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2021년 1월호] [영화이야기] 시각장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
등록 2021.02.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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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오브 라이트 逆光飛翔 Touch of the Light> / 감독 장영치 / 주연 장용용, 황유상, 이열, 가숙근 / 개봉 2013년, 대만

 

시각장애인이 있다. 그는 보는 것 외에는 사는 데 불편한 게 없다. 가족으로부터 사랑도 듬뿍 받은 사회성 좋은 청년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미덕도 갖추었다. 게다가 그의 청각 능력은 남들보다 뛰어나고, 피아노 연주는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다.

 

그리고 비장애인이 있다. 그녀는 사는 데 불편한 게 전혀 없다. 사실 그녀는 마음의 장애를 갖고 있는데, 겉으로는 식별되지 않아 시각 장애인인 그가 받아야만 했던 차별적인 시선을 받는 아픈 경험을 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녀는, 설령 마음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장애인에게 보내지는 차별적인 사회적 시선의 발신자 자리에 설 수도 있다.

 

그녀는 다행히도 장애인에게 차별적 시선을 주는 유형은 아니다. 비장애인 중 일부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그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속성은 무시한 채 그의 전부를 열등한 것으로 보거나 혹은 그 자체를 어떤 귀찮은 생명체쯤으로 취급한다. 이런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토닥이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니 영화 <터치 오브 라이트(Touch of the Light, 逆光飛翔)>가 그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그저 ‘다른’ 소통 수단

대만에서 온 이 영화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수혜자로 위치 짓는 구태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가 인간을 얼마나 인간답게 만드는지, 이 세상을 얼마나 더 살맛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빛난다.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걷고 뛸 수도 있고 듣고 말할 수도 있는 아이를 버리려 했다니….” 엄마는 생후 3개월 된 아이가 시각 장애 판정을 받자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병원에 버릴 생각을 잠시 했다며 과거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그 아이가 훌쩍 자라 음악대학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터치 오브 라이트>는 대만의 천재 피아니스트 황유시앙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걱정과 사랑을 고향 집에 남기고 엄마와 함께 대학이 있는 도시로 진입하는 황유시앙(황유시앙이 직접 출연)의 귀에 도시의 다양한 소음들이 들어온다. 불편하고 낯선 도시의 소음 틈으로 어떤 여자의 좋은 목소리가 들리자 유시앙은 찰나지만 유난하게 관심을 둔다. 목소리의 주인공 치에(장용용)는 테이크아웃 찻집 직원으로 신학기를 맞아 대학생을 상대로 가게 홍보를 하던 중이었다.

 

치에는 스쳐 지나가는 시각장애인 남자를 짧은 순간이지만 유심히 본다. 그녀의 눈길이 유시앙이 청각으로 치에를 처음 감각하는 순간과 겹친다. 서로 다른 감각의 작동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인지했다고는 생각지 않고, 혼자만 상대를 감지했다고 생각한 채 스치기 때문에 두 인연의 시작은 관객만이 감지한다. 두 주인공 유시앙과 치에의 서로 다른 감각이 부딪는 이 짧은 장면을 통해서 감독은 이 영화가 둘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관객에게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시각과 청각은 위계화될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의 소통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둘이 잠시 스치는 이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유시앙과 그 대척점의 치에를 오가면서 전개되는데, 두 사람의 에피소드를 마치 문단 나누듯이 교차해서 보여주는, 예를 들면 “한편 치에는 ~ 이러저러하다. 한편 유이상은 ~ 이러저러하다. 치에는 ~ ”의 방식으로, 복잡하지 않고 명료한 플롯 구성 방식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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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앙(왼쪽)과 치에(오른쪽)는 서로 다른 감각으로 소통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서로 알아가기에 어떤 감각도 유일하지 않다

엄마는 유시앙 혼자서 기숙사 생활을 해낼 수 있게 책상과 옷장을 정리해서 사물들의 위치를 일러준다. 또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기숙사와 음악실 사이를 오갈 수 있게 유시앙의 손을 잡고 왕복하면서 훈련시킨다.

 

그 덕에 유시앙은 ‘복도 끝까지 걸어 나온 후 열 개의 계단을 두 번 걸어 내려가서 기숙사 건물 입구의 문을 나서면 열 걸음마다 나무가 있고, 그 나무 네 그루를 지나고 돌이 많은 길에 있는 여덟 개의 기둥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교실인’ 길을 발걸음과 손의 촉감으로 혼자 오갈 수 있게 된다. 강의를 듣고, 룸메이트와 함께 음악동아리 활동도 하고, 인근 맹인초등학교에 방과 후 음악교실 지원을 나가기도 하면서 대학생활을 자신의 꿈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로 즐겁게 만들어 간다.

 

한편 비장애인 치에의 삶은 어정쩡하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 자신의 꿈을 포기했지만 그 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꿈을 만들지도 못한다. 대학에 진학해서 무용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로 포기하고 찻집에 취업했다. 차를 주문받고 차 배달을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똑같은 매일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살고 있다. 자신의 꿈과 바꾼 적은 월급을 번번이 홈쇼핑 중독인 엄마에게 죄다 갖다 바치지만 투덜댈지언정 엄마를 외면하지는 못한다.

 

그녀가 대학 댄스동아리 대표를 맡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매달렸던 이유는 그가 춤을 추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버림을 받자 대리만족시켜주던 대상을 상실한 그녀는 완전히 꿈을 접든지, 스스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든지 양자택일의 길에 선다. 그 갈림길에서 치에는 유시앙과 우연히 마주친다.

 

도로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유시앙을 차 배달하던 치에가 우연히 발견하고 그를 맹인초등학교에 데려다준 날, 청각을 이용하는 두 사람의 소통은 시작된다. 초등학생들을 위해서 유시앙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눈을 감고 피아노에 기대서 청각과 촉각으로 피아노 선율을 감각하던 치에는 진심으로 감동한다. 이후 둘 사이는 가까워지고 대화가 늘어간다.

 

“춤을 출 때만이 내가 정말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는 치에의 고백에 유시앙은 춤을 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치에는 유시앙의 손을 이끌어 춤을 가르쳐준다. 유시앙이 피아노를 치고 그 선율에 맞춰 춤을 추던 치에는 유시앙을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행복한 함박 미소를 짓는다.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사람 사이의 교류 수단으로 시각이 유일하지 않다고, 어떤 감각도 유일하지 않다고, 중요한 것은 배제하지 않고 교류하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염찬희 회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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