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518가짜뉴스신고센터] ‘5‧18 유언비어’ 쏟아내는 가짜뉴스, 여전히 횡행
등록 2018.11.05 15:09
조회 149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올해 ‘5·18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어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하고 폄훼하는 ‘가짜뉴스’에 대해 국민 제보를 받아왔다. 신고센터는 제보 중 명백하게 가짜뉴스라고 볼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을 팩트체크했다. 5․18 관련 가짜뉴스의 발원지는 대부분 <지만원의 시스템클럽>과 지만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는 <뉴스타운>이다. 문제는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가짜뉴스가 개인 블로그, 유튜브 개인 계정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이들 가짜뉴스들은 정부기관이 충실한 조사 이후 역사적 사실로 밝힌 내용마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1. 가짜뉴스, “5·18 당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 

가짜뉴스 내용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조비오 신부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뉴스타운 <광주 5·18의 역대급 ‘가짜뉴스’ 시리즈>(2018/10/3, http://bitly.kr/JSxq)에서 “조비오의 발언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헬기 사격 자료나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주장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작년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광주 전일빌딩 총탄에 대한 감식한 결과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발표했을 때도 반복되었던 주장이다. 지만원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5·18 헬기 소설쓰는 국과수, 한심하다!>(2017/1/13 http://bitly.kr/WJ8S)에서 “국과수 요원들은 군대도 가지 않았는가? 아니면 빨갱이들인가?  대한민국의 범죄를 과학으로 수사한다는 국과수가 이런 결론을 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다”라며 분노했다. 

 

팩트체크 결과 : 헬기사격은 분명히 있었다!
먼저 국과수는 2016년 9월 22일부터 2017년 12월 20일까지 총 3차례 5일간에 걸쳐 광주 전일빌딩 내․외부를 조사하여 총탄 흔적을 정밀 감식했다. 그 결과 국과수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에서 사격한 상황으로 유력하게 추정된다는 감정결과를 밝혔다. 그럼에도 지만원은 국과수의 결론을 전면으로 부인하며 ‘빨갱이’ 운운하고 있다. 

한겨레공수부대기사.jpg

△ 출처 <5·18 도청 진압때 공수부대 ‘무장헬기 투입 문서’ 첫 확인>(2017/8/31)

 


한겨레는 <단독/5·18 도청 진압때 공수부대 ‘무장헬기 투입 문서’ 첫 확인>(2017/8/31 http://bitly.kr/JhjO)에서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의 80년 5월 27일치 작전일지가 실제 헬기가 5월 27일 광주 현장에 투입됐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단독 보도했다. 작전일지에는 ‘04:51부 3여단 무장 헬기 지원 요청’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서의 수화자란에는 ‘항공 연락장교 05:35 지원’이라고 돼 있다. 
지난 2월에는 광주에 투입된 헬기가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월 7일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이하 5·18특조위)는 국방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육군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고, 공군도 수원 제10전투비행단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이례적으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시켰다”고 설명했다.  
특조위는 “5월 21일부터 계엄사령부는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 사격을 지시했으며, 인적이 드문 조선대 뒤편 절개지에 AH-1J 코브라 헬기의 벌컨포 위협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면서 “계엄군 측은 지금까지 5월 21일 19시30분 자위권 발동이 이뤄지기 이전에는 광주에 무장헬기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로는 5월 19일부터 31사단에 무장헬기 3대가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이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고 밝혔다.
   
