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보도상_

2019년 1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

MBC '스트레이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용산참사의 배후’
등록 2019.02.1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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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에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1/6) ‘추적 그날, 용산4구역을 선정했다.

 

2019년 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 심사 개요

수상작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추적 그날, 용산4구역’

매체 : MBC 보도일자 : 1/6

선정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이봉우(민언련 모니터팀장),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정수영(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심사 대상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7개 방송사의 탐사보도‧시사 프로그램

선정사유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1월 6일 방송 ‘추적 그날, 용산4구역’에서 10주기를 맞은 용산참사의 진상을 파헤쳤다.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와 검찰‧경찰, 심지어는 사법부까지 얽힌 치밀한 은폐 시도 및 여론전으로 피해자 구명은커녕, 사건의 진상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MBC는 검찰이 끝까지 은폐했던 초기 수사기록, 참사 당일 경찰의 무전기록, 경찰청의 언론 보도 대응 문건, 대표 사업자 삼성물산의 용역 계약 문건 등 다양한 기록 자료는 물론, 당시 철거민과 대치했던 용역업체 직원 등 많은 관련자들의 증언까지 더해 참사를 재현했다. 이런 노고는 여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당시 경찰이 현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장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압 작진을 펼쳤다는 ‘과잉 진압’은 최근 타 매체에서도 조명이 됐으나 MBC는 참사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를 대납해 준 주체이자 용역업체를 직접 고른 당사자인 삼성을 중심으로 ‘정부-경찰-삼성’의 유착 관계, 언론사 고위간부에 직접 접촉해 경찰에 유리한 보도를 이끈 경찰청의 ‘여론 조작’, 양승태 재판부의 허술한 판결까지 본질적이고 거시적인 의혹까지 치고 나갔다. 이는 참사의 진짜 원인을 밝히는 첨병으로서 ‘탐사 보도’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다.

이에 민언련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1/6) ‘추적 그날, 용산4구역’을 2019년 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사 프로그램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1/6) ‘추적 그날, 용산4구역은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용산참사의 진상을 탐사 보도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1/19) ‘작전, 한강로3가의 괴물 등 타 매체에서도 용산참사 10주기를 조명한 탐사 보도가 있었으나 MBC <스트레이트>(1/6)은 ‘탐사보도’의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SBS의 경우 용산참사의 유일한 경찰 희생자 김남훈 경사 부친의 참사 당일 행적과 참담한 심정으로부터 사건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경찰의 당시 무전기록과 당시 영상을 중심으로 ‘과잉진압’을 재현하는 등 명성에 걸맞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나 뇌물을 주고 받은 ‘MB정부-삼성’간의 유착에 의한 ‘폭력적 재개발 사업’, 언론사 고위 간부에 직접 접촉한 경찰청의 ‘여론 조작’, 경찰의 요구에 따라 철거민들에 책임을 떠넘기는 논조로 나아간 실제 언론 보도의 양상, 양승태 재판부의 허술한 판결 등 본질적 부분까지 치고 나간 MBC가 ‘탐사보도’로서 더 충실했다. SBS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참사의 진상을 극적으로 드러냈다면, MBC는 보도로서 진상을 파고들었다. MBC는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단편적 진실에 그치지 않고 이명박 정부와 삼성, 언론 등 과잉진압을 요구한 배후의 권력까지 다가간 것인데, 지난 10년 간 조중동을 위시한 대다수 기득권 언론이 ‘경찰의 과잉진압’마저 부인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소중한 방송이다.

