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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반대 집회서 나온 ‘5‧18 유공자 명단 까’ 팻말, 보여줘야 했나
등록 2019.10.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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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열린 ‘검찰 개혁’ 촉구 집회를 보도한 언론사 중에는 ‘조국 반대 집회’를 나란히 보도하며 기계적 중립을 지킨 곳들이 있습니다. 이는 지난 보고서 <숫자싸움, 의미 폄훼, 기계적 균형에 빠진 검찰개혁 집회보도>(10/1)에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집회 참가 인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지만, 검찰 개혁을 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과 비교하면 조국 반대 집회를 ‘맞불집회’라며 보도하는 것은 오히려 언론이 이들 세력을 부풀려주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조국 반대 집회를 단순하게 보여주면서 생긴 문제는 또 있습니다. 조국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 중에는 <5‧18 유공자 명단 까!>라고 적힌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사 중에는 이를 클로즈업해 화면에서 계속 비춰준 곳이 있었습니다. 해당 방송사뿐만 아니라 조국 반대 집회를 스케치하는 식으로 화면을 구성한 여러 방송사에서도 이 손팻말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하 5‧18) 유공자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주장은 이 유공자 명단에 북한군이 있다는 허위사실과 맥을 같이 하며, 이미 법원에서도 공개는 위법이라고 판결한 사항을 계속 억지를 써가며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5‧18 유공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유가족들에 대한 2차 피해입니다. 언론이 이를 뉴스 화면으로 구성한다면, 그들의 비민주적이고 억지스러운 요구를 퍼 날라주는 꼴에 불과합니다.

 

 

‘명단 까’ 손팻말 따로 잡아 보여준 MBN

MBN은 <조국 찬반 맞불집회>(9/28 배준우 기자,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에서 생중계로 집회 소식을 전했습니다. 기자는 먼저 제7차 검찰 개혁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앞의 상황을 전한 뒤, 정아영 앵커가 “검찰 개혁 요구 집회 이전에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도 열렸다면서요?”라고 묻자 조국 장관 사퇴 요구 집회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배준우 기자는 “그렇습니다. 이보다 1시간 앞선 오후 5시부터는 도로 맞은편에서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습니다”라며 두 집회를 비슷하게 묘사하더니 “이 집회는 보수 성향의 자유연대라는 단체가 주최한 건데요. 검찰 개혁 촉구 집회가 검찰 수사를 압박하고 있어 맞대응에 나섰다며 집회 주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라며 조국 장관 반대 집회가 왜 열렸는지 그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기자가 이 배경을 설명할 때, 화면엔 ‘5‧18 유공자 명단 까!’라고 적힌 손팻말이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이란 손팻말과 함께 명단을 공개하라는 손팻말이 클로즈업돼 화면에 잡힌 시간은 2초 정도였습니다. 이 2초를 포함해 조국 반대 집회를 전체적으로 촬영했지만 ‘명단 까’라고 적힌 손팻말이 눈에 보여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화면이 약 6초간 전파를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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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라는 손팻말 보여준 MBN(9/28)

 

 

명단 공개는 ‘위법’, 명단에 폭도가 있다는 주장은 ‘허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이 터져 나왔을 즈음, 오마이뉴스가 <“5‧18 유공자 명단, 알권리 위해 공개해야” 맞는 말일까?>(2/12)에서 그들의 망언이 위법을 요구하고 있고 허위사실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미 2018월 12월 일부 시민들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5.18 유공자 명단 및 공적내용 공개 행정소송’에서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사항은 유공자들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된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공적을 기록‧보존하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는 독립유공자 명단을 제외하고는 다른 유공자 명단도 비공개입니다.

 

“또한 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를 통해 심사를 거쳐야”하는 것이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유공자를 더 뽑아주고 덜 뽑아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JTBC <팩트체크/명단 공개? 가짜 유공자?…5‧18 망언 검증>(2/12)에서도 유공자 심사는 “15명으로 구성된 ‘보상심의위원회’”가 하고 있으며 이중 “광주시장을 포함한 6명이 당연직이며, 광주 시장이 2명을 임명하고 국무총리가 7명을 위촉”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아무도 저런 허위 주장을 지적하지 않나

따라서 기자들이 집회 현장에서 5‧18 유공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사실에 근거한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손팻말을 보게 되었다면, 이를 클로즈업해서 부각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보도를 통해서 ‘조국 반대 집회에서는 조국 장관과 아무런 관련 없이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치적이고 비민주적인 구호도 있었다’고 지적해야 적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MBN 등 여러 방송사들은 해당 손팻말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거나 그와 비슷하게 비춰줬습니다. MBN이 가장 선명하게 부각했지만, KBS <‘검찰 개혁은 민심’…세 대결 조짐도>(9/29 허효진 기자), YTN <‘검찰개혁’ 대규모 집회…“80만 명 추산”>(9/28 김다연 기자)에서도 ‘명단 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보여주며 조국 반대 집회 현장을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KBS와 YTN 보도는 일부 타 방송사와 비교했을 때 화면 구성에서 부주의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SBS는 <‘검찰 개혁’ 촉구 검찰청사 앞 대규모 촛불>(9/28 남주현 기자)에서 조국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고 설명하긴 했지만 화면에선 이런 손팻말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JTBC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를 다루면서 동시에 조국 반대 집회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왜 조국 반대 집회에서 5‧18 유공자를 운운하는지 어느 언론사에서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재작년 친박 단체들이 탄핵무효 집회를 열 때, 5‧18 유공자 가산점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와 이를 지적하는 언론사가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당시 <탄핵반대 집회서 왜 ‘5‧18유공자 가산점 폐지’ 주장을?>(2017/3/20 김규남 기자)에서 이를 지적하며 탄핵무효 집회에서 일부 극우 사이트들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조국 반대 집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잘 못하고 있거나,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 중에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지적하는 집회면 모르겠습니다. 왜 조국 장관을 반대한다는 집회에서 5‧18 유공자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하는지 연관성을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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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손팻말 보여준 KBS(위)‧YTN(아래)(9/28~29)

 

오로지 집회를 주최하는 곳이 보수 또는 극우 단체라는 연결고리로 봐야 ‘조국 반대’와 ‘5‧18 유공자 공개 요구’가 묶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조국 사태를 정쟁으로 만드는 이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언론은 왜 이를 따져 묻지 않습니까?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9월 28~2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8>, YTN <뉴스나이트>

 

<끝>

문의 조선희 활동가 (02-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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