2. “5·18 당시 광주 시민군들이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

가짜뉴스 내용 요약
전두환 회고록에는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6번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간첩들을 해방하려고 그런 것이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은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돼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도 이용된다. 시민군 사이에 북한군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편인 간첩을 해방시키기 위해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의 지만원은 <광주시장의 이실직고, “교도소 공격은 북한군이 했다“>(2017/4/20 https://bit.ly/2D4yBsL)에서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5.18폭도들이 광주교도소를 6차례에 걸쳐 공격한 사실은 군 상황일지에 분명하게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만원의 뉴스타운 <광주시장의 증언 ”교도소 공격은 북한군 소행”>(2017/5/12 http://bitly.kr/J60F)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며 교도소 습격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제2장 제2항 ‘가’ “광주교도소의 방어 부분과 관련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의 점에 대하여”에는 광주교도소가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전후 5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팩트체크 결과 : 광주 시민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말은 명백한 거짓이다. 
광주 시민이 간첩을 해방시키기 위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다. 
첫째, 지만원 등 가짜뉴스 유포자들이 교도소 습격설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건 전두환 씨의 내란 목적 살인죄에 대한 1997년 대법원 판결문이다. 판결문을 보면 5월 22일 광주교도소를 두 차례 공격한 사실은 인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격 의도나 몇 명이 이 공격에 참여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월 교도소 습격설에 대한 국가기관의 공식적 판단이 추가됐다. 광주지방법원은 전두환 회고록에 나오는 교도소 습격설은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여섯번에 걸쳐 집요하게 공격하지도 않았고, 간첩을 해방하려고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허위사실로 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법원은 두 차례의 공격에 대한 판단도 내놓았다. 당시 교도소를 지키던 3공수여단이 도로 위 비무장 민간인들한테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는데 시민군이 이를 막기 위해 교도소를 공격했다고 봤다. 
둘째,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또한 교도소 습격설이 허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전남합수단(합동수사단)에서 작성한 광주교도소 습격 기도사건은 합수단에서 근무했던 505 보안대 대공과 수사관 등 관계자 및 관계서류 등을 조사한 결과, 5․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기 위한 의도에 조작됐음이 밝혀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신군부의 기관이었던 전남합수단이 작성한 문건을 보면 내용의 인과관계가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던 류락진의 처 신애덕과 동생 류영선이 시위에 가담해 교도소를 습격, 복역 중인 류락진을 구출하도록 선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류영선은 교도소를 습격하는 과정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는 이 내용이 “5․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기 위한 의도에서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류영선은 계엄군의 과격 진압을 보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사망했다. 광주교도소 앞에서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5월 22일이다. 신군부는 21일 사망한 류영선이 22일 교도소 앞에서 사망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세 번째, 전남지방경찰청이 작년 10월에 발표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사(보고서)’가 있다. 이는 전남경찰이 꾸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TF팀’이 작년 4월부터 5개월간 37년 전 현장 경찰관들의 증언과 비공개 기록을 담은 것이다. 5·18 당시 치안을 맡았던 경찰이 썼다는 점, 특히 국가기관인 경찰이 공식적으로 정리한 첫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보고서에서도 지만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보고서의 ‘시위대의 외곽 진출과 교도소 습격설’ 관련 설명에는 “시위대의 폭도화”를 주장하기 위한 핵심 사건으로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을 들고 있으나 사실관계 왜곡 추정”이라고 적혀 있다. “담양 방면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를 교도소를 향해간다고 전파한 사례가 확인되는 등 오인, 또는 왜곡 가능성 농후”라는 표현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보고서는 1980년 5월 23일 11시 30분, 주남마을에서 외곽봉쇄 중이던 11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주민 17명이 사망한 사건을 사례로 들며 “외곽봉쇄작전을 수행했던 주요지점에서 계엄군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던 점으로 보아 외곽 통제를 위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로 추정”된다고 적었다. 지난 5월 광주지법 민사23부(부장판사 김승휘)는 <전두환 회고록> 제 1권에 대한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교도소 습격설’도 허위로 인정한 바 있다(https://bit.ly/2EOVhPt).

 

3.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5·18 유공자’인 게 엉터리!

