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10월호] [회원인터뷰] 뉴스타파는 1급수로, 민언련은 수질검사관으로 혼탁한 언론을 맑게 만들자(심인보 회원)
등록 2020.10.0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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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탐사저널리즘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뉴스타파>. 2012년 2월 당시 이명박 정권의 부역자로 전락한 공영방송에 맞서 방송의 공공성을 회복하겠다며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방송이 되겠다’고 선언한 뉴스타파는 설립 7년 만에 3만 4천 명 넘는 후원회원을 확보하고,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뒤편에 독립사옥을 구입해 입주했다. 8월 14일 공식 오픈한 독립사옥의 이름은 ‘뉴스타파 함께센터’로써 비영리 독립언론의 연대와 협업의 거점이자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 사주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하는 언론도 이 땅에 살아남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준” 뉴스타파의 약진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 백혈병, 쌍용자동차, 4대강, 위키리크스 이슈 등 굵직한 탐사보도를 이어왔다. 그 가운데는 뉴스타파의 ‘열혈기자’들이 있다. 출범 초기 주축을 이룬 해직기자와 PD들은 방송 정상화와 함께 대부분 기존 언론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기존 언론사에서 여러 한계를 느껴 뉴스타파로 옮겨온 기자들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

 

심인보 기자도 그중 한 사람이다. 2015년 KBS를 ‘박차고’ 뉴스타파로 건너온 심 기자는 최근 ‘죄수와 검사’ 시리즈부터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 이건희 회장 성매매 사건 등 ‘탐사 특종’을 많이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으며 탐사보도 지향점으로 “세상을 한 발짝이라도 더 낫게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탐사보도’라는 게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탐사보도에 대한 변치 않은 믿음을 밝혔다. 기자생활 15년, ‘팀장’을 맡고도 카메라 삼각대를 둘러메고 취재현장으로 나서는 순간이 그저 행복하다는 심인보 기자를 8월 7일 민언련에서 만났다.

 

 

뉴스타파의 성장은 ‘필연’

신미희(민언련 사무처장) ‘이번에 회원 인터뷰 어떤 분을 할까요’라고 물었더니, 활동가분들이 1순위로 심인보 기자를 추천했어요. 모두 정말 보고 싶다며 박수로 동의했죠. 민언련 회원은 언제 되었어요?

 

심인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요. 2017년일 겁니다.

 

신미희 혹시 ‘이달의 좋은 보도상’ 받으면서 회원 가입을 하였나요?

 

심인보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신미희 심인보 기자는 뉴스타파를 대표하는 기자 중 한 분이고, 의미 있는 ‘특종’도 많이 했어요. 기자생활은 KBS에서 시작했죠. 오늘은 심인보 기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역추적 해보려고 해요(웃음).

 

박진솔(민언련 활동가) 2005년 KBS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고 10년 차 되던 2015년 뉴스타파로 둥지를 옮겼잖아요. 뉴스타파는 이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자리 잡았는데, 심인보 기자의 역할도 컸죠. KBS를 떠나 뉴스타파로 옮긴 배경, 그리고 뉴스타파 성장에 함께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심인보 KBS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보도 자율성이 빠르게 위축됐어요. KBS 기자로서 KBS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몇 번의 싸움이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참여한 게 박근혜 정부 당시 길환영 사장 퇴진투쟁이었어요. 열심히 했고, 정권 중반인데도 길환영 사장이 나갔어요. 이후 선배그룹이 ‘개혁안을 다 들어줄 테니까 만들어와 봐’ 이러는 거예요. 뉴스개선을 위한 TF에 들어갔고, 여러 안을 만들었죠. 그런데 몇 달 지나니까 KBS 내부권력이 안정화되었고, 사측은 TF 뉴스개선안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때 10년 차였는데 KBS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조직이지만 내가 KBS를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다, 기자로서 취재하고 싶고 사회적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KBS를 바꾸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에너지가 아주 크니 밖에 나가서 제대로 기자 하는 게 맞겠다, 이런 판단을 하게 되었죠. 같이 일하고 싸웠던 동료, 특히 후배들한테는 너무 미안하지만 KBS를 나오게 됐어요. 뉴스타파는 기자에게 취재, 보도 이외에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뉴스타파 신뢰도가 올라가면서 양질의 제보가 들어오고, 그 안에서 제가 맡은 역할을 했을 뿐이죠. 뉴스타파라는 언론이 이렇게 성장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기에 제 존재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회장 보도, ‘이런 순간이 또 오진 않겠지’