 

‘은폐됐던 검찰 초기 수사 기록’ MBC가 보도했다

MBC <스트레이트>(1/6)이 탐사 보도로서 기울인 노력은 보도를 위해 확보한 증거 자료에서부터 드러난다. MBC는 2009년 1월 참사 당시 현장의 경찰 특공대와 지휘부가 나눈 무전기록, 검찰이 끝끝내 은폐했던 초기 수사기록 3000쪽, 경찰청 수사국이 언론사 간부에 직접 접촉해 경찰 편향 보도를 부탁한 경찰청 내부 문건, 삼성물산의 용역업체 계약 기록 등 다양한 문건자료를 입수해 보도의 토대로 삼았다. 철거민들과 대척점에 섰던 당시 투입 경찰 및 용역업체 직원들의 증언까지 확보한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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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스트레이트>(1/6) ‘추적 그날, 용산 4구역’

 

‘경찰 과잉진압’ 복원한 MBC,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탐사 보도에 걸맞게 확고부동한 근거에서 출발한 MBC는 먼저 ‘경찰의 의해 예정됐던 참사’, 즉 과잉진압의 상황을 복원했다. 경찰은 대형 크레인 등 진압작전을 위한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작전을 철회해야 한다는 현장의 보고를 받고도 “겁 먹은 것이냐”며 압박했고 결국 진압을 강행했다. 현장 병력들은 망루가 유증기로 가득 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투입됐다가 갑자기 발생한 화재로 1명이 사망했다. MBC는 당시 경찰 특공대가 급히 진압작전을 펼칠 정도로 상황이 긴박하지 않았다는 점도 당시 실제 영상들을 기반으로 보여줬다. MBC가 보여준 하루 전의 영상을 통해 참사 발생 이전까지 충돌은 건물 진입을 시도하며 물대포를 쏜 경찰과 용역, 이에 화염병과 새총으로 대응을 했던 철거민 사이의 간헐적 대치에 불고했음이 드러났다. 경찰은 진압 직전, 병력을 물렸고 아무 부상자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째서 무리하게 ‘살인진압’을 펼쳤을까? 바로 이 부분이 MBC가 던진 본질적인 질문이다.

 

MBC <스트레이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참사의 배후’

‘왜 무리해서 진압했는가’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MBC는 ‘경찰이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섰는가’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파고 들었다. 당시 경찰의 무전 기록에는 경찰 지휘부가 노골적으로 용역과 함께 진압작전을 펼치라는 믿을 수 없는 대목이 여러 차례 반복됐고 영상 자료에서는 경찰의 방패와 해머를 나눠 쓰고 함께 현장을 누비는 용역들이 숱하게 목격됐다. 이 용역업체는 당시 재개발 컨소시엄을 대표한 삼성물산과 매우 긴밀한 회사였다는 점이 당시 관계자들 증언에서 여러 차례 지적됐다. MBC는 참사 바로 다음날이 착공인데 철거민들로 인한 일정 연기를 우려했던 삼성이 사건의 숨은 배후, 즉 경찰 과잉진압의 발단이라 판단했다.

 

MBC가 묻는다 “MB는 왜 하필 그때 불법 집회 근절을 외쳤나”

MBC가 짚은 또 하나의 ‘진짜 배후’는 이명박 정부다. ‘MB 정부의 뉴타운‧재개발 광풍’이 용산참사에 영향을 줬다는 것은 사실 이미 많은 매체가 짚어 본 요소이기는 하다. MBC도 통상 5년이 걸리는 관리 처분 절차를 2년 만에 끝내는 등 절차가 허술했고 수십년 간 삶의 터전을 가꿨던 철거민들에게 고작 평균 2500만 원만 쥐어준 채 3개월 만에 나가라고 했던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의 맨 얼굴을 조명했다. MBC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하필 2009년 1월이라는 시기에 삼성이 주도한 용산4구역에서, ‘국가 차원의 불법 집회 근절’까지 외치며 용산참사를 일으킨 배경에 다가간 것이다.

 

MBC의 시선은 2008년 9월,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임기 중에 법질서를 지키는 사회를 만들겠다”, “불법 폭력 시위를 극복하고 법질서를 확립될 경우 국가 브랜드 가치가 크게 개선된다”고 외쳤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향했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등 여러 험의 재판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바로 이 시기, 삼성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58억 원을 대납했다. 이는 최근 재판에서 ‘뇌물’로 인정됐다. 그리고 불과 4개월 후, 삼성이 주도한 용산4구역의 사업 차질을 막기 위해 경찰은 무리하게 특공대를 투입했고 삼성이 고용한 용역업체와 함께 철거민을 탄압했다. 결과는 6명의 희생이다.