가짜뉴스 내용 요약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980년까지 광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5·18 유공자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해찬 대표는 1980년까지 단 한번도 광주에 가보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가짜뉴스는 이 지점을 물고 늘어진다. 5·18 당시 광주에 있지도 않았던 자가 어떤 방법으로 유공자가 됐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유공자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호를 ‘특혜’라고 주장했다. 
뉴스타운의 <제11탄/국민의당 38명 국회의원들은 해명해보라 이해찬, 문재인, 한명숙이 왜 5·18민주화 유공자인가?>(2016/7/10 http://bitly.kr/ceUT)기사가 대표적이다. “<뉴스타운>은 이번에도 애독자들이 보내 준 증거들을 대상으로 ‘가짜 5·18 유공자’의 실체를 공개하고자 한다”면서 “<뉴스타운>에 제보된 자료에 따르면 이해찬, 한명숙, 문재인, 박준영, 한화갑, 김미희, 심재권, 최경환 외 30~40여명의 정치인들이 5·18 유공자라고 한다. 이들이 광주 5·18 당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또 어떤 공적으로 유공자가 됐는지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 올라온 글<“이해찬, 한화갑도 5.18민주유공자였네”(2016/5/26 http://bitly.kr/9w2N)에서도 같은 주장이 반복된다. “반 대한민국 빨갱이들이 대남적화 공작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위장가면을 뒤집어쓰고 발생했던 통혁당,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김대중 시절 이후로 대부분 민주화유공자로 둔갑하고 엄청난 보상을 국가로부터 받아 챙기면서 호의호식한다. 그 그늘에 빌붙어 이해찬 등 5,700여명의 5․18민주유공자들도 최고의 보상과 특혜를 누리며, 5․18폭동반란의 역사가 뒤집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팩트체크 결과 : 이해찬 대표는 5‧18유공자 맞다!
국가보훈처(http://bitly.kr/XWvZ)는 5·18 민주유공자의 대상요건을 ‘5·18민주화운동시 사망하신 분 또는 행방불명 되신 분, 5·18민주화운동으로 부상당하신 분, 그밖의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하신 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이중 ‘그 밖의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하신 분’에 해당되어 5·18 민주유공자가 되었다. 
이해찬 대표는 5·18 당시 서울대 복학생 신분으로, 1980년 9월 17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1980년 신군부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명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음모를 계획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의 지시를 받아 폭력시위로 정부를 전복하려 했”고, “서울대 복학생회의를 열고 제2광주사태 유발을 선동”했다는 혐의였다.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광주시민들은 이에 항의했고 신군부는 광주에서의 시위를 진압하면서 학살을 자행했다. 5․18의 시작이다. 신군부는 5․18 학살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다.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거나 ‘광주의 극렬한 저항을 조종한 자가 김대중’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된 배경이다. 신군부에 장악된 사법부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유죄를 선고한 것도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이해찬.jpg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이해찬 대표 재판 장면 

 

5.18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이렇게 밀접히 연관돼 있다.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구속되거나 구금된 분도 유공자가 된다는 보훈처의 기준을 적용하면, 이해찬 대표가 유공자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4.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는 5·18과 연관되어 있다?

가짜뉴스 내용 요약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북한에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가 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광주에 침투했다 돌아오지 못한 자, 광주에서 죽은 자들을 기리는 묘가 북한 함경남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북한군이 광주에 개입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2013년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에 출연한 임천용도 “북한에 영웅 묘비가 분명히 있는 거죠”라고 말하며 광주 북한군 개입설이 사실이라 주장했다. 
뉴데일리도 <시민단체, 5.18 북한군 개입설 증거사진 공개 논란>(2017/12/25 https://goo.gl/k5KchP)에서 한 시민단체가 함경남도 청진시에 있는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 사진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그 동안 5.18 사태 당시 남한 내 혼란과 적전분열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실체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고 적었다. 

 

