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편파 종편 잡으려다 언론 자유 직격탄 우려 (2014.8.6)
등록 2014.08.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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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파 종편 잡으려다 언론 자유 직격탄 우려  

방통위 방송 공정성 강화 방안 “취지는 이해하지만 부작용 가능성”  


김세옥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지난 4일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해 공정성 지표를 개발해 방송평가에 반영하고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 조항 위반 시 감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언론계 안팎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한 장치가 되레 공정성을 해치고, 비판 저널리즘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주체 방송 공정성 평가의 위험성= 방통위가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해 제시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지상파 재허가, 종합편성(이하 종편)·보도전문채널 등의 재승인 심사에 각각 40%, 35%씩 주요하게 반영되는 방송평가를 엄격하게 진행하기 위해 방송 공정성과 관련한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할 경우 감점 수준을 강화하고 공정성 평가지표를 개발해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2기 방통위에서 공정성을 지키는 게 방송의 당연한 의무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정작 방송 공정성 훼손 실태, 특히 종편의 막말과 왜곡 등의 문제를 사실상 방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점을 감안할 때, 방송 공정성 강화를 7대 정책과제의 첫 머리에 적은 3기 방통위의 취지 자체를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일례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김대중 전 대통령 간첩 주장’(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 등과 같은 출연자 일방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방송해 물의를 빚은 종편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서 중징계를 받았지만 지난 3월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를 통과했다.


재승인 심사위원회가 심사 의견 종합 소견에서 종편들에 대해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실현을 위한 노력 부족”을 지적했지만, 방송의 공적책임과 공정성, 공익성을 평가하는 심사 항목도 무리 없이 통과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방송, 특히 종편의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일련의 요구가 방송 공정성 평가에 대한 방통위의 직접 개입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통위의 지위가 대통령의 소속의 중앙행정위원회인 탓이다. 장관급의 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여하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방송의 공정성을 평가한다는 건 사실상 방송 내용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인 것이다.


정책과제 확정을 위해 열린 회의에서 김재홍 상임위원이 “방통위 내 방송평가위에서 방심위와는 별도의 지표를 개발해 반영할 계획”이라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학계와 시민단체, 언론계 전문가 대표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해 사회적 합의를 담은 지표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방통위의 지위에서부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재허가·재승인 심사에 반영되는 방송평가는 방심위의 방송심의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방심위에서 ‘주의’(벌점 1점) 이상의 법정제재를 받을 경우 그 내용은 방송평가에 반영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방통위가 별도의 공정성 지표를 개발해 이를 방송평가에 반영할 경우 이중 제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방송 공정성과 관련한 심의규정을 위반할 경우 감점을 강화하겠다는 방안 역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방송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방심위의 여야 위원 추천 비율은 6대 3이다. 사실상 여권 추천 위원들의 뜻대로 심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지난해 11월 한국방송학회 세미나에서 유승관 동명대 교수(방송영상학과)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기 방심위 당시 여권 추천 위원들의 심의 의견은 심의 결과와 83% 일치했다.


반면 야당 추천 위원들의 심의 의견은 심의 결과와 23% 일치하는 데 그쳤다. 여권 추천 방심위원들이 심의 방향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과 자신들을 추천한 정치권의 이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심의를 수행하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방심위 출범 이후 광우병, 4대강 논란 등을 다룬 MBC <PD수첩>, 정부 부동산정책 등의 문제를 지적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 KBS <추적60분> ‘천안함’ 편 등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의 내용의 포함하고 있는 라디오·시사프로그램 등이 불공정 논란이 일었던 공정성 심의의 주요 대상이었다는 점에서도 이런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9>에 대한 방심위의 공정성 심의가 잇달아 논란을 빚고 있다. JTBC <뉴스9>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소식을 다루며 정부조치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방송했다는 이유로 관계자 징계 및 경고(벌점 4점)의 중징계를 받았고, 오는 7일 전체회의에선 세월호 구조작업에 다이빙벨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인물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중징계가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방심위가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공정성 위반을 지적하며 중징계를 결정하고, 감점 역시 강화할 때 비판 저널리즘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제기가 불가피한 이유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도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에서 “방송의 공적책임을 강화하겠다는데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방심위에서 정치 심의, 불공정 심의를 하며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공정성 평가에 이용할 경우 오히려 방송의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이 정책과제 발표를 위해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우려를 담은 질문들이 나왔다. 이에 최성준 위원장은 “우려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공정성 심의에 대한 방심위의 제재를 (방송사에서) 수용하지 못할 경우 법정에서 소송으로 다툴 수 있고, 소송이 제기된 경우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진 방송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설명대로라면 불공정 방송으로 제재를 받은 방송들이 재허가·재승인 심사에서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재판을 선택할 수 있다는 문제 또한 남는다.


■내용 아닌 제도적 장치 마련= 언론계 안팎에선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해 방통위가 다른 방식의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방송 공정성 지표를 개발해 방송평가에 반영할 경우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가 바뀔 경우 공정성 지표를 개발한 취지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방통위와 방심위의 전신인 구 방송위원회는 현재의 방심위와 마찬가지로 여야 6대 3 비율의 구성을 보였지만 운영 내용은 전혀 달랐다. 현재의 방통위와 방심위가 여대야소 구조 속 정치적으로 민감한 안건들을 다수결로 결론 내는 일이 잦은 반면 구 방송위는 활동 마지막해인 지난 2007년 처리한 안건 458개 중 3개(0.7%)를 제외하고 모두 전원 합의로 결론 냈다.


이 관계자는 “방송 전반의 공영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하는 게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며 “방통위가 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광고규제 완화 등의 ‘당근’을 지상파 방송 등에 던진 만큼, 지상파 방송들이 공영성 강화를 위한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방통위에)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기획국장은 “방송사들이 공정성과 관련한 시청자 민원을 수용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거나, 관련 제도를 제대로 운영했는지 여부를 방송사 스스로 심의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방송 공정성 강화를 위해 방통위가 내용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방통위의 정책과제 발표는 막말·편파방송 등으로 방송의 질을 떨어뜨리고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혼란케 하는 종편 개혁이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내적 자유보장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선임 구조와 방송사 내부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유 보장을 위한 장치 마련에 대한 방통위의 공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