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보도상_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일제 만행 증거 실태 알린 한국일보
등록 2019.09.2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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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2019년 8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신문 부문에 한국일보 <인도네시아 위안소 유적 및 현지 한국인 역사> 연속 보도를 선정했다.

2019년 8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신문 부문 심사 개요

좋은 신문 보도

<인도네시아 위안소 유적 및 현지 한국인 역사> 연속 보도

매체 : 한국일보, 취재 : 고찬유 자카르타 특파원, 보도일자 : 8/7~20

선정위원

공시형(민언련 활동가),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민동기(고발뉴스 미디어전문기자), 박영흠(협성대학교 초빙교수), 박진솔(민언련 활동가), 엄재희(민언련 활동가), 이광호(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임동준(민언련 활동가), 조선희(민언련 활동가)

심사 대상

8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한국일보 지면에 게재된 보도, 그리고 자천, 타천한 신문보도(지면보도에 한함)

선정 사유

한국일보 고찬유 자카르타 특파원은 이태복 시인의 도움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암바라와 수용소 사적이 발견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렸다. 암바라와 수용소는 일제의 대표적인 만행인 일본군 성노예 제도의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이다. 암바라와가 속한 스마랑 지역 일대 수용소에는 한국인 여성뿐 아니라 네덜란드 여성들도 강제로 수용된 사례가 있어,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단지 한일관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여성인권 전반에 관한 국제문제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일보의 보도는 일제의 전시 성노예 제도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일제 만행의 증거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 무관심했던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에서 이제라도 제대로 된 보존·관리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전에 암바라와 수용소를 다녀간 기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일보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고찬유 특파원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암바라와 의거’와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일본인으로 알려진 한국인들을 조명한 추가보도를 내놓았다.

고찬유 특파원의 이번 보도는 특파원으로서 단순히 해외 소식들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보도를 스스로 생산해 냈다는 점에서 신문사들이 직접 파견하는 특파원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신문사들이 해외 특파원의 역할을 뉴스통신사에 맡기고 자체 특파원들을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이번 한국일보 보도는 해외 특파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사적은 화장실로 쓰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사적은 일제 성노예 문제에서 아주 중요한 역사 유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일제 점령 전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여서 연합국 측이 남긴 일제 만행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데, 이 기록 중에는 일제 군대가 현지에 살던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징집하여 위안부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군 성노예 제도가 단순히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전시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문제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얼마 전 별세한 일본군 성노예 제도 피해자 얀 루프 오헤른(Jan Ruff-O’Herne, 1923-2019)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된 곳이 바로 암바라와가 속해 있는 스마랑 지역이었다. ‘스마랑 사건’은 일본 극우세력들이 거의 유일하게 인정하는 위안부 강제동원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기사 <참담한 인니 위안소버려진 짐승 우리같았다>(8/8, 고찬유 기자)는 암바라와 수용소가 현지 교민들에게 알려진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렸다. 한국일보 고찬유 기자는 우선 르포를 통해 암바라와 수용소의 참담한 관리 실태를 취재했다. 위안소였던 건물 대부분은 풀에 뒤덮여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건물 한 칸은 화장실로 쓰이고 있었는데 유지·보수의 흔적이 있는 곳은 역설적으로 화장실로 개조된 칸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의 전시 성노예 제도에 분개하면서도 정작 일제 만행의 증거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었는지 무관심했던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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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는 암바라와 위안소 사적지(8/8, 한국일보)

 

범인은 ‘한일 위안부 협약?’

고찬유 기자는 후속 기사 <인니 위안소 소녀상 건립 계획 박근혜-아베 정권 밀약에 무산된 듯>(8/10, 고찬유 기자)에서 왜 이런 중요한 사적지가 충분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져 가고 있었는지 주목했다. 기자가 지목한 범인은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밀약”이었다. 고찬유 기자는 그 근거로 2014년 9월 현지 한국인 언론 ‘한인포스트’에 <스마랑 위안부 소녀상을 세우자>라는 기사가 났는데, 이 기사가 교민 사회의 큰 호응을 얻었고 한국 정부도 전담 영사를 배정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인 점.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제 3국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한일 위안부 협약’을 체결한 이후, 한국 대사관 측이 민간에서 진행하는 소녀상 설치나 알림판 설치 등에 제동을 걸었다는 ‘한인포스트’ 정선 대표의 취재 내용 등을 제시했다.

기사는 또한, 현재 암바라와 수용소의 다른 시설물들은 멀쩡하게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기사에서 인터뷰한 정선 대표에 따르면, “(암바라와 수용소 발견) 1년 뒤 암바라와 성은 일반에 공개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관광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 외교당국은 이 시설의 존재 여부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제한구역이 아니라 민간에 개방된 공간이라 소녀상 등 기념물 설치를 못 할 이유가 없는데도 외교당국이 나서 안내판도 설치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은 ‘위안부 합의’를 따른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암바라와 의거’도 알린 한국일보

한국일보는 <일본군 소굴로 되돌아간 인니 3의사위안부 구출하려 했나>(8/15, 고찬유 기자)에서 그 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암바라와 의거’사건도 보도했다. 암바라와 의거란 일제 강제징집에 의해 연합군 포로 감독관으로 동원된 한국인들이 44년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후, 단체 소속인 손양섭·민병학·노병한 등 3인이 암바라와 수용소를 습격해 3일간 일본인 12명을 사살한 후 순국한 사건이다. 네이버 검색 기준 암바라와 의거에 대한 보도는 고작 12건에 불과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독립운동 사례인데, 한국일보는 암바라와 수용소 실태를 보도하며 이 사건을 같이 조명한 것이다. 고찬유 기자는 기사 말미에서 고려독립청년당원 26인의 이름을 나열하고, “고려독립청년당은 당 선언에서 ‘희생 없이 광명은 획득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후대인 우리는 광명을 획득했는가,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력을 했는가.”라며 인도네시아 현지 한국인 역사에 대한 기록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파원의 발굴취재 더 많아져야…취재원 한정된 것은 아쉬워

한국일보 <화장실로 변한 인니 일본군 위안소, 푯돌 세워 의미 찾는다>(8/16, 고찬유 기자)에 따르면, 현지 교민들은 한국일보의 보도를 보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일보가 처음 이 곳을 찾은 국내언론은 아니었지만, 암바라와 수용소의 관리 실태를 집중적으로 지적해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한국일보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취재내용이 이태복 시인과 이미 알려진 일본군 성노예제도 피해자 할머니 증언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고찬유 기자는 지난 4월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에서 대규모 임금체불 사건이 벌어진 것을 고발한 <인니 한국기업 사장 야반도주> 기획 보도로 기자협회보의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고찬유 기자의 꾸준한 발굴 취재는 단순히 해외 언론 보도들을 전달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보도를 스스로 생산했다는 점에서 신문사가 직접 파견하는 특파원의 가치를 증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문사들이 해외 특파원의 역할을 뉴스통신사에 맡기고 자체 특파원들을 줄여나가는 상황에서, 한국일보의 고찬유 기자는 해외 특파원들이 어떤 취재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끝>

문의 공시형 활동가(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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