팩트체크 결과 : 북한 렬사묘는 5‧18과 연관없다!
오마이뉴스의 <5·18 침투군이 ‘인민군 렬사묘’에 묻혔다? “처음 듣는 말”>(2013/5/23 https://goo.gl/urGWjA) 기사를 보면 묘비의 정체에 물음표가 붙는다. 오마이뉴스는 묘비가 있는 함경남도 청진시에 살다 탈북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묘비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진 못했다. 
북한 거주 당시 이 묘비를 본 적이 있는 탈북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찰국 군인들이었다면 거기에 묻히지 않고 남한으로 치자면 현충원인 (평양의) 혁명열사릉이나 전쟁열사릉에 묻혔을 것”이라며 “광주봉기(북한에서의 5·18 민주화운동 명칭)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얘기는 여기(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당에서 광주봉기에 대해 설명한 것은 '광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북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컷뉴스의 <김정은, 北 베트남전 참전 조종사 회고>(2012/5/4 https://goo.gl/fbGvQd)를 보면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노컷뉴스는 김정은 당시 당 제1비서가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지휘부를 사찰한 소식과 함께 노동신문의 보도를 전했다. 노컷뉴스가 담은 노동신문의 구절을 보면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가 무엇인지 그 실마리를 알 수 있다. “윁남(베트남)전쟁에 참가해 공중우세를 뽐내며 돌아치던 미제의 비행기들을 타격소멸하고 조선인민군 비행대의 슬기와 용맹을 남김없이 발휘해 세상을 놀래운 부대비행사들의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버이장군님(김정일 위원장)께서 윁남전쟁에서 희생된 비행사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다가 이국땅에 묻혀있는 그들을 조국에 데려다 인민군 영웅렬사묘에 안치하도록 하신데 대해 뜨겁게 회고했다.” 인민군 영웅 렬사묘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청진시 출신 북한군을 추모하는 비석이거나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북한군을 기리는 비석일 가능성이 높다.

 

5. 남에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을 북한군이었으며 지금 북에서 잘 산다고 우기기 

가짜뉴스 내용 요약
지만원 씨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찍힌 사진에 나온 인물들을 현재 북한 간부나 탈북자 등과 동일인물이라고 발표하며, 이를 근거로 1980년 당시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 씨는 1980년 광주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눈썹 모양과 이마의 형상을 ‘분석’했다며 56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광수’(광주에 온 북한 특수군)라는 딱지를 붙였다.  

팩트체크 결과 : 지만원이 황장엽이라 꼽은 ‘광수’는 광주시민 박남선 씨
지만원 씨가 1980년 광주에 있었던 ‘황장엽’이라며 꼽은 71번째 광수는 당시 시민군이었던 박남선 씨로 밝혀졌다. 2016년 SBS는 박 씨의 사진과 5·18 당시의 사진, 황장엽의 사진을 국내 최고 얼굴 분석 전문가로 꼽히는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학과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최 교수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얼굴자세는 달라도 얼굴 부위 간 세로비율은 변하지 않는다”며 “발제선, 눈썹, 눈 코밑, 턱 끝의 간격이 모두 일치한다”며  5·18 당시 사진에 찍힌 사람은 박 씨가 맞다고 분석했다.(https://bit.ly/2ESGT8L)

 

사진자료3.jpg

△ 지만원 씨의 ‘북한특수군’ 주장 사진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당한 광주 시민은 박남선 씨 외 8명과 5․18기념재단,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구속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광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등은 지만원 씨와 이를 게재한 뉴스타운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와 출판물 발행 및 배포금지, 기사 삭제 등을 법원에 요구했다. 이에 2017년 8월 11일 광주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김상연)는 각각 2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총 9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빙성 없는 영상분석 결과나 자신들이 자의적의로 해석한 자료를 근거로 5․18을 전면 부인하고 그 가치를 폄하함과 아울러 원고들을 비방했다”며 “이런 점을 보면 지씨와 뉴스타운의 행동은 5․18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표현의 한계를 초과한 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재판은 2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K-017.jpg

△ 박남선 씨 외 13명의 원고가 뉴스타운과 지만원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현재 3심이 진행 중.

