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호][여는 글] 공론장의 민주적 재편을 위하여
등록 2023.07.0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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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길 민언련 공동대표

 

진정한 무정부주의자들

 

지난 봄 한일 정상 회담을 보면서 현 정부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무정부주의자들은 자본과 정치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는 엘리트들이라고 말입니다.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모든 정치적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는 엘리트들은 국가의 헌정질서와 국민 주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훼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판에서 나온 말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의회의 결정, 시민들의 열망이 이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장애일 뿐, 지키고 존중할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혁명적 급진 무정부주의자들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국가를 부정하지만 이들은 모든 자유를 그들이 독점하기 위해 그리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정통성과 헌법 질서를 주장도 그들만의 정치와 자본 이익에 ‘부역’하는 국가와 헌법만을 인정하겠다는 의지의 표명 이상이 아닙니다. 자유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유의 독점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법에 정한 역사적 정통성에 반하는 외교적 행보와 69시간 일하라는 법을 통해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궤변과 검찰 수사권 축소가 합법적이라고 하여도 시행령과 각종 규칙으로 검찰 수사권을 확대하여 국민 안전 보호하겠다는 억지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만을 위한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무정부적인 정부가 어쩌면 그들의 이상일까요?

 

촛불집회와 커피타임

 

주말 시민 촛불 집회도 그 본질은 현 정권의 정치와 자본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영속화를 중지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친일을 규탄하며, 견제 없는 검찰 권력을 비판하고, 공영 방송을 통제하거나 거대자본과 족벌 언론에 매각하려고 하는 시도들을 중단시키려 하며, 비판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려 하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통해 다시 민주적 정부와 국가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 하지만 이러한 촛불 시민들의 주장과 요구에 대다수 언론은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철지난 색깔론으로 왜곡하며 시민들의 목소리 자체를 범죄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수 시민들, 특히 지식인들을 포함한 엘리트 집단은 냉소적인 태도로 이 상황들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입니다. 벚꽃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마음은 어둡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러한 한계적 상황과 관련해 덴마크 정치인 외즐렘 제키지(Özlem Cekic)의 한 정치적 실험이 떠 오릅니다. 제키지씨는 덴마크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쿠르드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터키 이민자 출신으로 덴마크 의회에 입성한 최초의 소수 민족 여성 의원입니다. 그런데 의원이 된 2007년부터 그녀는 유권자로부터 혐오로 가득찬 메일과 협박성 전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너 같은 파키(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 이민자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가 우리 의회에서 뭐하는 거야” 또는 “테러리스트년”이라는 끔찍한 메시지들이 매일 그녀와 그녀 가족까지 괴롭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줄어들지 않는 이러한 인종과 성차별적 혐오를 견디다 못해 마침내 그녀는 혐오하는 그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그 분노를 이해하고 대안을 함께 모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수백명의 극우 차별주의자들을 직접 일대일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종종 그녀는 극우주의자들의 집의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를 ‘커피타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해석, 경솔한 일반화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인정하였듯이 그녀의 이 용감한 커피타임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책의 곳곳에서 그녀도 이를 숨기지 않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범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선호하는 해법,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 방식이 워낙 근본적으로 달라서 결코 의견의 일치를 이룰 수 없다”는 한계적 현실과 “그들이 더 민주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녀 스스로도 “그들이 하는 모든 질문에 대응하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좌절감에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녀의 평가와 달리 제가 보기엔 그녀의 이 용감한 정치적 실험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보충적인 실천 내용

 

덴마크 정치인 외즐렘 제키지의 ‘커피타임’과 한국 시민들의 ‘촛불집회’ 모두 차별과 억압의 상황을 간절히 바라며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의 돌파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보입니다. 정치인과 시민의 대화가 실질적인 협상 과정이 되기 위해서, 촛불집회가 한시적 촛불의 정치 공간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실질적인 빛의 정치 공간으로 승화되기 위해서 어떠한 추가적인 실천 방식과 내용이 보충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와 관련해서 저는 세 가지 정도 보충적인 실천 내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민들과 대화와 시민들의 저항 등 시민들이 참여한는 정치적 실천들이 이제는 기존의 국가와 정당 정치의 틀과 담론을 넘어서길 바랍니다. 다문화 국가나 정권 교체는 기껏해야 기존 국가와 정당 정치 체제의 틀과 담론안에 갇힌 주장입니다. 우리들의 정치 개혁의 요구가 그러한 기존 국가와 정당 정치 틀 속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와 정당 정치를 변화시킬 의제를 제기하고 본질적으로 새로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인 시민 중심의 정치 체제를 모색할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선한 정치인의 열정과 시민들의 집단적인 열망이 기존의 정치 체제와 담론의 틀 내애서 해소될 수 없다는 새로운 신념이 필요합니다.

 

둘째,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제도들 속에서 서로 다른 시민들의 주관적이고 사적인 의견들이 서로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정치인을 통해 대리하거나 단일하게 모아진 저항의 집단적 목소리들은 여과 또는 고립되고 일시적으로만 동원되면서 본래의 생동감과 역동성이 줄어들거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시민의 목소리는 직접 만남으로서 고유의 창의적이고 생생한 대안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셋째, 시민들의 의견이 단순히 정치적 도구나 사회적 잉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권력화 과정을 제도화하는 계기가 마련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와 정당 정치가 시민들을 대리하거나 시민들 뒤에서 결정해 오던 것들을 이제는 시민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결정할 수 있는 방안을 시민 스스로가 만들고 요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론으로 포장된 권한 없는 의견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의견을 한낱 정치적 ‘잉여’로 만들어 기존 정치인과 언론인의 배만 불리는데 활용될 뿐입니다.

 

오늘을 위기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난 3월24일에 있었던 민언련 총회에서 회원분들도 우리 민언련이 직면한 대내외적 위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주셨습니다. 그런 우려조차도 함께해 주심에 큰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위기를 우리 민언련의 회원분들과 그리고 더 넓게는 시민들과 함께하면서 회원들에 의한 민언련, 시민들에 의한 실천들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겠다고 다시 다짐하였습니다. 제가 제안드리는 세 가지 대안적 실천 내용들은 그러한 고민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시민들과 민중들의 주장을 마치 여론의 잉여처럼 다루는 언론들이 지배하는 공론장을 민주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올 한 해 민언련은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정치 공간도 하루빨리 오기를 오기를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기원하고자 합니다.

 

▼날자꾸나 민언련 2023년 봄호(통권 224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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