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책이야기]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N번방 사건과 남성의 책임
등록 2020.06.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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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카츠 지음, 신동숙 옮김, <마초패러독스>(갈마바람, 2017)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본디 어떤 일이든 뒤틀어진 뒤에는 손써봐도 소용없거나 늦었음을 비판하는 뜻으로 쓰인다. 코비드19와 함께 대한민국 사회를 달군 소위 ‘N번방’ 텔레그램 온라인 성착취 사건의 전개 양상 안에서, 수많은 10대와 20대 남성들이 ‘돈을 내고’ 성착취물을 소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이었다. 저렇게 많은 이들이 성착취물에 탐닉하고 있다면, 이건 이미 일부 집단에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지경에 다다른 듯하여 한동안 우울과 절망감에 허우적대기도 했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는 10대와 20대 남성들을 저렇게 키워낼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물음을 품고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나 자신의 우울과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 잭슨 카츠가 쓰고 신동숙이 옮긴 <마초 패러독스>였다. 저자는 테드(TED)를 통해 명성을 얻고 있었던, 미국 내 저명한 성폭력 예방 활동가다. 그의 주장은 테드를 통해 먼저 접했고, 2017년에 그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잭슨 카츠의 주장은 명료하다. 한국어판 표지의 부제로도 쓰인 문장이다.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 문장에 담긴 생각의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판으로 대략 5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을 통해, 여성폭력이 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제인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풀어나간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서는 그의 논증이 불편하거나 납득할 수 없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다. 그 효과는, 내 우울과 절망에서의 탈출이다.

 

권김현영은 자신의 책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와 관련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N번방 사건의 본질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권김현영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욕이 왜 쾌락이 되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구경꾼의 존재’라고 진단했다. 성착취물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구경꾼들의 박수를 통해 지배는 쾌락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구경꾼은 성착취의 공모자이면서 동시에 폭력 그 자체의 구성물이다. 잭슨 카츠는 권김현영이 말한 곳에서 출발하여 한 발 더 나아간다. 권김현영이 말한 ‘구경꾼’을 변화시키는 전략이다. 말하자면 그들이 ‘어이, 그런 거 재미없어! 그 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나의 누이나 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네. 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잭슨 카츠는 이를 방관자(bystander) 접근이라고 이름 붙였다.

 

성착취물을 유통한 자들은 경찰을 비롯한 사법부의 프로세스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한다. 혹시라도 모를 예비 범죄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진행해야 하는 또 다른 프로세스가 있다. 10대와 20대 남성들의 문화를 근본에서 바꾸는 일이다. 여성을 성적 도구로 만들고 여성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려는, 남성의 강간 문화 자체를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N번방 사건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점은 합당한 추론이다. 소는 잃었으되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그래야 다른 소를 키울 수 있지 않겠나. 잭슨 카츠의 말대로, 이젠 남성이 나서야 한다. 남성은 여성 폭력의 일부분이다. 그렇기에 마땅히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신호승 <대화의 정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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