 

한편 지 씨가 위의 내용을 포함해 발행한 화보집에 대해서도 2018년 10월 25일 광주지법 민사은 지 씨에게 5․18단체들에게 각각 500만 원을, 박남선 씨 등 5명에게는 1,5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북한군 개입설이 유언비언임을 드러낸 자료는 매우 많아
북한군 개입설과 폭도설은 1980년부터 신군부 정권과 언론이 반복했던 주장이다. 1980년 신군부는 계엄군에 맞선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했고, 당시 언론들은 이 발표를 그대로 받아 보도했다. 신군부는 전남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5‧18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고문으로 거짓자백을 받아 사건을 왜곡하고, “고정간첩과 불순 인물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했다”는 등 북한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종국에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엮었는데, 당시 재판부(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장 문응식 소장)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학원 소요사태를 폭력화하고 민중봉기를 꾀했”고, “재일 반국가단체인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발기, 조직 구성해 북괴노선을 지지, 동조하는 등 반국가적 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1995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로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다. 재심에서 재판부는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탈취과정에서 조작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1980년 공식 기록을 살펴보면 북한군 움직임을 부정하고 있다. 2007년 7월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12․12, 5․17, 5․18 조사결과보고서’ (2007년 7월 24일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는 비공개 자료로, 국방부에 정보공개 청구하면 내용을 받아볼 수 있다.) 제 2장 제 3절에서는 <‘북괴남침설’ 악용>이라는 내용이 있다. 보고서에서는 “육군본부에서는 북한의 남침 준비 완료라는 첩보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음에도 신군부 세력은 ‘북괴남침설’, 그리고 이와 연계된 소요를 근거로 ‘국가위기’ 상황을 조장하며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시켰다”며 “신빙성 없는 것으로 판단한 대북 첩보를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획득을 위해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980년 5월 10일 당시의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작성한 『북괴남침설 분석』에서도 북한의 남침설은 근거가 없다고 봤던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공개한 자료에서도 1980년 5월 당시 북한군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후,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 사이에 오간 문서 전문인 일명 ‘체로키(Cherokee)’문서를 확보한 팀 셔록 기자는 2015년 5월 광주를 방문해 ‘북한군이 광주에 잠입해 폭동을 조종했다는 주장’에 대한 질문에 “체로키 문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2017년 노컷뉴스 <美 비밀문서2/전두환 군부 “이대로 가면 베트남 된다”>(2017/8/22, 장규석 특파원, https://bit.ly/2zgjcRQ)가 공개한 1989년 6월 19일 미국 부시 행정부가 발간한 ‘광주 백서’ 에서도 북한군 개입설은 유언비어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해당 백서에는 1980년 5월 13일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전두환의 면담 내용과 함께 “전두환이 북한 위협을 강조하는 것은 청와대 입성을 위한 포석에 불과할 뿐”이라는 보고가 나온다. 또한 미 국무부는 1980년 5월 13일 “북한의 특이한 동향이나 남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2018년 5월 SBS <끝까지판다/ “북한군 투입설 배후는 전두환이었다” 5.18 미 국무부 전문 탐사보도>(5/15, https://bit.ly/2ArAWvt)에서도 “5.18은 공산주의가 배후에 있지도 않았고 북한군 투입 사실도 없다. 이건 확실한 사실”이라고 적힌 미 국무부 비밀문서를 다뤘다. 또한 이 문서에는 1980년 6월 4일 미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한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에서)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을 발견했는데 모두 북한 침투요원으로 보고 있다”며 “5.18의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를 기소해서 이걸 입증하겠다”고 발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문건을 통해 1980년 광주항쟁 직후부터 ‘북한특수군 투입설’을 공공연하게 퍼뜨린 주범이 전두환 씨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전 씨는 2016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는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전혀(없다)”, “난 오늘 처음 듣는데”라고 답해놓고는, 이후 발간한 회고록에서 북한특수군 개입이라는 지만원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인용했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필요에 따라 ‘북한군’을 거론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교도소 습격설, 북한군 개입설 등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는 가짜뉴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가에 의해 진상이 규명된 내용에 대해서도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복해서 거짓정보를 생산․유통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근간이 됐던 광주를 훼손함으로써 민주화 역사를 부정하고, 군부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닐까. 

 

 

<끝> 
문의 유민지 운영팀장(02-392-0181)
정리 나경렬 5․18가짜뉴스 신고센터 인턴
감수 강성남 민언련 5․18가짜뉴스 신고센터 센터장  
 

monitor_20181105_316.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