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회원인터뷰]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사람값’을 높이자(정수경 회원)
등록 2020.06.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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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는 뿌리 깊다. 청주방송CJB 고(故) 이재학 PD의 죽음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전부터 바닥에 가라앉아 층층이 쌓여온 문제다. 과중한 노동, 열악한 처우, 불안한 고용환경, 성별에 따른 채용차별까지…. 방송현장과 미디어 이론까지 두루 알면서 이 문제에 목소리를 내줄 사람은 없을까.

 

문득 정수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이 떠오른다. 시사다큐멘터리 전문 방송작가로, 독립제작사 설립자로 오랫동안 방송현장에서 일하던 그는 훌쩍 미디어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만학도로서 석사, 박사까지 일사천리로 마치고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민언련 정책위원회에 흔쾌히 동참했다. 현장과 이론을 두루 섭렵한 그에게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을 물었다. 그는 ‘사람값’을 꺼냈다.

 

산업현장과 학계를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

신미희(민언련 사무처장) 이달의 표지모델이자 회원인터뷰의 주인공, 정수경 정책위원을 모셨습니다. 간략한 자기소개부터 듣고 시작할까요?

 

정수경(민언련 정책위원) 방송작가 일을 주로 했습니다. 1995년부터 시작해서 2005년까지 MBC에서 시사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들었고요. 그 이후 독립제작사를 설립해서 6~7년 경영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미국에선 주로 방송산업과 새로운 방송 흐름 등을 연구했습니다. 지난해 봄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서 가을 학기부터 성신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신미희 민언련에서 활동하는 언론연구자 중에 이른바 ‘신상’ 학자입니다(웃음). 지난해 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민언련과 인연이 됐을까요?

 

정수경 직접적인 계기는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순 위원님이세요. 방송작가 일을 할 때 직계 선배였거든요. 제게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줬던 분이라서 그분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민언련은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신뢰를 갖고 있던 단체이기도 해요. 돌아와서 무엇을 할지 특별한 계획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 영역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민언련에 신뢰가 있어서 선택했던 거죠. 또 한국을 떠나 있던 기간이 7년인데요, 한국 저널리즘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빨리 캐치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필요했어요. 여러모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민언련 정책위원으로 선뜻 참여했습니다.

 

신미희 이런 걸 필연이자 운명이라고 하죠. 잘 오셨습니다. 민언련 정책위원으로 올 때 ‘나는 이런 활동을 해보고 싶다’ 생각한 게 있을 것 같아요.

 

정수경 꼭 민언련 정책위원이라는 직함을 갖고 고민한 건 아니고요.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쓰임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제작 출신이잖아요. 콘텐츠는 산업현장에서 나오고요. 그런데 학계에선 현장을 잘 몰라요. 접근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요. 연구 대상으로 연구된 바도 없죠. 또 비판의 대상은 되지만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송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내부 입장을 학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산업현장에서는 현실하고 맞지 않는 비평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산업 내‧외부 의견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환경에 맞춰가는 사람

신미희 나이가 들어 공부를 시작할 땐 큰 결단이 필요했을 텐데요. 국내도 아니고 해외고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정수경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일차적으로는 원래 시사전문 다큐멘터리 작가인데요. 우리나라에서 시사다큐멘터리 전성기는 1990년대에요.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후 방송산업의 흐름이 예능이나 드라마로 완전히 바뀌었죠. 저의 쓰임에 대해 늘 고민을 하는 편인데요. 흐름이 바뀌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시사다큐멘터리 작가로서 발전하려면, 그 영역 자체가 넓어야 하는데 계속 줄어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때쯤 작가에서 제작자가 되었어요. 작가가 내부에서 일할 기회가 줄어드는 대신, 당시 외주제작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외주제작사가 많이 생기던 때였어요. 계약형태가 바뀌고 외주제작사를 차려야 제가 생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전엔 비정규직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외주화가 많이 진행됩니다. 작가들의 처우나 지위도 더 불안해졌죠.

저라도 뭔가 만들어서 작가들이 모여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하루는 작가들끼리 모여 논의하다가 ‘회사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랬더니 다들 ‘네가 행동대장이니까 총대를 메. 따라갈게!’라고 하더라고요. 다들 갑갑해 하고 있었던 거죠(웃음). 독립제작사를 운영할 때 먹고 사는 문제에 크게 구애받진 않았어요.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월급 같은 걸 밀리지 않고 줄 수 있었죠.

 

신미희 독립프로덕션이 열에 아홉은 월급을 못 줘서 힘들어 하는데, 그 정도면 성공하신 거 아닌가요? 왜 갑자기 그만두고 유학 가냐는 말이 나왔을 것 같아요.

