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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모니터위원회]범죄를 정당화하고 왜곡된 성 인식 보여준 <왜그래 풍상씨>, 왜그래 KBS?
등록 2019.03.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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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모임인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만나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 등을 모니터하고, 한 달에 1개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방송비평을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민언련(02-392-0181)로 연락주세요

 

KBS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이하 <풍상씨>)가 최고 시청률 22.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문영남 작가가 집필하고 진형욱․이현석 감독이 연출한 <풍상씨>는 높은 시청률 덕분에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만에 KBS의 성공이다.

 

그러나 <풍상씨>가 과연 성공적 드라마일까? <풍상씨>는 ‘가족드라마’를 표방한다지만, 기획의도는 ‘가족은 힘인가, 짐인가?’이다. 게다가 매회 ‘뒷목 잡는’ 우여곡절을 보여주는 <풍상씨>는 가족을 힘이 아니라 짐인 것을 분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가족드라마’란 말이 무색하게 범죄 정당화, 성 상품화 등 비윤리적인 요소가 한 회에도 수차례 발견되기도 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공영방송에서 이처럼 심각한 문제적 장면을 빈번하게 드러낸 것이 적절한 것일까. 무엇보다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공영성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하는 KBS가 시청률을 위해 뻔한 막장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많은 논란을 빚은 <풍상씨>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하 방송심의규정)에 근거해 모니터링했고, 그중 심각한 장면만을 골라 이번 보고서를 작성했다.

 

반복되는 선정적 장면 노출과 범죄 희화화

 

시작부터 피 칠갑과 칼부림… 적나라한 폭력 묘사 다수

<풍상씨>는 피와 칼부림으로 막을 올렸다. 1회 초반부에는 풍상의 가족이 장례식장에서 형제간 ‘유산분쟁’으로 인한 칼부림 사건을 목격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장례식장 앞에서 두 명의 인물이 피 칠갑이 된 채 누워있고, 그 옆엔 피 묻은 손을 한 또 다른 인물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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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그대로 노출한 KBS <왜그래 풍상씨> 4회

 

최근 언론에 유산분쟁이 살인 등 심각한 범죄로 불렀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풍상씨> 역시 우리 사회 가족의 비뚤어진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이 장면을 사용한 듯하나 피와 흉기 등 폭력적인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풍상씨>에선 칼과 같은 흉기에 대한 묘사가 드라마 전반에 걸쳐 직접적이고 빈번하게 등장한다. 19회에선 이진상(오지호 분)이 복수를 언급하며 칼을 드는 장면이 모자이크 없이 나왔고, 21회에선 진상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도 직접적으로 나왔다. 게다가 <풍상씨>의 인물들이 가족 간 분쟁이나 억울한 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했다. 이는 방송심의규정 제38조 범죄 및 약물묘사 조항에 어긋난다.

 

제38조(범죄 및 약물묘사) ②방송은 범죄의 수단과 흉기의 사용방법 또는 약물사용의 묘사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이 같은 방법이 모방되거나 동기가 유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도박이 게임?…보험사기도 장려

풍상의 동생 진상은 늘 “인생은 한방이야”를 외치는 인물이다. 첫 회부터 그는 도박장에 앉아 일확천금을 꿈꾸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때문에 <풍상씨>에선 진상의 도박장면이 수시로 등장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드라마가 도박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풍상씨>는 도박을 지나칠 정도로 익살스럽게 연출했다. 20회에서는 행진곡과 같은 드럼 소리, 시청자의 몰입감을 고조하는 카메라 워킹, 여기에 진상의 장난스러운 표정까지 어우러져 도박이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잊게 했다.

 

드라마에서 도박 장면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후반부의 비참한 결과를 부각하는 효과를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풍상씨>의 진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줬다. 도박으로 매번 돈을 잃던 진상은 후반부 결국 돈을 따고야 만다. 돈을 딴 진상을 드라마는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모습으로 비췄다. 패전을 극복한 개선장군처럼 득의양양한 진상을 보고 친구 전칠복(최대철 분)도 반색했다.

 

드라마를 포함한 방송은 사행행위를 다룸에 있어 연출에 신중 가해야한다. 그러나 <풍상씨>의 진상은 도박을 통해 짜릿한 쾌감은 물론, 돈까지 벌고 그 돈을 발판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이러한 연출과 스토리 전개는 도박을 조장하는 듯한 모양새로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진상이 애초에 도박장에 들고 온 돈은 훔친 돈이었다. 이 역시 소소한 범죄는 결과가 좋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개다.

