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모니터_
‘투신 장면’ 노출하고 다시보기만 지우면 끝? 막 나가는 TV조선
등록 2017.10.2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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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살해범 이영학 씨의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이 씨의 계부 배 씨가 경찰의 3차 소환 조사 당일인 25일, 강원 영월의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배 씨의 상의 안주머니에서는 ‘누명을 벗겨달라’는 내용을 담은 메모지 형태의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25일 TV조선을 제외한 6개 방송사는 모두 관련보도를 1건씩 내놓았습니다. 보도 내용은 대부분 배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과 그가 남긴 유서의 내용을 전하는 것이었지요. 반면 같은 날 TV조선은 5번째 꼭지부터 9번째 꼭지에 걸쳐 무려 5건의 보도에서 이영학 씨 사건 관련 내용을 다뤘습니다.


이는 사실상 ‘이영학 아내 자살 미스테리’라는 주제를 다룬 자사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사전 홍보하는 행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TV조선의 이날 7번째 보도 <자살 동기 의문…타살 의혹까지>(10/25 https://goo.gl/dCbtEU)는 “이영학이 자기 아내를 성폭행했다고 지목했던 의붓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영학 아내의 자살 이유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탐사보도 ‘세븐’에서 생모와 친형, 주변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칩니다”라는 앵커 멘트로 시작되어 “이영학 아내의 자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잠시 후 10시 방송되는 탐사보도 세븐에서 낱낱이 공개됩니다”라는 기자 멘트로 마무리되는데요. 온라인 송고용 제목도 <탐사보도 세븐/이영학 아내 자살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저녁종합뉴스에서 자사 프로그램 홍보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 이 보도가 지닌 문제점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투신 장면 반복적으로 노출  
사실 이 보도의 진짜 문제는 ‘자살’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원책 앵커의 도입부 멘트 직후, 이상준 기자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아내 최 씨가 5층 건물 옥상에 서있습니다. 놀란 행인들이 웅성이는 사이 최 씨가 추락합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10여 초간 이영학 씨의 아내 최 씨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보여줬습니다. 


이 장면은 먼저 건물 외부에서 최 씨가 뛰어내린 창문의 위치를 빨간 테두리로 특정하여 보여주고, 뒤이어 5층 건물 위에 올라선 최 씨의 시선에서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는 앵글로 화면을 잡은 뒤, 최 씨의 투신 시도를 발견한 건물 아래 행인들의 놀란 반응, 최 씨로 추정되는 검은 형상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행인들이 놀라는 장면을 연이어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TV조선은 최 씨가 건물 아래로 추락하는 그 순간을 방송 자료화면을 통해 그대로 노출한 셈입니다. 


이 한 번의 노출로는 부족했는지, TV조선은 이후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만약에 의식이 있는 상태로 뛰어 내렸다고 보면 다리나 허리부터 떨어지고 나중에 상체가 떨어지는데”라는 발언의 자료화면으로 다시 한 번 이 추락 장면을 5초가량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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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학 씨 아내 최 씨의 실제 투신 장면을 노출한 TV조선(10/25) 

 
이 영상은 재연도 그래픽도 아니고 실제로 사람이 투신해서 죽은 장면입니다.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방송심의규정 위반입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7조(충격·혐오감)는 “범죄 또는 각종 사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장면의 지나치게 상세한 묘사”를 금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조항에는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는 주의사항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또한 심의규정 제38조의2(자살묘사) 역시 “ⓛ방송은 자살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자살의 수단·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 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요구인 셈입니다. 하다못해 심의규정은 ‘재연 장면’에 대한 규정인 제39조(재연·연출)에서조차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TV조선은 반드시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음에도, 실제 투신장면을 약간의 블러처리를 하여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이는 중징계가 불가피한 수준의 문제 보도입니다.

 

 

사망자와 사망자 자녀 사진도 보여줘
또한 이 보도에서 TV조선은 “최씨의 자살 동기는 의문 투성입니다”라는 기자 멘트와 함께 숨진 최 씨와 최 씨의 딸이 함께 있는 사진을 일부 블러처리하여 3초가량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블러처리를 했다고 해도 이들의 이목구비가 희미하게나마 노출되어 있어 제38조의2(자살묘사)의 “④방송은 자살자(자살자로 추정되는 자와 자살 미수자를 포함한다) 및 그 유족의 인적사항을 공개하여서는 아니 되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여야 한다”를 위반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현재 해당 보도의 영상은 TV조선 홈페이지 다시보기 페이지에는 아예 올라와 있지 않은데요. 방송을 해 놓고 문제가 될까 걱정이라도 되었던 것일까요?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운 행태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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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다시보기 페이지에는 아예 해당 보도 영상을 올리지 않은 TV조선(10/25)

 


‘사망 직전 마지막 언론 접촉’ 운운하며 배 씨 입장 유포
TV조선이 이날 내놓은 문제 보도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6번째 꼭지로 소개된 단독 보도 <성폭행 의혹 묻자 강력 부인>(10/25 https://goo.gl/8NQrTq)은 ‘처음이자 마지막 언론 접촉’ 흔적이라며 생전 배 씨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모습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원책 앵커는 “오늘 오후 숨진 채 발견된 이영학의 의붓아버지를 며칠 전 TV조선 탐사보도 프로그램 ‘세븐’ 제작진이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배 씨는 며느리 성폭행 의혹이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배 씨의 처음이자 마지막 언론 접촉이었다고 합니다”라며 배 씨의 억울함을 부각했고요. 리포트에서도 TV조선 취재진의 “성폭행 안하셨어요?”라는 질문과 이에 대한 배 씨의 “그런거는 나는 몰라요. 그런건 나는 몰라요” “(그런일이)있을 거 같으면 경찰들이 왜 잡아갔겠어요.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라구요”라는 답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이에 대해 김남성 기자는 그가 “성폭행 의혹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진상은 혐의자의 ‘결백 호소’가 아닌 어디까지나 경찰의 수사를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TV조선은 배 씨가 ‘죽기 직전까지 결백을 호소했다’는 이유로 그의 ‘억울함’을 부각하는 보도를 내놓으며, 그 진위를 검증할 수 없는 일방의 주장을 의미 있는 것인 양 유포했습니다. 또한 해당 보도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것이 “배 씨의 처음이자 마지막 언론 접촉”임을 강조하며 실상 그 이전에 밝힌 입장과 별 차이도 없는 배 씨의 입장을 ‘엄청난 보도 가치가 있는 내용’인양 포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배 씨와 최 씨의 죽음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흥밋거리 정도로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10월 24~25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7>․<종합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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