 

정수경 첫 번째는 종편(종합편성채널)이 들어서는 환경이 되었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채널이 늘어나니 제작할 기회가 더 많지 않느냐’라고 했는데요. 우리는 시사전문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으로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 나쁜 콘텐츠는 만들면 안 된다는 소명의식이 있는 거죠. 그런데 종편이 들어설 즈음 여러 군데에서 기획서를 요청받으면 대부분 인건비는 최소화하고 선정적인, 즉 이슈를 끌 수 있는 걸 원했어요.

경찰을 쫓아다니면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범죄를 취재한다거나, 성적인 콘텐츠를 담는 그런 프로그램이요. 시사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매우 선정적인 것을 요구하는 거죠. 같은 팀 PD, 작가들에게 밥벌이 기회는 줘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그런 일거리를 주는 게 옳으냐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이대로 가는 게 옳은가 논의하다가 최종 결론은 ‘좋은 시기에 접자!’가 되었습니다. 접고 난 뒤 다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대학 다닐 때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정리도 해보고 싶었고요. 여러 가지가 겹친 상황에서 ‘공부하자!’ 이렇게 된 거죠.

 

신미희 공부하고 돌아오셨을 때, 한국 방송현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던가요?

 

정수경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사실 한국 방송에 매우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물론 긍정적이라고 하는 게 희망적이라는 건 아니에요. 그 전에는 제가 있던 방송영역에서만 현장을 바라봤다면, 공부하면서 뒤로 물러나서 전체를 훑어보니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상업주의가 만연한 미국에서 공부했잖아요. 우리와는 시스템이 다른 곳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국 방송의 장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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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산업, 사람이 곧 부가가치다 

신미희 장점도 있습니다만 방송계를 비롯한 언론계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누적된 문제가 CJB청주방송 이재학 PD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어요.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화된 지는 꽤 됐는데, 왜 방송계‧언론계는 이제야 문제제기가 되고 있을까요?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저도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해보고 싶었는데요. 처음 정책위원회에 왔을 때도 방송작가로 오랜 경험이 있으니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잘 다뤄줄 거란 기대가 있던 걸로 알아요. ‘방송작가’ 하면 ‘여성’ ‘프리랜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방송작가로 일할 당시엔 비정규직 문제가 많이 없었나요?

 

정수경 당연히 있었죠.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현재는 막내작가, 꼭지작가, 메인작가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원래 작가라는 직업도 없었어요.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PD들이 알아서 대본도 쓰고, 편집도 하고, 구성도 했어요. 그러다 더 잘 만들고 싶으니, 전문으로 글쓰는 사람을 찾게 된 거죠. 작가협회에서도 시니어 분들은 다 ‘작가 선생님’들이에요. 소설가든 시인이든 실제 문학을 전공한 분들이 많죠.

그러다 1990년대 <PD수첩> 같은 시사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취재가 많이 필요해요. 작가 혼자, PD 혼자 연구해서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거예요. 그러면서 세분화되는 거죠. 취재 전문, 섭외 담당, 구성 담당 등등. 하지만 전화 한 통이면 될 것 같은 단순한 일이 더 중요할 때가 있잖아요? 서브작가가 생긴 게 1990년대 초중반부터에요. 저도 공채작가 출신인데 3기쯤 돼요. 그때는 2년에 한 번씩 뽑은 것 같아요. 논술도 보고, 구성능력도 보고, 면접도 보고요. 그러다가 빠르게 인력을 충원해야 하다 보니 공채기간이 짧아지더라고요. 나중엔 작가아카데미에서 뽑아서 일을 가르치는, 일종의 도제식 교육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면 빠른 친구들은 빨리 배우고, 빨리 입봉하게 되거든요. 입봉하면 그제야 글 쓰는 작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누구 아래에서 아무리 전문적으로 취재나 섭외를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로 인정을 못 받는 환경인데요. 그래서 글 쓰는 기회를 잡기까지 빠르게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참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조선희 유독 방송작가에 여성이 많은 이유도 있을까요?

 

정수경 우리 사회 위계구조가 똑같이 투영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글 쓰는 일은 여성들이 훨씬 더 친숙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조금 허드렛일 같아 보여도 얼마든지 참고 하는 게 습성이 돼 있어요. 키울 때부터 그렇게 크니까요. 아들은 가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직업도 정규직으로 가져야 하고, 그럴싸한 일을 시키죠. 또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요. 그런데 딸들은 ‘시집가면 되니까’라고 생각하잖아요. 직장 한번 해보든지 아니면 말고, 이렇게 생각하는 위계적인 사회질서에서 여성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이런’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들이 훨씬 방송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시각적으로 좋은 부분을 ‘캐치’해서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출중하죠. 그런데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노동환경이나 계약조건 등을 묵묵하게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을 가진 사람들은 여자들인 거죠. 그렇게 성장을 해오니까요.

