 대표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언경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튼 사실 제가 오늘 인터뷰에 굳이 대표님을 모신 것은 올해 대표를 꼭 반드시! 그만 하시겠다고 하셔서입니다.

정연우 : 가끔 지인들이 절 보면 “아직도 거기 있어?”라는 말을 합니다. 민언련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영입되고 그래야 단체가 더 생동감 있고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질 겁니다. 저도 진작 떠났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있었습니다.(웃음) 종편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새 대표님들께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하시겠지요. 민언련이 새로운 체제로 출발하면서 신선한 기획과 에너지를 가지고 잘 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김언경 :저는 6년간 사무처장을 했는데요. 제가 감히 평한다면, 정연우 대표님은 상당히 좋은 대표님이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사무처 활동가에게 참 따뜻하게 해주시고 늘 많은 응원을 해주셨어요. 참 좋았습니다.

정연우 : 다른 대표님들이 보실 텐데요?(웃음) 고맙습니다.

 

김언경 : 마지막으로 회원님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해주세요.

정연우 : 회원님들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 감동을 주신 회원님들이 많습니다. 먼 길에도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회원캠프 등에 참여하신 회원님들, 행사나 기자회견, 길거리 캠페인에 참여하셔서 번거롭고 힘든 치다꺼리를 도맡아주시는 회원님들의 큰 고마움을 가슴에 담습니다. 언론운동이라는 게 활동가들께서 굉장히 애를 쓰시지만 그것으로는 우리가 꿈꾸는 언론개혁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회원님들께서 앞으로 좀 더 언론운동에 조금 더 시간을 내주셨으면 하고요. 더 강한 힘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민언련은 ‘늙은 조직’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늙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꼰대’, ‘보수’ 등 부정적인 의미를 지칭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민언련에서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일상을 민언련에 내어주면서 함께 언론개혁 운동의 한 길을 갔고,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바로 민언련의 저력이다. 정연우 상임대표는 이제 민언련에서 또 다른 역할을 찾아서 함께 이 길을 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저 회원으로 ‘올해의 회원상’을 받고 싶다는 정연우 대표의 꿈이 빨리 이루어지길 빈다.

인터뷰・정리 김언경 사무처장,  이정일 활동가 

사진・동영상 이병국 이사 

[날자꾸나 민언련 4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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