 

보험사기 범죄도 <풍상씨> 세계에선 그저 코미디 소재였다. 18회에선 진상과 노양심(이보희 분)이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차에 뛰어들 계획을 세웠다. 이때 진상과 양심은 코미디 만담처럼 “돈 없으면 남자 매력 꽝이야”(양심), “세상 불변의 진리지”(진상), “때 내고 폼 잡고 형까지 주면”(진상), “짱이지~”(양심)라는 대사를 주고받았다. 결국 두 명의 자해공갈단은 슬랩스틱을 방불케 하는 연기로 사기를 벌였다. 사기행각을 지나치게 코믹하게 연출한 <풍상씨>는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블랙코미디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내용은 방송심의규정 제28조 건전성, 제33조 법령의 준수를 위반한 내용이었다.

 

제28조(건전성)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허례허식, 사기 및 낭비풍조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33조(법령의 준수) ②방송은 위법행위를 고무 또는 방조하여서는 아니된다

 

양성평등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장면도 반복 등장

 

사랑하기에 폭력까지 용서? 가정폭력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일인가

폭력적인 장면과 범죄의 희화화도 문제지만 <풍상씨>는 이에 한술 더 떠 가정폭력을 정당화 하는 내용도 보여줬다. 피해자인 여성이 직접 나서 가해자 남편(혹은 동거인)을 두둔하고, 그가 행사한 폭력이 대수롭지 않은 듯 행동한 것이다.

 

13회에선 이화상(이시영 분)이 전 남편 유흥만(윤선우 분)에게 폭력을 당해, 함께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장면이 그려졌다. 이때 화상은 오빠인 풍상을 말리며 “하지마. 괜히 누가 신고는 해가지고. 둘이 알아서 할 건데…”라며 가해자를 두둔했다. 분명한 범죄인 가정폭력을 가족 간의 ‘사적인 일’로 치부하는 잘못된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화상이 담당 형사에게 “우리 싸운 거 아니고... 장난 좀 친 거에요. 남도 아니고 전남편인데”라며 재차 가해자를 두둔했다. 엄연한 가정폭력을 ‘사랑싸움’ 정도로 다룬 셈이다.

 

더 기가 막힌 장면도 등장했다. 화상은 풍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달려가 가해자인 전 남편에게 입을 맞췄다. 마치 ‘사랑하기에 폭력을 포함한 너의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다’는 식의 전개를 보여준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다른 회차에서도 등장했다. 26회에서 양심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자친구를 감싸며 “그만해. 손찌검 한 건 잘못했대잖아. 다신 안 그런대”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피해자인 여성이 가해자 남성을 용서하고, 나아가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비슷한 구도의 장면이 반복되면 시청자로 하여금 가정폭력이 피해자인 여성이 참으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쯤으로 인식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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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감싸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준 KBS <왜그래 풍상씨> 13회

 

이런 모습은 방송심의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조항의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제30조(양성평등) ④ 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무엇보다 이런 드라마 스토리는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달할 우려가 있다. 그동안 가정폭력의 신고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가 ‘가정폭력=범죄’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경찰 1,1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개선 방안’에서는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55.8%가 ‘피해자가 소극적이거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 대응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풍상씨>의 화상과 같이 피해자가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내재화할수록 가정폭력은 음성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전에는 공권력조차도 가정폭력을 ‘가정 내 일’이라며 나서지 못해 상당수 가정폭력 범죄는 은폐됐다. 이러한 점에서 해당 장면은 사회적 과오를 재생산하는 꼴이었다.

 

성 상품화도 모자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왜그래 풍상씨>

지난해부터 이어진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 젠더 감수성의 필요성을 절감케 하고 있다. 그러나 <풍상씨>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했다. 성차별적 고정관념과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부적절한 가치관을 일반화시키는 극중 인물들의 행동이 수차례 반복됐기 때문이다.

 

우선 <풍상씨>는 시종일관 ‘남자가 돈을 벌어온다’는 가부장적이며 성차별적인 시선을 고수했다. 화상과 그 엄마인 양심은 거의 매회 남성의 경제력에 기대려는 종속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극중 노양심은 “여자의 인생을 구제하는 건 돈 많은 남자밖에 없어, 남자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손으로 돈 모양을 보여주며)이게 중요한 거지”라고 말했다.

