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 광주순례 후기 (2014년 6호)
등록 2014.06.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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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어고은 회원 l ekekwk@naver.com



지난 5월 8일,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4호선 중앙역에 내리자 공기부터 무거웠다. 동네 전체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잠겨있는 듯했다. 분향소 입구는 노란 물결이 가득했다. 시민들이 적어놓은 애도의 메시지가 보였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가 밀려왔다. ‘절대 잊지 말자’는 무언의 다짐을 하며 분향소를 나왔다. 


일주일이 지났다. 현실의 고단함 때문일까. 당시 기억은 희미해져 버렸다. 문득 4년 전 일이 떠올랐다. 학과 답사로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었다. 속으로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되뇌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당시 느꼈던 감정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쫓기에 바빴던 것 같다. 기억하는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5월 17일 ‘민언련 광주순례’에 참여했다. 식어버린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전 7시, 민언련 사무실에 모여 간단히 일정을 전해 듣고 차에 올랐다. 27명이 돌아가며 자기를 소개했다. 동국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13, 14학번 친구들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 광주로 향했다. 우리는 광주에 도착할 때까지 3가지 영상을 관람했다. 2003년에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와 송건호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의 다큐멘터리였다. 사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에 차에 타자마자 자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을 보기 시작하니 눈을 떼기 힘들었다. 


‘푸른 눈의 목격자’는 독일 외신 기자, 힌츠 페터를 가리킨다. 한국 언론은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광주를 외면하고 있던 반면, 힌츠 페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의 처참한 광경을 비디오에 담았다. 영상을 통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계엄군과 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의 모습을 보며 차마 속 편하게 자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 ‘당시 내가 저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목숨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난 정의를 외칠 수 있었을까. 



광주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난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갑갑함을 해소하지 못한 채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착했다. 추모 탑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리영희•송건호•김태홍 선생님 묘지를 찾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구묘역으로 이동했다. 여러 열사들이 묻힌 묘지에서 유독 이름 없는 묘가 눈에 띄었다. 당시 훼손이 심한 시체는 신원 파악이 힘들었다고 한다. DNA 검사 등 의료과학기술이 그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명열사 가족들의 심정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이 더 갑갑해졌다. 


앳된 학생들이 묘역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한 학생은 묘역에 묻힌 인물과 시대상황을 설명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이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동아리나 다른 단체를 통해 온 것 같았다. 설명을 듣고 난 학생들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들은 질문에 ‘그렇다’고 쉽게 답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일정으로 ‘5월 사진전’을 감상했다. 사진작가 김향득씨는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사진전은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주제였다. 5•18 항쟁 사적지의 풍경이 담겨있었다. 14개 작품을 감상한 후 작가와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김씨는 사적지가 훼손되고 있어, 시민들의 관심도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래서 사적지를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다 사진전을 열게 됐다고 했다. 김향득씨는 작지 않은 행동으로 광주항쟁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했다. 거창하진 않지만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의 아픔을 가슴 속에 묻고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작은 행동은 사회 안의 큰 울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망각하지 않아야 과오도 막을 수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갑갑한 마음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선 편안히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