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회원인터뷰] 충북민언련 생존 자체가 큰 보람 ‘새로운 활동가’ 만들어내는 게 꿈(이수희 회원)
등록 2020.10.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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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고 이재학 PD 사망사건에 대해 유가족과 CJB청주방송이 진상조사위원회 이행요구안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그가 사망한 지 170일 만이었다. 처음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청주방송에서 14년간 일하며 처우개선을 요구하다 부당 해고된 이 PD가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직후, 유족과 사측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약속했으나 사측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북지역 19개 시민단체는 ‘충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57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사측을 압박하면서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릴 수 있었다.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이수희 사무국장은 대책위원회를 만들 때부터 나섰다. 지난해 이 PD가 소송 중이란 기사를 보고 직접 연락해 만나기도 했으나 당시엔 공론화하지 못했다. 얼마 뒤 부고를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그 ‘미안함’은 이수희 국장이 170일을 버티게 해준 힘이 되었다. 비협조적인 사측의 태도와 무관심한 언론, 청주방송이 이수희 국장에게 제기한 1억 원의 명예훼손소송까지 참으로 험난한 과정이었다.

 

20년째 충북민언련을 지키고 있는 이 국장에게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규명 운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역에서 언론개혁운동을 펼치며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일까. “민언련의 힘이 더 컸더라면 이 PD가 억울한 죽음을 선택하지 않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제2의 이재학 PD가 나오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힘 있는 민언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 국장을 9월 14일 만났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실시되던 때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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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4자 합의식 후 청주방송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대책위 활동가, 김혜진 진상조사위원장,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본부 본부장, 유족 이대로 씨 등이 함께했다.

뒷쭐 왼쪽 세 번째가 이수희 국장. 사진=충북민언련 제공

 

민언련이 힘 있었다면, 그는 살아있을까

박채린(민언련 활동가) 정신없는 몇 달을 보내셨을 것 같아요. 고 이재학 PD 사망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였고,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으로부터 1억 원 손해배상소송까지 당했지요.

 

이수희(충북민언련 사무국장) 6월부터 7월까지는 대책위원회(시민사회단체 60곳으로 구성된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활동을 주로 했어요. 7월 28일 고 이재학 PD 명예복직 행사를 했고 합의도 했지만, 이행과제는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대책위원회를 해산하지 않고 잠시 멈춰둔 상태예요. 7월까지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정신없이 선전전, 천막농성을 하느라 바쁘게 보냈어요. 어느새 가을이 와버렸네요.

 

박채린 고 이재학 PD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마지막 농성장에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수희 6월 22일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빨리 합의될 거라 예상했는데 여러 차례 번복되면서 한 달 정도 걸렸어요. 기대했다가 오늘 못하고, 일주일 후에 또 하기로 했다가 안 되고…. 합의가 되긴 될지 의문스러웠고, 막판에 가서야 합의가 되니까 복잡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던 거 같아요. 지난해 7월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고 이재학 PD를 처음 만났거든요. 살아계실 때 더 많이 돕고 연대했으면 고인이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으로 부끄러운 마음에 눈물까지 났던 거 같아요. 미안함이 커요.

 

박채린 직접 만난 자리에서 고 이재학 PD가 ‘믿음이 안 간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

 

이수희 사건을 공론화하자고 제안했는데,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길 했어요. 이두영 회장 영향력이 크다고요. 어디에 이야길 하면 그 다음날 ‘어디서 이런 이야길 했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었나 봐요. 민언련뿐 아니라 지역 시민사회가 듬직한 모습을 못 보여준 것인지, 공론화해도 문제를 잘 해결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였는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죠. 동료들에게 피해갈 것을 많이 우려하여서 더 설득을 못 하고, 재판을 지켜보겠다고 말했어요. 그 이후 듣게 된 소식이 부고였습니다.

 

박채린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겠네요.

 

이수희 우리가 언론감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처음부터 민언련을 찾아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그렇지 못했던 거잖아요. 진즉 그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문제제기도 많이 해오고 그랬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우리가 막강한 힘이 있는 시민사회단체였다면 달랐을 거라는 복잡한 생각도 했습니다.

 

박채린 그럼에도 진상규명 운동에 충북민언련을 포함해 19개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잖아요.

 

이수희 많은 단체와 시민사회, 노조가 함께했어요. 이 사건에 분노하는 마음이 정말 컸어요. 그분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고, 또 남의 일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연대를 많이 해주었어요.

 

박채린 언론은 언론계의 문제임에도 외면하거나 소극적으로 보도했는데요.

