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여름호] [영화이야기] 이주자 차별에 날린 통쾌한 한 방
등록 2022.08.0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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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막말'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2022년 5월 중순 YTN을 필두로 CBS, SBS, JTBC, 그리고 전국 일간지에 서 쏟아졌다. 2021년 8월, 이사를 계획하던 한 남성이 전입신고 절차를 문의하려고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듣게 된 혐오 발언에 대한 피해 보도다. 관련 절차가 복잡한 외국인 아내의 전입신고를 물어보고 전화를 끊으려던 그의 귀에 민원인 응대가 끝났다고 생각한 공무원이 옆 사람과 나누는 사담이 들려왔다.

 

"외국인 여자랑 결혼해서 더럽게 사람 짜증나게 하네. 자기가 부끄러우니까 안 데리고 오고 싶어하는 거잖아 요. 거지같은 xx가 다 있어. 꼭 찌질이 같아...."


어이가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다. "(국제결혼에 대해) 선생님한테 하는 말이 아니고, 뭔가 정말 막 늦게까지 장가를 못 가서, (외국인과) 결혼하고 그냥 약간 애 낳는 그런 수단으로 쓰는 것 같았거든요. 매체에서 보고." 사과를 하겠다며 직장 선배와 함께 나타난 공무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찌질이, 씨받이 등의 혐오 발언은 외국인 중에서도 백인이 아닌 유색인 아시아인과의 결혼에 대해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견고하게 가져온 보편적 편견이 어떤 사람의 입에서 우연히 새어 나온 것은 아닌가. 키르기스스탄 출신 아내와 한국인 남편은 참혹한 사회적 차별을 무방비 상태로 겪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두렵다고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이들은 불화하게 되었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8개월을 끙끙 앓던 부부는 자신들의 피해를 공론화하기로 하고 지난 5월 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주여성에게 직접 말할 기회를 준 〈빠마>

이 사례는 다문화가정,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현실의 징표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회의식이 있는 일부 대중 매체가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사실이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382편을 방송한 EBS의〈다문화 고부열전〉이 대표적인 예로, 매체는 결혼이주여성 이 남편의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희생하고 갈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프로그램은 그들은 한국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을 스스로의 역할로 설정했다. 그런데 이 노력을 문제시하는 영화가 나타났다. 다문화가정의 이야기 화자를 한국인 남편 혹은 시어머니에 맡겼왔기 때문에 이주 여성은 대상화 되어왔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온전히 이주여성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독립영화 〈빠마(Perm)〉(2021)가 그것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방글라데시 출신 섹 알 마문(Shekh Al Mamun)은 한국에 와서 이주노동자로 살다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후 귀화했다. 〈빠마〉가 5월 20일 디아스포라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자리에서 마문 감독은 떨리는 음성으로 "해외영화제 여러 군데에서 수상도 하고 상영되었지만 한국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될 줄 몰랐다.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인 척할 필요가 없는 진짜 이주민이다. 2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면서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경험했다. 그 경험은 30분이라 는 짧은 극영화 〈빠마〉의 주인공인 결혼이주여성 니샤에게 입혀졌다.

 

영화이야기_시어머니에게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는 니샤(출처 = 필자제공).jpg

<빠마(perm)>(섹 알 마문, 2021)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는 삶을 위하여

농촌 총각에게 시집온 방글라데시 출신 니샤는 홀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한국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제법 해내는 니샤지만 시어머니가 말하는 "듬성듬성 썰다" 등과 같은 표현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니샤는 다문 화지원센터에서 열심히 한글을 배우고 있지만, 며느리가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의 조리법을 익혀서 직접 해주 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가르치는 시어머니의 말을 이해하기에는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여전히 부족하 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크게 세 건의 갈등 상황을 에피소드로 나열한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갈등은 아이 낳기이다. 아이를 빨리 낳으라는 시어머니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니샤가 한글 공부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더 하고 난 후 에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하자 둘은 팽팽히 대립한다. 니샤가 다문화지원센터에 가버리자 시어머니는 깊은 한 숨을 내쉬는 걸로 대립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은 아이가 있어야 도망가지 않고 마음 을 붙이고 산다는 친구의 부추김을 받은 남편으로 인해 갈등이 되풀이된다. 남편은 니샤에게 아이 낳기를 거 부하는 가장 큰 이유인 한글 공부를 그만두라고 강요한다. 말다툼 끝에 남편은 그녀의 책들을 땅바닥에 내동 댕이치고, 니샤는 집을 나간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지만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는 니샤 걱정에 안절부절 하던 남편은 그녀의 공책을 펼쳐 보게 된다. 한글로 적어내려 간 니샤의 일기에는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이가 없어서 니샤가 도망갈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사라지면서 갈등은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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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마(perm)>(섹 알 마문, 2021)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저녁으로 고기를 실컷 먹자면서 신이 나서 고기를 굽는 남편으로부터 시작한다. 남편은 자신과 어머니 몫으로 돼지고기를 굽고, 그보다 적은 양의 소고기를 다른 프라이팬에서 구워 아내에게 준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안 먹는 방글라데시 식문화를 고집한다는 이유로 니샤를 못마땅해 하고, 아들을 타박하면서 세 사람 모두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시아버지 제사를 준비하던 시어머니는 제사에 참석할 시작은아버지에게 니샤가 단정해 보이도록 머리를 파마시키면서 시작한다. 짧고 꼬불거리는 니샤의 파마머리를 흡족해하면서 시어머니는 니샤에게만 한복을 입으라고 강요한다. 아들은 양복을 입고 시어머니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 제사를 끝내고 음복하는 자리에서 시작은아버지는 니샤에게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빨리 한국 사람이 되어야"하고, 남편을 닮은 "한국 사람처럼 생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의 언어폭력을 어른이라는 권위에 기대어 거침없이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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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마(perm)>(섹 알 마문, 2021)

 

이때, 차별적 언어의 홍수 속에서, 니샤는 어눌하지만 강단있게 내뱉는다. "씨발".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한복을 벗어던지고, 파마 머리를 가위로 잘라낸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방글라데시 복장으로 갈아입은 니샤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마지막 시퀀스는, 이주자들에게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해, 한국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요구하지 말라는,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자는, 마문 감독의 일갈이다.

 

영화 〈빠마〉는 이주자를 타자로 대하던 한국인 관객들에게 타자되기 경험을 제공해주는 아주 쌈박한 영화다.

 

염찬희 회원, 영화평론가

 

▼날자꾸나 민언련 2022년 봄+여름호(통권 221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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