신미희 아휴, 너무 겸손한데요. 양질의 제보가 참으로 중요한데 그만큼 독자와 시민들이 뉴스타파를 신뢰하여 선순환이 이뤄지는 거네요. ‘죄수와 검사’ 시리즈도 제보에서 시작됐죠? 이건희 회장 성매매 사건, 파마나 페이퍼스 사건 등도 큰 파장이 일었고요. 의미 있는 보도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기자로서 뿌듯했던 순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요?

 

심인보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탐사보도 목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바꾸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보도로 세상이 뭔가 바뀌었을 때 제일 뿌듯하죠. 법이 바뀐 적도 있고, 새로운 법이 생긴 적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 구속이 되거나 자기 잘못에 응분한 책임을 지게 된 경우도 있어요. 이건희 회장 성매매 사건 보도가 기억에 남는데요. 이 회장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잖아요. 대통령 권력은 5년이지만 이 회장의 권력은 몇십 년간 이어져 온 권력이잖아요? 경제권력으로 정치권력도 사고 심지어 대중으로부터 존경까지 받으려고 하는 문화권력도 얻고자 한 인물인데, 그 사람의 민낯을 보여준 거죠. ‘제일 센 놈, 제일 강한 자를 보도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떤 기자라도 있을 텐데요. 그런 면에서 이건희 회장 보도는 ‘기자로 살면서 이런 순간이 또 오진 않겠지’ 싶은 순간이었죠.

 

박진솔 이번에 ‘죄수와 검사’ 두 번째 시리즈에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관련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을 보도했잖아요.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실제 위증교사가 있었는지 조사했고요. 조선일보는 ‘서울중앙지검이 한 달간 조사를 끝낸 뒤 무혐의로 대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고, 서울중앙지검은 그렇게 한 적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검찰 위증교사 의혹에 대검찰청 결론만 남은 상황인데 어떤 결론이 나올 거라고 보나요?

 

심인보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두 개의 위증교사가 있는 거예요. 한만호 씨에 대한 위증교사가 있고, 한만호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벌인 죄수들에 대한 위증교사가 있는 거죠. 한만호 씨 위증교사의 경우, 당사자(한만호)가 돌아가셔서 진실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의지의 문제예요. 당시 기록이 다 있으니까. 결국 이것을 얼마나 적극 해석하느냐 문제잖아요. 두 번째 위증교사, 한만호 씨를 반박하기 위해 위증 교사한 죄수는 세 명이 있잖아요? 그중 두 명은 검찰이 위증교사를 했다고 주장했고, 한 명은 아니라고 주장했죠. 그런데 또 다른 증인이 나와서 모 언론에서 열심히 취재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일러요. 계속해서 관련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 보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고 판단해도 되지 않나 싶어요.

 

 

최승호 전 MBC 사장까지 삼각대 드는 곳 

신미희 다시 심인보 기자가 뉴스타파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돌아가 보겠습니다. 최근 승진했어요?(웃음)

 

심인보 네, 근데 승진은 아니고요. 뉴스타파 취재팀이 5개 있고 팀별로 기자 3~4명 정도가 있어요. 팀장이 되었지만 팀장이라고 취재를 안 하고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데스킹하고 지시만 하는 건 아니에요. 취재는 취재대로 하고 팀원들의 기사도 봐줘야 해요. 전 팀장이 김경래 기자였는데 너무 힘들다고 해서 팀원으로 내려오고 제가 팀장이 된 거거든요. 다른 언론사와는 달라요. 서로 팀장을 안 하려고 하지만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거죠(웃음).

 

신미희 순환형 팀장이네요? 기성언론에서 팀장, 부장 되면 현장에서 카메라 들고 뛰는 건 보통 안 하죠. 카메라 삼각대 들고 다니는 건 1~2년 차 기자들도 안 하잖아요, 영상팀도 따로 있고요.

