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022년 겨울호] [영화이야기] 아디오스 서울! 서울극장에서 보낸 10년
등록 2022.04.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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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흔들릴 땐 영화를...

 

우리 소식지에 『영화 이야기』를 쓴 지 8년째다. 2015년 2월호 「44살에 뽑은 21세기 영화 44편_첫 번째, 44위 ~38위」를 시작으로 26회에 걸쳐 영화 69편을 소개했다. 어떤 이별, 행복을 주는 사람, 어떻게 사랑할까, 꿈을 이루지 못해도 등 소주제를 정해 관련 영화를 소개하거나 영화배우 키키 키린, 로버트 레드포드, 왕조현, 소피마르소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재홍 회원님, 영화평론가 염찬희 회원님과 번갈아 이야기를 쓰는데, 내 순서가 오면 긴장한 채 머리를 쥐어짰다. 마음속으로 기다리던 “회원님 이제 그만 써도 됩니다.”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화 이야기』를 쓰는 동안 44살에서 51살이 되었다. 난 여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로 수없이 번민한다. “머릿 속 생각을 다 말하는 게 아냐!(영화 미스터 홈즈 중)” 같은 평범한 가르침조차 잘 따르지 못했다. 사십 대를 지나 오십 대 접어들면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은 감정이 있다. ‘왠지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거 같단 불안감’이다. 정체가 명확하지 않아 실제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별거 아닌 일을 떨쳐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또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을 붙들고 있다. 남에게 말 꺼내기도 민망하다.

 

마음이 흔들릴 때 영화만큼 다정한 친구가 없다. 발길이 자연스럽게 광화문·종로로 향했다. 씨네큐브, 씨네코드 선재, 스폰지하우스, 서울극장에서 평정을 찾곤 했다. 이중 으뜸은 서울극장이었다. 종로3가 도심에 우뚝 섰지만, 정서적으론 외떨어져 되레 평화로운 공간이랄까. 어떤 날은 영화를 보지 않고 극장 로비 의자에 앉아서 비 내리는 종로를 무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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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장 전경과 내부모습 (출처 = 저자 제공)

 

43년 만에 문닫은 서울극장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저녁 6시 45분 서울극장 마지막 상영작 《홀리 모터스》가 끝났다. 지하 8관에서 오후 4시 50분에 시작한 영화, 관객 60여 명이 서울극장 엔딩을 함 께했다. 서울극장은 1978년 9월 17일 개관한 후 43년 만에 영업을 종료했다. 멀티플렉스 시대를 꿋꿋하게 버텨냈으나 코로나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 달 적자 1억 원. 오랫동안 영화를 사랑하고 서울극장을 아낀 관객을 위해 활로를 찾았지만,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영화 생태계는 급격하게 변화해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영화관을 찾는 관객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1980~1990년대 서울 시내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단성사, 할리우드, 스카라, 중앙, 아세아, 국도극장이 진즉 폐관하거나 용도를 변경했고, 2022년 3월 현재 충무로 대한극장 홀로 비멀티플렉스체인 영화관으로 남았다.

 

1978년 합동영화사는 세기극장을 인수해 그해 7월 1일 부터 9월 16일까지 개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9월 17일 추석 당일에 《마지막 겨울》을 개관 첫 영화로 개봉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정소영 감독 연출, 김동현·이영하·유지인·윤유선 주연 작품이다. 관객 122,459명이 다녀갔다. 당시 서울극장 신문 홍보 카피는 “젊은이의 싸롱, 연인들의 휴게실 종로3가 번화가에 개봉관 탄생!”이다.