 

비슷한 대사는 더 있다. 간보구(박인환 분)는 딸에 재혼을 권유하며 “나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팔자 고쳐야지”라고 말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성의 경제력이 여성의 삶을 좌우한다는 노양심과 재혼으로 팔자를 고치라는 간보구의 대사는 차별적이며 시대착오적이다. 양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줄곧 남성의 경제력을 우선시하며 이를 일반화했다. 이런 대사들은 경제활동은 남성의 전유물이고 여성은 그에 종속되는 것을 당연시하며 전통적인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4회에 나오는 진상의 친구 칠복의 대사도 천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칠복은 진상의 어머니 노양심이 최근 남자친구와 만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남자는 말이여, 여자를 어떻게 해볼까 하는 마음에 돈부터 주면서 꼬시지만은 여자는 몸이 가야 돈도 가는 거여. 마음 주고 몸도 주고”라고 말했다. 드라마 속에서 이 말은 노양심의 남자친구가 노양심을 어떻게 해볼까 하는 맘에 돈을 주며 꼬신 것인데, 이젠 심드렁해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칠복은 이 말을 하면서 성행위를 연상사키는 몸동작까지 곁들여서 불쾌감을 높였다. 이 발언은 그 말 자체가 비논리적이지만, “여자는 몸이 가야 돈도 가는거여”라는 표현은 여성을 ‘꼬시기 위해서’는 일단 몸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려서 기가 막힐 지경이다.

 

또한 9회에서 진상과 교제하던 여성은 “남자 주머니 비면 가오 떨어져”라며 진상의 주머니에 돈 봉투를 찔러 넣었다. 3회에서는 양심이 “돈 없으면 남자 매력 꽝이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 노양심의 “밥만 같이 먹어줘도 용돈 주는 오빠. (중략) 여자들 아주 몸부림을 친다”는 대사도 있다.

 

이런 대사들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고정관념, 편견을 강화하고 일반화하고 있으며, 방송심의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제35조 성표현의 위반으로 볼 수 있다.

 

제30조(양성평등) ①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한다. ②방송은 특정 성(性)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아니된다. ③방송은 특정 성을 다른 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다루거나 객관적인 근거 없이 특정 성의 외모, 성격, 역할 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방송은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35조(성표현) ②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된다.

 

점입가경, 딸에게 데이트 알바를 권하는 엄마

<풍상씨>는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대사와 연출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의 대상화‧도구화 또한 줄곧 드라마에 등장했다. 금전적 이익을 기대하고 남자를 만나는 화상, 양심 두 명의 인물 설정 자체가 이미 여성을 도구적으로 그리며 여성이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표현을 수시로 한다. 일례로 19회에서 화상은 “몇 번 만나주고 돈만 뜯으려 그랬다고”, “나한테 뿅가서 돈 준다는데 왜 못하게 해?”라며 30만원에 할아버지를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만남을 고민하는 상황에 놓였다. 상식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설정으로 실제라면 뉴스에 나올 법한 수준이다.

 

금전적 대가를 바라고 부적절한 만남을 수락하는 것도 납득하기 힘든데, 그 만남을 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엄마 양심이었다. 양심은 화상에게 “딴 년 주기 아까워서”, “궁뎅이가 밥 먹여주니. 그냥 앞에서 방실방실 웃어주기만 하라구”라며 데이트 알바를 권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화상이 “나 고3때 엄마가 데리고 간 술집있잖아. 거기 매니저가 돈 받는 거 봤대”라며 양심이 미성년자였던 화상을 유흥업소에 넘겼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무조건 매우 높은 모성애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져달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공영방송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성매매에 가까운 행위를 시키는 설정이 나온다는 것은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와 같은 일화는 방송심의규정 제35조 성표현 2항 “방송은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여서는 아니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된다”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줄곧 본인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노래방 도우미’ 부르고, 미성년자 딸은 ‘유흥업소’ 출입하고

작가가 여성을 도구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두 인물의 설정에서 그치지 않았다. 18회에서 풍상은 자신이 간암임을 알게 되고 일탈을 결심했다. 이후 난생처음 호텔에 가보자며 전 부인에게 연락하지만 거절당한 뒤 크게 상심한 풍상은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풍상은 혼자 노래 부르며 마음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노래방 도우미’인 유흥접객원을 불렀다.

 

또한 중학생인 중이(풍상의 딸)는 유흥업소에 나간 듯한 연출도 나온다. 10회에서 풍상과 중이는 유흥업소로 보이는 장소에서 대면했다. 풍상이 중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안마’, ‘만남’ 등의 단어가 간판에서 언뜻언뜻 보이며, 중이는 노래방인지 단란주점인지, 룸싸롱인지 모를 업소에서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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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유흥업소 출입 방송한 KBS <왜그래 풍상씨> 10회

 

게다가 중이 역을 맡은 배우 김지영은 아직 미성년자임에도 이런 장면이 연출된 것은 더욱 유감이다. 이는 방송심의규정 어린이 청소년 보호조항인 제45조(출연)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제45조(출연) ① 방송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그 품성과 정서를 해치는 배역에 출연시켜서는 아니 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건전하지 못한 가치관, 미풍양속을 해치는 장면도 다수

 

풍상씨, 독하면 이혼 ‘당’하나요?

