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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동성애 논란’ 운운하며 소수자 인권침해
등록 2017.09.13 18:07
조회 609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표결 문제를 빌미로 TV조선이 성소수자 인권을 침해하는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문제의 보도는 저녁종합뉴스의 <포커스/커지는 동성애 논란>(9/12 https://goo.gl/ra1GyF)입니다. 보도는 지난 7월 EBS가 네이버가 함께 제작하는 초등학생을 위한 스쿨잼 블로그에 올라온 <우리들의 친구 성소수자>라는 제목의 카드뉴스와 김이수 후보자, 그리고 후보자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을 엮어서 ‘동성애 논란’이란 주제로 묶었습니다. 
 


‘차별 말자’는 카드뉴스 내용, ‘동성애 미화 논란’으로 전달
앵커는 먼저 “인터넷에 올라온 한 삽화입니다. 여자아이가 ‘난 동성이 좋아’라고 말하고 남자아이는 ‘난 여자의 마음을 갖고 있어’라고 합니다. 동성애 얘기지요. ‘우리들의 친구 성소수자’라는 제목의 짤막한 카드 뉴스입니다. EBS가 초등학생 교육 블로그에 올린 건데요. 동성애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라고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김수홍 기자는 “‘내 몸은 남자지만, 마음은 여자야. .내 애인은 여자야’ 몸과 마음의 성별이 다르고, 이를 맞추려고 수술을 한다. 같은 성별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논란이 된 카드 뉴스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자는 이어서 “부모들은 EBS가 동성애를 미화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성별은 바꿀 수 있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고요. 학부모 두명의 “본인은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그걸 봄으로 해서 ‘아 이렇게 생각을 해봐도 되나’하면서 성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는 요지가 되지 않을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개념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데 노출되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TV조선 보도만 봐서는 이 카드뉴스는 엄청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우리들의 친구 ‘성 소수자’> 카드 뉴스는 “세상에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은 “다수의 이성애자들 사이에 성 소수자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 뒤 “중요한 것은 모두 사회의 구성원이자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 “잘못된 시선 때문에 괴로워하는 성 소수자 친구가 생기지 않고,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도록 성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자”고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체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 골자인 이 카드 뉴스의 내용이 어떻게 동성애 미화나 ‘조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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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우리들의 친구 ‘성 소수자’> 카드 뉴스 내용 중 일부

 

특히 보도 도입부부터 앵커가 엄청나게 문제가 되는 내용이라도 되는 양 소개한 “여자아이가 ‘난 동성이 좋아’라고 말하고 남자아이는 ‘난 여자의 마음을 갖고 있어’”라고 말한 부분은, 아이들에게 “태어난 성별과 반대되는 성 정체성”을 지닌 트랜스젠더와 “몸과 마음의 성별이 같아도, 같은 성별에게 호감을 느끼는 성 소수자”인 동성애자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구절일 뿐입니다. 애초 이를 ‘논란’이라 설명하는 것 자제가 일부 종교계의 비이성적 반발을 상식적인 의견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TV조선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차별 없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동성애 옹호’ 콘텐츠로 치부하여 전달한 것입니다. 

 

 

‘성소수자 편견 교육 필요하다’는 주장도 악의적으로 편집
반면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박은 구색 맞추기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김수홍 기자는 카드 뉴스에 대한 학부모들의 부정적 반응 뒤에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차별을 하지 말자는 내용은 오히려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했고요. 이어서 “차별은 교육을 안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성소수자도 같은 사람들이란 것을 배워요”라는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총 3분 14초짜리 보도에서 약 17초가량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소개 시간이 짧았다는 점 이외에도, TV조선이 악의적으로 이 같은 ‘반론’을 전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앞의 ‘동성애 옹호 콘텐츠가 아니냐’는 학부모들의 ‘반발’은 발언하는 학부모의 신분(이름과 지역, 얼굴)을 모두 노출하고 있으며, 복수의 인물의 유사 발언을 반복하여 전함으로서 ‘신뢰할 수 있는 주장’인양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의 발언은 어느 단체 소속 누구의 주장인지 설명도 없고, 관계자의 얼굴도 나오지 않고, 심지어 목소리도 어째서인지 음성변조가 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발화 주체의 신분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도록 처리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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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카드뉴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하는 TV조선의 보도 화면(좌)과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전하는 보도 화면(우) 비교(9/12)

 

게다가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발언자의 모습이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현장 스케치를 담았는데요. 이것 또한 사실 악의성이 엿보입니다. 퀴어 축제의 다소 자극적으로 보이는 참가자들 모습을 보여주면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고요.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의 주장이 ‘신빙성 없는 과격한 주장’으로 인식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보도준칙에 심의규정까지 모두 무시한 보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2011년 제정한 ‘인권보도준칙’은 제8장 성적 소수자 인권 항목을 별도로 만들어 “언론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 호기심이나 배척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하며 “성적 소수자가 잘못되고 타락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담”아 보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역시 21조(인권 보호)를 통해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일반규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총칙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인권보도준칙이나 심의규정 이전에,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김이수 후보자가 실제론 하지도 않은 ‘동성애 옹호’도 ‘논란’이라며 소개
보도의 문제점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해당 보도는 이렇게 실컷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드러낸 뒤, 곧바로 이 문제를 김이수 후보자의 ‘동성애 옹호 논란’과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동성애 반대’ 발언과 엮고 있거든요. 


실제 ‘정체 불명 성소수자 단체 관계자 발언’을 보여 준 뒤 TV조선은 곧바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동성애 옹호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병영 내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조항에 위헌 의견을 냈던 것 때문입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들에겐 기독교계에서 하루 수천통씩 문자폭탄이 쏟아졌습니다”라며 ‘화제 전환’을 시작했는데요. 이 뒤에는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의 “(민주당은) 김 후보자 입장에 동의하는지, 군 내 동성행위 처벌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것을 촉구합니다”라는 발언을 덧붙여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김 후보자를 둘러싼 ‘동성애 옹호 논란’은 국민의당 등이 억지로 만들어낸 정치공세일 뿐, 실제 사실관계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옹호를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이전에, 애초 김 후보자가 군형법 조항 위헌의견을 피력할 당시 동성애를 옹호하는 발언을 일체 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 후보자는 헌재가 지난해 7월 옛 군형법 92조 일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다른 3명의 재판관과 같이 반대 의견을 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수 의견의 취지는 군영 밖에서 이뤄진 음란 행위 등이 군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후보자는 당시 동성 군인 간 군영 내 음란한 행위는 처벌돼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 후보시절 ‘동성애 반대’ 발언 부각하면서도 ‘홍준표’는 슬쩍 외면
또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논란에 시달렸습니다”라며 후보 토론회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문재인 당시 후보를 향해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이 “반대하지요”라고 답하는 부분을 당시의 자료화면과 함께 13초간 전달한 뒤, 이후 “결국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동성애’라는 키워드와 관련한 온갖 이슈를 억지스럽게 끼워 맞춘 듯한 구성입니다. 


백보 양보해 TV조선이 ‘동성애’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보도를 통해 소개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고 싶었다면, 문 대통령에게 이러한 황당한 질문을 하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정서를 선동해온 홍준표 대표에 대해서는 왜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이 총체적 난국인 보도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기독교계 다수의 표심 사이에서 정치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습니다”라는 설명으로 마무리되는데요. 표심을 의식해 인권을 외면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방송사가 나서서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 침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TV조선이 ‘정치권의 고민’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9월 12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 채널A <종합뉴스>,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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