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진실’이 ‘논란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현실 I 박진솔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등록 2022.10.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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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진실’이 누군가에겐 ‘논란’을 넘어 ‘혐오’의 대상까지 되는 요즘입니다. 유난 떨 것 없이 늘 마주하는 현실인데도 최근 들어 유독 이런 상황이 낯설고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파문입니다.

 

한국시간으로 9월 22일 오전, 대통령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내놨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대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발언은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입니다. ‘이 새끼’라는 욕설을 쓴 것에 놀랐고, ‘쪽팔려서’라는 비속어를 쓴 것에도 놀랐습니다. 그것도 외교무대에서 말입니다. 대통령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건 사실이고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엎질러진 물이니, 대통령실이 공식입장을 내고 빠른 수습에 나설 거라 예상했습니다. 어떤 입장을 내든 사과는 당연히 나올 거라 생각했고요.

 

대통령실 공식입장은 부적절한 발언이 나온 지 15시간 만에 나왔습니다. 공식입장이 늦어도 너무 늦게 나왔다는 데 놀랐습니다. 대통령실 대응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요. 대통령실은 당초 알려진 대통령 발언 중 ‘바이든’은 ‘날리면’이고, ‘국회’는 ‘우리나라 국회’이며, ‘쪽팔려서’의 주체도 ‘바이든’이 아니라 ‘윤 대통령 본인’이라고 해명하기에 바빴습니다. 욕설 ‘이 새끼’와 비속어 ‘쪽팔려서’에 대한 사과는 없었습니다. 부적절한 해명으로 우리나라 국회를 ‘이 새끼들’이라며 욕한 게 돼버렸는데도 안중에 없는 듯했습니다. 지난 3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회는 기관 신뢰도에서 9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는데요.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낮으니 욕설 대상으로 지칭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대통령실 공식입장이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이른바 ‘윤핵관’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갖가지 옹호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발언 속에서 ‘바이든’은 ‘날리면’, ‘발리면’, ‘말리면’ 등으로 변모했습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부적절한 발언’이 ‘사적 발언’으로 둔갑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옹호는 “배경음을 제거하고 난 음성을 들었더니, 대통령 워딩 안의 ‘이 새끼’가 ‘이 사람’으로 들리더라”였습니다.

 

언론도 이러한 옹호 움직임에 동참했습니다. 대통령이 외교무대에서 욕설과 비속어를 쓴 건 분명 문제인데도 적지 않은 언론이 ‘비속어 논란’, ‘욕설 논란’, ‘막말 논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대놓고 비판하기 난감한 사안에 ‘논란’을 붙이는 언론의 못된 습관이 또다시 나온 거죠.

 

게다가 국민의힘에서 대통령 발언 영상을 처음 유튜브에 올린 MBC를 비난하고 나서자, 어느 언론은 ‘자막 등 글자로 먼저 정보를 주면 실제 그렇게 들리는 효과가 있다’면서 있지도 않은 ‘바베큐성 사전각인 효과’라는 용어를 공식용어인 양 기사에 썼습니다(뉴스톱 보도에 따르면, ‘각인효과’는 몬더그린 효과, 앵커링 효과 등으로 불립니다.).

 

대통령 귀국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욕설과 비속어에 대한 사과를 일절 하지 않았고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엄포성 발언만 내놨습니다. 국민의힘에 이어 대통령실까지 MBC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자, 대통령 비속어 파문 보도를 낸 MBC 기자들에게 인신공격과 신상 털기 등 이른바 ‘좌표 찍기’가 이어졌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실’이 누군가에겐 ‘논란’이 되고 ‘혐오’의 대상마저 돼버리는 현실이 서글퍼지는 요즘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언론자유’가 너무나도 쉽게 위협받는 것도 무서워지는 요즘이고요.

 

박진솔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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