이혼은 각 가정과 개인의 복잡한 사정이 결부되어 있다. 개인적인 문제지만 자녀 양육 문제나 재산 분쟁, 가정폭력과 관련해 사회적인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때문에 이혼은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비난을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무작정 이혼을 ‘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하면 가정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무척 힘들게 가정을 유지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상씨>는 이혼을 지나치게 개인의 ‘흠결’로 표현했다. 24회에서 한 손님은 분실을 향해 “저렇게 독하니까 이혼 당하고 왔지”라며 지적했다. 이혼을 ‘당했다’며 이혼이 일방의 결과물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데, 이혼 사유를 상대방의 인격과 연결시켜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인 보구는 분실을 향해 분풀이까지 하고 그를 탓한다. 간보구는 딸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여, 전엔 이런 일 한 번도 없었는데 니가 이혼하고 집에 와있으니까 얕잡아 보고 저러잖여, 어휴 짱나. 시집 간 딸년이 자식까지 데려 왔으문 누가 모르겠어, 머저리까지도 다 알지 이혼당하고 온 거”라고 화를 냈다. 자식의 이혼을 자신과 결부시켜 ‘창피해’하고 그를 자신의 ‘흠결’로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이혼한 여성에게 더욱 엄격한 차별적 잣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구의 대사는 성차별적이며 부적절했다. 극중 인물이 구시대적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는 작가의 몫이다. 나아가 22회에서 분실은 “이혼은 참다 참다 목 매달려고 나도 모르게 밧줄 들고 있거나 상대방 죽이려고 나도 모르게 칼 들고 있을 때, 그때 하는 거라고”라며 보구가 한 말을 다시 언급했다. 이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하지만 대사처럼 ‘죽기 전까지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강압적이다.

 

언어폭력, 의료 윤리 위반, 성희롱도 별 문제 아닌 <왜그래 풍상씨>

<풍상씨>에서 언어폭력은 일상적이었다. 대표적으로 극 중 화상이 쌍둥이 언니인 정상을 호칭하는 것은 대부분 ‘이 년’ 혹은 ‘저 년’이다. 이는 아주 단적인 예시일 뿐 <풍상씨>에서는 회차와 등장인물을 불문하고 ‘년’, ‘새끼야’라는 비속어와 언어폭력이 상시적이다. 심지어 화상은 정상을 ‘싸이코패스 (같은) 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풍상씨>의 비속어와 언어폭력 사용빈도는 혐오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풍상씨>는 다수의 방송심의규정 위반사항 뿐 아니라 의료 윤리를 위반하는 연출도 있었다. 25회에서 정상은 화상에게 간 이식 적합검사인지 고지하지 않고 검사를 받게 하거나 26회에서 진상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 등이다. 그나마 25회는 의료 윤리 위반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지만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경우는 심각한 인권침해의 문제가 있음에도 극중에서는 큰 문제없이 진행됐다.

 

이러한 연출은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무디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이 같은 문제는 2회부터 이어졌다. 부유한 여성이 진상을 성희롱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를 큰 문제의식 없이 희화화한 것이다. 언어폭력에서부터 가정폭력, 성희롱, 보험사기, 도박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간주되는 행위가 <풍상씨>에서는 마치 ‘그럴 듯한 이유’로 포장되거나 배우의 장난스러운 연기로 별 것 아닌 것처럼 연출됐다. 해당 장면들은 방송심의규정 제25조 윤리성, 제27조 품위 유지의 위반으로 볼 수 있었다.

 

제27조(품위 유지)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되며,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5. 그 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

 

우리는 그래도 낫다? 이상한 기획의도

<풍상씨>의 연출 및 대사만큼 기획의도도 문제가 있다. 가족을 짐처럼 여기다가도 갑자기 “우리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며, “드라마를 보고나서 가족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한마디 할수있는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가족 문제를 ‘까발’린다고 해서 가족 간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봉합되지 않는다. 갈등의 해소는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좁혀나가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단순히 풍상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그렸고, 나머지 풍상의 동생들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에 바빴다.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본 뒤에 가족 누군가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넬 수 있으려면 극 중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보다 풍상의 가족과 비교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 ‘저런 가족도 있는데’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만큼 극 중 인물들의 예외성은 도드라졌다. 그러니 당연히 감정이입이 어렵고, 자신과 풍상네 가족을 견주어 보게 됐다. 이러한 비교가 과연 ‘진심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풍상씨>의 진짜 기획의도가 궁금해진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 인물들은 갑자기 개과천선하고 모두가 경제적 안정을 찾으며 막을 내렸다. 개연성도 부족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풍족으로 넉넉해지면서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식의 흐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야하고, 살아갈 만하다는 용기와 응원이 될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1월 9일부터 3월 14일까지 KBS <왜그래 풍상씨>

 

<끝>

문의 임동준 활동가(02-392-0181) 정리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김안수‧정혜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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