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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사건은 ‘조재범 성폭행 의혹’입니다
등록 2019.01.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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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혐의 의혹이 세상에 폭로됐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를 폭행 혐의로 고소함과 동시에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추가로 제출하면서 밝혀진 것입니다. 심석희 선수는 지난해 12월 17일, 2014년 여름부터 조재범 전 코치가 강제 추행은 물론 성폭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하며 그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지난 8일 SBS는 <단독/힘겹게 침묵 깬 심석희…“코치가 상습 성폭력”>(1/8 고정현 기자)이란 제목의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이후 8, 9일엔 지상파 3사와 종편․YTN 등에서 심석희 선수가 폭로한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의혹’ 사건을 줄줄이 다뤘는데요. 언론사들이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줄곧 문제되었던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여전히 발견됐습니다. 일부에선 여전히 피해자 이름을 성폭력 사건 앞에 붙여 2차 가해의 위험을 높였고, 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어땠는지 살펴보며 사건과 아주 무관한 내용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또 가해자 대신 피해자만 남은 뉴스

우리 사회와 언론의 피해자 호명은 오래된 문제입니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호명하거나 피해자의 평소 처신․인간관계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가해자는 사건에서 사라지고 피해자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에 퍼져나가면서 동시에 문제 되었던 것도 피해자 위주의 보도, 그로 인한 2차 가해 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석희 선수의 폭로에 대해 ‘심석희 성폭행’이라고 이름 붙이는 언론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 보도전문채널인 YTN에서 이런 보도 행태가 발견됐습니다. YTN은 평일 저녁 6시 저녁종합뉴스인 <뉴스Q>에서 <심석희 성폭행 고소…경찰, 증거 확보 주력>(1/9 차유정 기자)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KBS는 저녁종합뉴스는 아니지만 저녁 7시에 방송하는 <뉴스7>에서 <‘심석희 성폭행’ 본격 수사…곧 조재범 조사>(1/9 고은희 기자)라며 피해자 이름으로 사건을 호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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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범 성폭행 의혹에 ‘심석희 성폭행’ 이름 붙인 KBS <뉴스7>(1/9)

 

이들은 방송용 제목이 문제였지만, 온라인 송고용 제목이 문제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TV조선의 <“때린 뒤 성폭행 했다”…경찰, 집중조사>(1/9 김승돈 기자)나 YTN의 <“조재범이 성폭행”…경찰, 증거 확보 주력>(1/9 차유정 기자), 두 보도의 경우 방송용 제목에서는 ‘심석희 성폭행’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송고용 제목은 TV조선이 <경찰, ‘심석희 폭행 후 성폭력’ 집중수사…조재범 휴대폰 분석>, YTN이 <“조재범 전 코치, 심석희 성폭행”…경찰 증거 확보 주력>이라고 달아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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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재범 성폭행’이라고 온라인에 송고한 SBS(위)와 KBS(아래)(1/9)

 

‘온라인 송고용 제목까지 다 신경 쓸 수 없다’거나 ‘전파를 통해서는 그렇게 보도하지 않았다’고 반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서 밝혔듯이 요즘 국민의 80%는 모바일을 통해 뉴스를 이용합니다. 모바일 인터넷을 통해 각각의 뉴스를 접하게 되는 이용자들은 ‘심석희 성폭행’이란 제목을 통해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또한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관리하는 SNS에서 또한 온라인에 송고한 제목이 시민들에게 노출됩니다. 그만큼 온라인 송고용 제목의 파급력이 큰 상황에서, ‘방송에선 제 역할 다했다’며 둘러대는 것은 옳은 보도 행태가 아닙니다.

 

방송용 제목과 인터넷 송고용 제목 모두 ‘선방’한 언론사들도 있습니다. SBS의 경우 방송에선 <용기가 깬 ‘침묵 카르텔’…합의 취소 ‘엄벌 탄원’>(1/9 정경윤 기자)이란 제목의 보도를, 오히려 인터넷에선 <‘조재범 성폭행 피소’에 폭행 합의 취소…엄벌 탄원>이란 제목으로 내보냈습니다. KBS의 경우에도 방송에선 <16일 조재범 조사…“합의 요구에 폭로”>(1/9 천효정 기자)라고 제목을 뽑았던 기사를 인터넷에선 <조재범 ‘성폭행’ 조사…심석희 “집요한 합의 요구에 폭로”>라고 가해자를 호명해 제목을 붙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서는 피해자를 사건 이름에 호명하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는 것은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2차 피해를 입힐 소지가 있으므로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사건에 이름을 붙이는 등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미투 운동의 물결 속에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언론사가 있다면 자사의 보도 제작 과정을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성폭행 사건이 드라마입니까?

마치 어느 드라마 포스터에 나올 것 같은 문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MBN이 자사 메인종합뉴스인 <뉴스8>에서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을 다룬 기사 제목입니다. MBN은 <‘악연의 세월’ 15년…무슨 일이?>(1/9 조일호 기자)에서 이번 폭로의 피해자인 심석희 선수와 가해자 조재범 전 코치와의 인연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심석희 선수는 7살 때 조재범 전 코치를 처음 만납니다”로 시작한 리포트는 “코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심 선수가 폭로하기까지, 꼬박 15년 동안 심 선수는 조 전 코치의 폭행을 감수해야 했습니다”라며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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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석희 선수와 조재범 전 코치의 관계가 궁금했던 MBN <뉴스8>(1/9)

 

이 보도는 심석희 선수가 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심 선수의 재능을 알아본 조 전 코치가 심 선수에게 운동을 권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전 코치와 만난 지 1년 남짓, 8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심석희 선수가 폭력에 시달렸다고 자세히 말해 준 뒤 이어 “결국, 상처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터졌습니다”라며 마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처럼 서술했습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성폭력 범죄를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소비한 데 지나지 않습니다. 선수-코치로 만난 인연, 15년 동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보도 등 사건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면 되레 범죄 사실은 가려지게 됩니다. 당연히 뉴스를 만드는 기자도, 이를 읽는 시민들도 범죄가 일어난 원인이나 재발을 막을 대안에 대해서는 집중도가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 내용은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입니다. 성폭행 관련 보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나 그게 악연이었는지 아닌지는 왜 다뤄야 하는지, 이를 보도할 때 염두에 둔 보도가치가 무엇이었는지 MBN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는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부각하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피해사실을 공개하였다고 하여 본인의 동의 없이 무분별하게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부각시키는 보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등은 사건의 본질과 전혀 관계가 없으며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이야깃거리임을 언론은 유념해야할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월 8~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Q>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 (02-392-0181) 정리 조선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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