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꾸나 민언련_

2019년 6월,날자꾸나 민언련 영화이야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영화 <증인>
등록 2019.05.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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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 영화 <증인>

80대 노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가 있었다. 검찰은 목격자의 말을 근거로 가정부가 자살로 위장하고 주인을 살해했다고 판단하여 기소했다. 물증은 없다. 구속 수감된 가정부는 주인이 자살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부는 국선 무료 변론을 신청한다. 이 사건에 매스컴이 관심을 보이자 대형 로펌 리앤유는 무료 변론을 하겠다고 나선다. 약자를 도와주는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기득권의 하수인이라는 그간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벗어버릴 기회로 삼고 싶어서였다. 로펌 대표는 승소를 자신한다. 이유는 검찰이 물증 없이 목격자의 증언만 믿고 기소를 했는데, 목격자가 만 15세의 자폐아라는 점에서 검찰이 무리수를 두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보적 법률가 단체인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실력도 좋은 양순호(정우성)에게 그 일을 맡긴다. 그를 대표변호사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의 좋은 이미지를 이용해서 회사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려는 대표는 순호에게 이 사건을 승소로 이끌면 능력을 인정해 파트너 변호사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당근을 덤으로 얹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순호가 할 일은 검사가 기소한 노인 살해 사건을 노인 자살 사건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우선 피고인을 접견한다. 무료 변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받으면서 시작된 가정부 오미란(염혜란)과의 만남에서 순호는 그녀가 무죄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미란이 보이는 약자 특성 때문이다. 가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미란이 순호를 일컬어 자신을 도와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순간,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사탕 한 알을 부끄럽게 순호 손에 쥐어주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순호는 그녀를 약자의 범주에 분류해 넣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믿는다. 10년간 모신 주인이 자살하려는 것을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는 미란의 진술을 진실이라 믿게 된다. 이후 사건 현장을 확인하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동네 부동산 사장이 미란의 변호사라는 자신의 소개에 착한 미란을 도와주실 분이군요 라며 되받아치는 순간 순호는 미란에 대한 무죄 판단을 확신하게 된다.

 

영화 <증인>(2019, 이한 감독)에는 두드러진 두 개의 편견이 존재하는데 그 하나가 미란에 대한 편견이다. 미란의 무죄 확신은 순호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혹은 약자는 착하다. 그리고 덧붙여 순호 자신은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까지, 이것들은 편견이다. 그는 개별성을 정확히 인지하는 노고를 회피하고 약자를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뭉뚱그려 사유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 결과 진실은 왜곡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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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는 검사 측 증인인 자폐아의 증언이 증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면 승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만나러 간다.낯선 순호를 피하던 지우는 반복해서 찾아와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연다. 순호가 어려운 논리 문제, 어려운 수학 문제를 내면 지우는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면서 둘은 소통하는데 성공한다. 지우는 자신의 세계 밖으로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로 들어와 준 순호와 친해진다. 등하교 길을 같이 해주던 유일한 친구 신혜로부터 폭행을 당한 지우는 친구의 신혜의 자리에 순호를 들인다. 웃는 얼굴의 신혜가 자신을 이용했다면서, 웃는 얼굴의 아저씨도 자신을 이용할 건지를 묻는 지우의 질문에 순호는 답변을 하지 못한다. 지우는 순호의 요구대로 법정에 증인으로 선다. 순호가 지우에게 접근했던 목표의 첫단계가 이루어진 순간이다. 이때부터 영화 <증인>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소녀의 증언을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세상이 말하는 대로, 변호사 순호가 믿는 것처럼, 자폐아의 증언은 과연 증거 능력을 갖지 못하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세상의 시선을 문제화하기 시작한다. 자폐아 동생을 두어서 자폐아의 특성을 익히 알고 있는 검사는 자폐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다는 지우의 증언은 효력을 갖는다고 피력한다. 그렇지만 순호와 로펌 대표로 이루어진 변호인단은 자폐아 지우의 판단 능력 부족을 입증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자살을 막으려고 한 미란의 행동을 살해하려는 행동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판결문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자폐인이 시각을 지배하여 자폐인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미란은 무죄로 풀려난다. 그 순간부터 순호는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면서,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정보들이 속속 다가온다. 혈혈단신이라던 미란에게는 애비없는 아들이 있고, 입양보냈던 아들이 아파서 큰 액수의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사실, 죽은 노인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계법인의 자금 사정이 어려운데 아버지는 전 재산을 소아병원에 기부하려 했다는 사실, 자폐 소녀 지우는 멀리서 들리는 속삭이는 소리까지도 듣는 청각 능력과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갖고 있어 노인이 살해되던 새벽 미란이 읊조리던 말들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복기해낼 수 있다는 사실. 순호는 자신이 편견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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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항소하자 순호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다. 좋지 않은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성찰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으로 고스란히 감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나서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순호는 그렇게 했다. 16세 소년이던 때부터 좋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순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좋은 일을 하고자 법조인을 꿈꾸는 아들을 보면서 잘 자라주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두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순호에게 속물 변호사로 변해간다고 지적해주는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냐고 물어주는 어린 친구 지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람다운 삶을 살려는 우리 모두는 순호가, 지우가, 순호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좋은 사람을,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증인>은 말한다.

염찬희(회원,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