 

심인보 방송사의 경우 취재에 4명이 나가요. 운전해주는 이른바 ‘형님’, 촬영기자, 오디오맨, 취재기자 이렇게 나가죠. 뉴스타파는 취재기자와 촬영기자 둘이 나가기 때문에 운전도 번갈아 하고 당연히 트라이포드(삼각대)는 취재기자가 들어요. 굉장히 효율적이기도 해요. 운전하는 건 힘들지만요(웃음). 방송사들도 점점 적자가 나서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뉴스타파에서는 MBC 사장을 지내고 얼마 전 복귀한 최승호 선배도 트라이포드 들고 땡볕을 누비며 4대강 취재하고 있어요. 선배들도 모두 그렇게 취재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좋아요. KBS 동기들이 막 팀장이 됐는데, 가끔 통화해보면 더 이상 현장에 안 간다고 해요. 취재 있어도 후배를 내보내고. 그러면서 엉덩이가 무거워지죠. 기자가 엉덩이가 무거우면 기자로서 생명이 끝나간다는 얘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현장취재를 하는 뉴스타파가 좋아요.

 

신미희 그래도 취재나 근무에 어려운 점이 있을 텐데요. 심인보 기자를 현장에서 즐겁게 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심인보 일단은 후원회원들이죠. KBS도 수신료로 운영되는 조직이잖아요. KBS 선배들도 ‘온 가정에서 2,500원씩 모아서 월급 주는데 열심히 안 할 수 있어?’ 이런 얘기를 많이 했죠. 하지만 KBS 수신료를 내는 가정은 너무 많아서 그 소중함이 잘 안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뉴스타파 후원회원분들은 3만 4천 명이에요. 그분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후원하는 거 아니거든요. ‘나는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인데 그래도 뉴스타파 후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으로 보내준 분도 있어요. 그러니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어요. 연말 ‘회원의 밤’과 매달 열리는 시사회 등 후원회원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요. 이렇게 회원분들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사람을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초년 시절부터 탐사보도 기자를 하고 싶었고, 그런 선배들이 진짜 멋있어 보였어요. ‘기자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교육도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탐사보도 기자로서 계속 살아야 되겠다는 자존심도 있는 것 같고요.

 

신미희 흰머리 날리며 현장에서 뛰는 기자, 아직 우리나라엔 없는데 심인보 기자가 한국 언론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개척해주실 걸로 믿습니다.

 

 

‘약자보호’ 보도에 충실하고 싶다 

박진솔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짚는 보도를 하면서 소회를 밝힌 SNS 글이 눈에 띄었어요. ‘권력 감시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언론 본연의 역할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앞으로 꼭 보도해야겠다고 생각한 내용이나 앞으로 다짐이 있다면요.

 

심인보 뉴스타파는 권력 감시와 약자보호, 두 가지를 본령으로 삼고 있어요. 그동안엔 여러 상황으로 권력 감시에 치중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자보호에 대해 노력하고 있지만 권력 감시에 비해선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권력 감시에 치중하고 있지만 약자보호를 위한 보도도 충실하게 하고 싶어요. 뉴스타파는 이런 느낌일 거 같아요. 평소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나와서 한번 쓱 휘두르고 사라지는 그런 매체로 느껴지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가 보도량은 적잖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매일 뉴스타파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뭔가 사회를 살면서 꼭 알아야 될 것, 혹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 이런 것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 같거든요. 뉴스타파가 그런 역할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신미희 뉴스타파는 민언련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고 있어요. 그래도 내부에서 ‘이런 부분은 역량을 좀 키워야 되겠다,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심인보 방금 말했던 것과 이어지는데 뉴스타파의 본령이 ‘폭로’잖아요. 권력자나 그 밖의 누군가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거죠. 언론학자들도 ‘언론의 권위는 폭로에서 나온다’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폭로’는 당연히 한 축으로 계속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연의 역할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지혜의 저널리즘’이라고 하잖아요. 네덜란드 ‘드 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라는 뉴스타파와 유사한 매체의 미션 스테이트먼트(강령)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날씨를 얘기하기보다는 기후를 얘기하는 언론이 되겠다’, ‘세상 여러 가지 문제들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거기에 반드시 해답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요. 그게 굉장히 와 닿았어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권력 감시, 폭로와 더불어 사회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뉴스타파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과한 욕심일지 모르겠지만요.