 

이수희 신문은 아예 보도하지 않다가 마지막 합의 소식만 전했어요. 방송도 익명처리해 보도하다가 점차 실명 보도를 했고요. 같은 언론계 문제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관행도 작용했다고 봐요. 청주방송과의 관계, 지역에서 이두영 회장의 힘도 작용했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지역언론은 당장의 생존이 더 급했던 게 아닌가,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역언론 역할 바로 잡아야’ 창립의 시작

박채린 열악한 경영상황과 폐쇄성 등 지역언론이 처한 사정도 있잖아요. 그래서 충북민언련의 역할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수희 충북민언련이 2003년 11월에 창립했거든요. 충북 지역언론 환경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요. 흔한 말로 지역언론은 세가 좀 약하고 영향력도 적죠. 일간지가 난립해 있고, 대부분 열악한 경영형편에 놓여 있어요. 안정적으로 광고주 노릇하는 게 지방자치단체 정도이고요. 지자체가 주요한 광고주 노릇을 하다 보니 지역언론이 지방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를 잘 하지 않아요. 지자체 보도자료는 잘 기사화되는데, 정책이나 지역주민이 꼭 알아야 하는 이슈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많이 못 하고 있죠.

 

신미희(민언련 사무처장) 충북민언련은 2003년 창립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수희 충북지역에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어요. 그곳에 언론문제 다루는 분과형태의 위원회가 있었고요. 예전에도 지역언론 보도행태에 문제가 많았죠. 민언련이 지역언론의 역할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이 나왔고,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분들이 후원금을 내어 창립 발판을 마련했어요. 저는 창립 준비 단계였던 2003년 9월부터 시작해서 두 달간 창립 준비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죠.

 

신미희 충북민언련 역사의 산증인이네요.

 

이수희 그렇게 됐습니다.(웃음)

 

신미희 20년간 하게 될 줄도 몰랐겠어요?

 

이수희 그때 혼자 상근했는데, 출근하면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민언련을 찾아가서 언론학교 수업도 듣고, 홈페이지에 실린 성명과 모니터보고서를 읽으면서 성명은 이렇게 쓰고, 보고서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하면서 공부했죠.

당시 충청일보 직장폐쇄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충청일보 바로세우기 도민대책위원회가 결성이 됐거든요. 그 과정에서 언론노조, 지역 시민사회와 연대하면서 지역에 이런 게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런 큰 사건이 없었더라면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을 텐데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됐죠. ‘민언련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20년이 지났네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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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이 청주방송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충북민언련 제공

 

충북민언련 생존 자체가 보람

신미희 20년간 충북민언련과 함께 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고,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요?

 

이수희 농담 삼아 말하면 생존해 있는 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일동 웃음).

사실은 아주 어려워요. 지역언론의 형편이 안 좋잖아요. 영향력도 없는 편이고요. 그래서 지역언론 문제를 이야기하는 충북민언련의 목소리도 그렇게 주목받지 못해요. 언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는 역할도 소중하지만, 대다수 지역주민에게 공감을 얻고 동참하게끔 하는 데는 많이 부족했어요. 그럼에도 최근 후원금 모금행사를 열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었어요.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필요성을 알아주는 분들이 있구나 싶어 보람 있었죠.

지난 17년을 돌아보면, 2007년 3월 1일에 3‧1절 88주년을 맞아 ‘신문으로 위장한 반민족 범죄집단 조선일보 규탄 기자회견’을 연 것도 의미 있었고요. 충북지역 기초자치단체 곳곳에 있는 풀뿌리 언론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한 것도 보람 있었어요. 충북민언련이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활동을 담은 책을 만들었는데 그때도 아주 기뻤어요.

 

신미희 충북지역에 민언련이 생기기 전과 후가 시민사회에도 변화를 주었을 것 같아요. 민언련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시나요?

 

이수희 확실히 지역언론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단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있어요. 그전에도 많은 시민단체가 언론문제를 인식하곤 있었지만 공론화는 힘들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충북민언련이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지역언론의 문제만 지적한 게 아니라 지역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지역언론이 왜 필요한지를 포함해 지역언론이 있어야 지역 민주주의도 살아난다는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해온 것이 충북지역 시민사회에도 도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채린 충북민언련 활동 중에 ‘충북뉴스브리핑’이나 ‘시민언론학교’가 있더라고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언론문제를 공론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 대한 언론교육도 충북민언련의 소중한 역할인데, 그것의 일환으로 보였어요. 특히 지역 일간신문을 솎아보는 ‘충북뉴스브리핑’을 오랫동안 발행한 것으로 아는데요. 쉽지 않은 활동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브리핑 중단 후엔 어떤 활동으로 이어질지도 궁금합니다.