 

조선희 원인을 진단해봤으니 해결책이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싶은데요. 원인이 다층적이라 해결책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아요. 처음 방송작가들이 세분화된 건 방송작가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제작자 입장에서 사람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또 위계적인 젠더구조가 여성 프리랜서를 많이 만들게 되니까요.

 

정수경 그럼에도 중요한 건 주체가 먼저 자각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국방송작가협회는 김수현 선생님을 비롯한 힘 있는 작가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전체 작가 이익을 위해 써준 거라 의미가 있는데요. 그밖에 개개인이 노동자성을 자각해야죠. 기본적으로 작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어요. 본인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결권, 단체행동권 등을 행사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드라마 작가와 다르게 구성작가는 기본적으로 PD가 필요로 하는 일을, 그들의 지시를 받아서 수행하거든요. 당연히 노동자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신미희 미국 상황은 어떤가요? 한국 방송의 경우 공영과 민영이 혼재된 형태로 있잖아요. 미국은 상업방송 중심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과는 다른가요?

 

정수경 미국 노동조합 현황 등을 보면 우리보다 더 열악해요.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실업률이 갑자기 치솟잖아요. 정리해고가 매우 쉬워요. 출산휴가를 쓰고 싶다? 회사를 그만둬야 해요. 그래서 대부분 미국 여성들은 비정규직이에요. 파트타임(part-time job)이죠. 다만 임금이 높다는 차이가 있어요. 정규직이 아니라도 임금이 높은 거예요. 파트타임만 해도 어느 정도 벌 수 있게요.

 

신미희 비정규직 임금을 높이려면 우리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할 거 같아요. 우리 사회는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정규직 비율을 높여서 해결하려고 했잖아요.

 

정수경 정규직이 아니면 복지를 비롯한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죠. 그것을 보완하고 상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노동자의 이동성을 높이는 게 훨씬 더 노동자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방송계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요.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가 심하니 예로 들어보면요. 실제 방송은 노동력 투입이 제일 심한 곳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이건 ‘노동력’이 아니라 지적인 부분, 즉 인간의 창의성을 들이는 거예요. 사람이 곧 부가가치인 곳이죠. 그럼 당연히 ‘사람값’이 높아야 하는 겁니다. 모든 가치가 사람에게서 나오니까요. 만약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의 팀워크가 없는 프로그램을 생각해보세요. tvN에서 그만한 가치를 못 올립니다. 김태호 PD 없는 MBC를 생각해보세요. 일차적으로 돈을 못 벌어요. 그런데 이렇게 인식을 안 하는 거죠.

 

민언련, 저널리즘 중심에서 벗어나라

신미희 지금까지 얘기한 주제도 언론개혁 과제와 맞닿아 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민언련은 어떤 과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요.

 

정수경 저널리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모니터 대상이나 민언련이 목소리 내는 분야가 저널리즘에 국한돼 있잖아요. 결국은 다 정치적인 이야기거든요. 가치와 철학의 이야기에요. 그건 당연히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시민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미디어는 훨씬 광범위합니다. 민언련은 그 범위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리얼리티쇼를 모니터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리얼리티쇼의 기저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흐르잖아요. 끊임없이 나를 혁신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고, 발전시켜야 하죠. 오디션쇼 프로그램 떠올려보면 아시겠죠. 젠더 위계 문제, 가족주의 문제, 가부장제 문제 등도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오락물로 즐기고 있지만 사실은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을 민언련이 짚어주면 좋겠습니다.

 

조선희 미디어 전반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덧붙여 민언련이 나쁜 것들만 지적하는데, 좋은 것도 소개해달라는 피드백도 많이 들었습니다.

 

정수경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언련에서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주잖아요. 시상대상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한정돼 있는데, 예능이나 드라마에 과감하게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 중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있어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퀴즈를 내는 건데요. 숨은 골목길을 찾아가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희로애락을 다뤄요. 주인공이 ‘시청자’인 거죠. 서민들과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를 그렇게 자연스럽고 감동적으로 그리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상을 줘야 마땅하죠. 민언련 소식지에 유재석씨가 등장해서 수상 소감을 말하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인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여성, 지역성, 이웃과의 관계 등 고민하고 생각해볼 지점이 담겨 있어요. 그런 것을 발굴해서 추천해줬으면 좋겠어요.

산업에서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소개해주세요. 방송이든 통신이든 지금은 저널리즘과 미디어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매체 안에서의 변화상, 시각 등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가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정리 신미희 사무처장‧조선희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 동영상 고은지 활동가

 

[날자꾸나 민언련 6월호 PDF 파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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