 

 

독자와 신뢰구축 과정에서 일어난 ‘후원중단’

박진솔 뉴스타파는 오직 시민들의 후원회비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독립언론이잖아요. 그런데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혐의사건 관련 ‘윤석열 녹취록’을 보도했어요. 이때 후원회원들이 꽤 이탈했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이 컸을 듯해요. 그럴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요?

 

심인보 당시 뉴스타파 전체 후원회원의 10% 가까이 탈퇴를 하였어요. 지금은 다 회복됐습니다(일동 박수). 그때 나갔던 분들이 똑같이 돌아온 건 아니고요. 일부는 돌아오고 새로운 분들도 들어왔습니다. 뉴스타파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이런 걸 겁이 나서 보도하지 못할 거면 문 닫고 집에 가자, 한국 사회에 뉴스타파의 효용이 있을 텐데 만약 시민들이 그 효용이 다했다고 판단한다면 그냥 문 닫자…. 물론 시민들이 뉴스타파의 효용이 끝났다고 인정할 시점이 그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은 안 하지만요.

 

뉴스타파 뉴스가 끝날 때 항상 리영희 선생 영상이 나오잖아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국익이 아니라 진실이다’ 저널리즘은 그런 관점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도로 어떤 정치적인 결과가 나오든 그 전에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우리가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는데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봐주는 분들은 우리와 가까워진 듯해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 쟤들이 저렇게 보도하는 게 당장 내 맘엔 안 들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주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독자와 우리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는 과정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신미희 정말 신뢰가 중요하네요. 지난해 10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뉴스타파 기사를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이 알려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언론사와 협업도 주저하지 않는다.” 최근에도 MBC와 협업으로 민언련 7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는데요. 이렇게 협업을 시도하고 있는 사안이 또 있나요?

 

심인보 부동산 관련해서 뭔가 하고 있는데요. 이젠 협업의 프로토콜(규칙)이 생겨서 처음보다 훨씬 부드럽게 이뤄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른 언론사에 요청한 적은 없지만, 협업 요청이 들어올 때 굉장히 열린 자세로 유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업방송, 상업지와의 협업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그래서 KBS, MBC 같은 공영방송 외에 협업 요청이 오면 거절해왔는데 앞으론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뉴스타파=언론계 1급수, 민언련=언론계 수질검사관

박진솔 민언련 회원이자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심인보 기자에게 민언련은 어떤 의미인지, 언론개혁을 위해 앞으로 민언련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심인보 우선 민언련과 에피소드가 좀 있는데 2008년 KBS 시절 얘기에요, 리포트를 하나 했는데 민언련이 뽑은 ‘이달의 나쁜 리포트’로 선정이 됐어요(웃음).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인데 ‘물가’ 리포트였어요. 연간 물가상승률을 보도했는데 민언련에선 ‘월간’으로는 물가상승률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정부 실정을 가리기 위해서 KBS가 연간 물가상승률로 보도한 게 아니냐’고 지적한 거죠. 제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요. 민언련 보고서에 리포트 제목이랑 기자 이름이 딱 나오잖아요. 그때, 아팠습니다(웃음).

 

사실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나면 그런 얘기를 해주는 곳이 없잖아요. 당시만 해도 기사 피드백을 받는 게 거의 없었어요. 댓글도 활성화돼 있지 않았고요. 오로지 선배가 ‘오늘 수고했다’, 아니면 다음 날 부장회의에서 ‘어제 리포트는 뭐, 좀 그렇더라’ 정도의 피드백만 있던 시절인데 날카롭고 아픈 피드백을 받은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민언련의 무서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요. 지금은 민언련 역할이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많은 매체가 난립하고 많은 주장이 나오고, 그중에 뭐가 진실인지는 합의가 안 돼요. 대화를 하려면 공통의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럴 때 기준을 제시하는 게 민언련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최승호 선배가 ‘우린 언론계 1급수가 되겠다. 혼탁한 언론에 적지만 맑은 물을 흘려보내겠다’고 강조하거든요. 그 말과 비교해보면 민언련은 ‘언론계 수질검사관’, 이렇게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요?(일동 박수)

 

신미희 열심히 수질검사를 잘할 수 있도록 실력도 쌓고, 신뢰도 얻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자리 빛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인터뷰․정리 신미희 사무처장 박진솔 활동가

사진 이병국 이사

동영상 고은지 활동가

 

▼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9.10월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_______2020__9.10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