 

이수희 사람들은 지역신문이나 뉴스를 잘 보지 않아요. 그래서 지역뉴스를 알아야 지역언론 문제를 이야기하는 우리 단체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지역 일간지를 보면서 매일 아침 클리핑하는 수준으로 소개를 한 거죠. 2009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10년을 했어요. 많은 분들이 뉴스브리핑 잘 보고 있다고 전해주어서 보람 있었죠. 그럼에도 중단한 이유는 모니터링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역 현안에 대한 맥락을 살펴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제대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하반기에 재개할 계획입니다.

 

신미희 ‘시민언론학교’도 소개를 부탁드려요. 민언련도 ‘언론학교’란 교육프로그램이 있는데 현재는 쉬고 있거든요. 주민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이수희 시민언론학교는 코로나19 탓에 상반기엔 못했는데요. 6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월례강좌 형태로 하고 있어요. 2012년도까진 언론학교를 하다가 좀 오래 쉬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서 잘 되고 있어요.

 

신미희 몇 분이나 참여하고 있나요?

 

이수희 강좌에 따라 다른데요, 평균 스무 명에서 스물다섯 명 정도에요.

 

신미희 어떤 분들이 주로 강연을 하나요?

 

이수희 첫 달인 6월엔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가 한국 언론의 전반적 문제를 살펴보는 강의를 했고요. 그 다음 달엔 뉴스톱 김준일 대표기자의 ‘가짜뉴스와 팩트체크 저널리즘’ 강의를 했어요. 8월에는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의 ‘미투 이후의 한국언론’을 주제로 강의했고요. 9월에는 언론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인권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수강생들이 여성이나 인권문제에 관심이 상당히 높더라고요.

 

지역민과 떨어져 있는 지역언론

신미희 다시 지역문제로 돌아가서요. 우리나라에서 서울중심주의, 이른바 중앙집권 시스템이 오래되다 보니 언론에서도 특정지역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20년간 지역에서 지역시민운동 하면서 한국 언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뭐라고 생각하는지요?

 

이수희 지역언론이 지역민과 떨어져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건 단순히 지역언론에 무관심한 지역주민을 탓할 문제는 아니에요. 지역언론이 지역주민을 위해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봐요. 보도량은 많아요. 하지만 과연 지역주민을 위한 보도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열심히 하는 지역언론도 분명히 있고 주류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이슈를 찾아다니는 대안미디어도 생겨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충북지역 언론이 지역주민의 삶을 많이 놓치고 있어요.

 

박채린 지역주민과 좀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언론을 만들기 위해 충북민언련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뭘까요?

 

이수희 중요한 부분인데요. 지역언론이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를 지역주민에게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지역언론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이를테면 언론사 사주 문제나 지역 토호세력이 기득권을 행사하는 데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 등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지역에서 심각한 현안이 많았어요. 청주에 SK하이닉스라는 대기업이 있는데요. LNG발전소를 도심에 지으려고 하고 있어요. 시민사회는 기자회견이나 집회, 1인시위를 하면서 반대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역언론은 이 문제를 찬반 갈등으로만 다뤄요. LNG발전소가 지어질 경우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판단도 하지 않고 찬반 갈등에 휩쓸리게 만드는 거죠. 시민들은 갈등 속에서 뭔가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고요. 그런 식의 과정이 내내 반복되고 있어요.

지역언론이 지역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다 보니 지자체가 언론에 공적 지원을 하게 된다면, 이런 보도에 우선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크고요.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도 미디어 정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지역주민들의 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거나 비영리 미디어를 지원해서 더 많은 지역주민들이 지역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그런 주장을 계속해 나가야죠.

 

사무국장으로서의 꿈, 인간 이수희의 꿈

신미희 이수희 국장으로서 꿈이 무엇인지, 또 인간 이수희의 꿈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수희 가장 급한 문제는 빨리 새로운 활동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새롭게 꿈꿀 수 있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후배 활동가를 키워내는 게 큰 과제고, 그걸 해결해야 저도 좀 다른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아요(일동 웃음).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는 ‘투사형 활동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역언론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라서 좀 외로운 면이 있어도 감안하고 활동을 해왔지요. 음… 충북민언련이 유지되는 게 개인적인 꿈이에요. 너무 작위적인가요(웃음)? 사실 개인적인 꿈으로 생각해본 게 별로 없네요.

 

신미희 모든 삶이 민언련 안에 있네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충북민언련이 20년을 달려왔는데 함께하고 있는 회원 분들, 전국 민언련 회원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수희 항상 고마운 마음이 커요. 회원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언론개혁이잖아요. 이걸 위해 노력하는 우리 민언련의 회원이 되어주는 분들은 그 누구보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를 지지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마음에 정말 감사하고요.

충북민언련은 지역언론의 구조적 문제, 비정규직과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갖고 계속 목소리를 낼 계획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회원 분들이 좀 더 공감할 수 있게끔 다양한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정리 신미희 사무처장 박채린 활동가

사진제공 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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