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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외친 기고마저 트집 잡는 조선일보
등록 2017.10.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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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으로 지난 7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소설가 한강 씨의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한강 씨는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으로 현재 한국인들이 짐짓 평온해 보여도 북미 간 ‘말 폭탄’에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고 북미 간 갈등이 험악해지면서 실존하는 전쟁 위기를 지적했단 점에서 국제 사회의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조선일보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 일간지에 기고함에도 ‘북한 때리기’ 없었다는 게 불만인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만물상/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10/10 김태익 논설위원 https://bit.ly/2hYIBdF)에서 해당 사안을 다뤘는데요. 조선일보가 비판한 것은 “그가 한반도 위기 상황을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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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딴죽을 건 조선일보 만물상 (10/10)

 

한강 씨는 기고문에서 “모든 전쟁은 인간을 ‘인간 이하’의 상태로 만든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에 “그렇다면 핵 도발로 전쟁 위기의 원인을 만든 북한을 먼저 나무랐어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강 씨가 기고문 안에서 비판한 ‘말 폭탄’의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와 같은 표현들이었다는 점이 못내 불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 위기상황에 북한의 책임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의 위기상황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행보와 적절치 못한 언행에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한강 씨는 미국의 일간지에서 미국의 시민들을 향해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그렇기에 생경한 북한의 협박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는, 미국 시민들이 뽑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를 인용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한강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트럼프에 더 몸서리를 칠까, 주민을 굶주리게 하며 핵으로 한반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북한 김씨 왕조에 더 몸서리를 치고 있을까”라고 평한 것은 트집 잡기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평가인 ‘대리전’을 오류라고 단정

조선일보가 이어 지적한 건 한강 씨가 기고문에서 지난 한국전쟁을 ‘대리전’이라 표현한 부분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명백하게 사실을 잘못 기술한 것”이라 단정했습니다. “6․25는 김일성이 모택동․스탈린과 치밀한 사전 모의 끝에 일으킨 적화 침략 전쟁이었다는 것은 수많은 증거로 입증된 사실이다”면서 “‘대리전’ 주장은 북한의 전쟁 책임을 얼버무리고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대해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런 단정적 해설과는 달리, 한국전쟁을 당시 냉전체계의 일부 속에서 미소 간 대리전의 양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을 한반도 외부에서 찾는 시각들은 대체로 한국전쟁을 스탈린의 영향력 아래에 시작한 전쟁으로 파악합니다. 그렇기에 한강 씨의 “한국전쟁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대리전”이란 표현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표현입니다.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음에도 ‘자격’ 운운하는 조선일보

기고문의 매우 사소한 부분들을 트집 잡던 조선일보는 “가장 큰 문제는 이 글이 필자 개인 의견을 마치 한국인 전체 의견인 것처럼 썼다는 것”이라 평했습니다. “누가 그에게 북핵과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 한국인을 대변할 자격을 주었나”는 것인데요. 뉴욕타임스에 기고하는 것은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렇기에 조선일보도 같은 칼럼에서 “소설가든 누구든 정치․사회 문제에 대해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특히 소설가 한강 씨는 한국의 지금을 묘사하는 작가로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래도 그가 어떤 경위로 이런 글을 썼는지 궁금하다”며 트집을 잡는 모습은 구차해 보일 뿐입니다.


결국, 조선일보는 한강 씨의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이 부족했다고 재강조합니다. “김정은이 핵폭탄을 만든 것은 그가 말한 대로 남한을 깔고 앉으려는 것이다”라면서 “북한 정권은 사람을 고사총으로 박살내고 화염방사기로 태워 없앤 집단이다. 지금 5000만 국민이 그 집단 발아래 실제 깔리게 될지도 모를 위기다”고 부추기면서 “이 상황에서 예술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소설가는 어떤 의견을 밝혀야 할까”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이런 반응은 ‘남북 대화 혐오증’에 기인한 주장으로 보입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반인륜적이고 폭압적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정권이 가진 폭력성을 억누르고 최소화하려면 무엇보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강 씨의 기고문은 “승리로 귀결되는 어떠한 전쟁 시나리오도 없다”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그들은 한 가지밖에 이해하지 못한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한국인은 실제 한 가지만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은 평화적이지 않은 해법과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슬로건”라고 반박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그의 글이 트럼프도 싫지만 김정은은 더 아니라고 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와 같은 주장보다도 훨씬 현실적이고 확고한 가치를 지닌 셈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0월 10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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