 

서울극장은 1989년 한국 최초로 멀티플렉스 모양새를 갖췄다. 그해 7월 29일 영화 세 편을 동시 개봉하며 새 시대를 열었다. 주인공은 이장호 감독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찰리 쉰 주연 《메이저리그》, 주윤발·이수현 주연 《첩혈쌍웅》이었다. 서울극장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인드가 매우 공고했다. 한국영화, 외국영화, 상업영화, 예술영화, 블록버스터, 인디영화 등 세상에 나온 모든 영화를 상영했다.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특정 영화에 상영관을 왕창 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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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장 개관 및 첫 상영안내 신문광고 (출처 = 저자 제공)

 

1987년 고등학교 1학년 11월 처음 서울극장에 갔다. 단관 시절,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고릴라》를 봤다. 1989년 12월 전기 학력고사를 치르고 1관(칸느관)에서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봤다. 당당하게 수험표를 보여주고 성인영화였던 김호선 감독, 강리나 주연 《서울무지개》를 관람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극장에서 영화 108편을 관람했다. 어벤져스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같은 할리우드 대작 액션 영화에서 한국 영화 <지슬>, <버닝>, <1987>, <기생충> 까지.

 

2017년 민언련 회원상영회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2017년 1월 16일 열린 민언련 회원상영회다. 서울극장 5관에 모여 이명박근혜정부 시절 YTN, MBC 해직언론인들 투쟁과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 / 연출 : 김진혁》을 함께 봤다. 영화 보는 내내 몇 번이나 울컥했다.

 

영화는 2008년, 2012년 YTN과 MBC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해직언론인의 지난했던 7년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노종면, 최승호, 이용마. 비교적 익숙한 얼굴뿐만 아니라 박진수, 정영하, 현덕수, 조승호 등 언론장악, 불 공정 보도에 맞서 언론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이들의 삶과 진심을 담았다.

 

2014년 11월 27일 대법원은 2008년 10월 7일 YTN에서 해고된 해직 기자 6명 중 '3명 해고는 정당, 3명 해고는 무효' 라고 최종 판결했다. 판결 후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기자들 앞에 섰다. 마침 주위에 다른 사건 판결 때문에 억울하다며 통곡하는 여인이 있었다. 어색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소감을 밝히려던 노종면 기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울음소리는 여인의 곡소리보다 낮았지만, 비통한 심정은 하늘을 흔들었다. 얼마나 애통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천만 명이 넘는 시민을 광장으로 끌었다. 분노한 시민은 반드시 청산해야 할 적폐 우선순위로 언론을 꼽았다. 국정농단 공범으로, 공작정치 부패정치 부역자로 기생한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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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 그들이 없는 언론> 포스터와 서울극장에서 이를 함께한 민언련 회원 (출처 = 저자 제공)

 

안녕! 고마웠어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워터버그 국립공원에 워터버그나비가 서식한다.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몇 년 전 새롭게 발견한 희귀종이다. 특이하게도 워터버그 애벌레는 개미들이 키운다. 개미는 자기 몸보다 수십 배 큰 애벌레를 풀잎으로 밀어 올려 먹이를 뜯게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애벌레가 먹이를 먹는 동안 분비하는 체액이 개미가 좋아하는 영양분이기 때문이다. 워터버그 나비 애벌레와 개미는 운명적으로 공생한다.

 

서울극장에서의 필자와 모가디슈 관람을 마친 2021년 8월 13일.jpg

서울극장에서 찍은 사진과 모가디슈 관람을 마친 2021년 8월 13일 (출처 = 저자 제공)

 

과한 표현이지만 지난 10여 년 나는 서울극장에 기대어 공생했다. 난 여기에서 헤매던 심정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하게 머물렀다. 서울극장은 언제나 따뜻하게 베풀며 나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위로했다. 2021년 8월 31일 서울극장 마지막 영업일에 가지 못했다. 서울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는, 2021년 8월 13일 오후 4시 20분 2관(하)에서 시작한 《모가디슈》였다. G열 23번에 앉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야 정식으로 서울극장에 이별 인사를 전한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글 김현식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꿀벌사샤 프로듀서

 

▼날자꾸나 민언련 2021·2022년 겨울호(통권 220호) PDF 보기▼

https://issuu.com/068151/docs/_2021_2022_220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