 

‘MB청와대-경찰-언론’의 ‘더러운 유착’, 답은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런 정황은 간접적 정황이나 우연의 일치로 보일 수 있다. MBC도 여기서 그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MBC는 경찰청 수사국 내부문건인 <용산 철거현장 화재 사고 관련 조치 및 향후 대응방안>를 꺼내들었다. 이 문건은 용산참사의 관할 경찰서를 넘어 경찰의 최종 결정권자인 경찰청이 나서서 여론전을 펼쳤음을 암시하는 근거이다. 경찰청은 이 문건에서 “시위 농성자들의 폭력성, 경찰력 투입 필요성을 설명했다”면서 “언론사 간부들의 반응”까지 적어 놨다. 문건에는 “MBC 국제부장 김장겸 전화 통화. 경찰 입장 충분히 이해하고 법질서 확립 위해서 엄정한 대처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며 후배 기자들에게도 같은 취지로 조언하겠다는 반응” 등 충격적인 경찰청-언론사 고위간부 간의 유착이 가감 없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2009년 1월 21일까지 ‘진상부터 규명’, ‘현장 파악도 안 된상태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 등 상식적 태도를 보이던 조선일보‧동아일보 등 언론 보도는 1월 22일을 기해 일제히 ‘화염병을 투척한 철거민으로 인한 도심 참사‧테러’로 돌아섰다. MBC는 실제 기사 사례들도 빼놓지 않았다.

 

문제는 ‘화염병 투척한 철거민 책임’이라는 프레임이 사건 수사를 총괄한 검찰, 진압을 총지휘한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등 핵심 책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김석기 청장이 “공권력이 정당하게 집행되었다는 국민들에 대한 인식 제고 및 홍보”를 지시해 최소 900명의 경찰을 인터넷 댓글 조작 작업에 투입시켰다는 사실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당시 이명박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체포되자 경찰에 용산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계속 기사거리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 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바로 이것이 ‘언론-경찰-검찰-청와대-삼성’으로 이어지는 ‘용산참사의 배후 커넥션’이다.

 

가해자 없는 참사, MBC가 끝까지 파헤쳐 주길

MBC <스트레이트>(1/6)의 후반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4~5년 징역까지 살아야 했고 지금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참사 피해자들의 현재, 바로 그 ‘4~5년 징역’ 판결을 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채워졌다. 이명박 청와대와 검경, 언론이 반복했던 ‘철거민의 화염병’이라는 프레임대로 양승태 재판부는 참사의 생존자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으나 판결은 변하지 않았고 “발전기 스파크 등 다른 화재 원인을 증명할 수 없으니 철거민이 던진 화염병이 원인”이라는 황당한 근거가 판시됐다. 양승태 당시 대법관은 이후 대법원장 자리에 올랐고 수사 책임자 정병두 차장 검사는 이후 대법관 후보에 올랐으며 특공대 진압을 지시하고 여론을 조작한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는 지금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MBC <스트레이트> 진행자 김의성 배우는 “참사 발생의 가해자라 부를 만한 당시 검찰 경찰 법원 수뇌부는 승승장구”, “강경진압 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했고, 김정인‧권희진 기자는 “최근 경찰 진상좌위가 조사를 다 마쳤으나 김석기 청장 등 핵심 지휘부를 한 번도 소환 조사 하지 못했다”, “검찰 재조사위 조사 기한은 3월, 발표를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다. 권력의 부패와 횡포에 시청자와 함께 분노하며 시간이 흘러도 끝까지 사안을 파헤치겠다고 약속하는 이 장면 역시 MBC <스트레이트>의 매력이다.

 

<끝>

문의 이봉우 모니터팀장(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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