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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조선일보 사설 <“민주당은 부자와 대기업 적대시 말아야”>에 대한 논평(2009.3.19)
등록 2013.09.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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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미국, 한국 그리고 조선일보
 
 
  정부가 다주택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에 이어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방침을 밝혔다.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19일 조선일보는 민주당을 향해 ‘부자정당의 길을 가야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사설 <“민주당은 부자와 대기업 적대시 말아야”>에서 민주당 정책연구소장 김효석 의원이 “민주당이 분배에만 관심 있다는 이미지는 바꿔야 하며 부자를 적대시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도 안 된다”, “민주당은 부자와 대기업을 적대시하지 않으면서 서민과 중산층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며 말문을 텄다.
  조선일보는 “민주당은 그동안 부자와 대기업에 적대적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쌓아왔다”며 민주당의 부자감세 반대, 금산분리 완화 반대 등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노무현 정권이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라 세우고 잘사는 사람에게 세금을 때려 못사는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했던 반(反)시장․반(反)기업 노선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잃고 각종 선거에서 패한 것도 “평등주의적 분배정책”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려 서민 생활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설은 “노 정권이 복지모델의 선생님으로 떠받들었던 스웨덴은 2007년 60여년간 유지해왔던 부유세를 폐지했다”면서 “돈 있는 사람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줘 국내에서 돈을 쓰도록 해야 소비가 늘고,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 경제도 살고 서민 생활도 나아진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부유세를 폐지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사설 말미에서 조선일보는 “민주당도 이제는 ‘2% 대 98%’의 망상에서 깨어나 중간으로 이동할 때가 됐다. 민주당이 지지율 10%대의 벽을 깨는 길도, 다시 한번 집권의 꿈을 꿀 수 있는 길도 거기서부터 출발이다”라며 민주당에게 ‘부자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자정당’이 민주당의 살길?
  조선일보의 사설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조선일보는 걸핏하면 참여정부와 민주당을 ‘반(反)시장․반(反)기업’으로 몰아붙이지만 이는 한마디로 소가 웃을 일이다. 오늘도 조선일보가 인용한 유럽 국가들의 과세정책, 복지정책에 비추어 보면 참여정부와 민주당은 ‘중도’ 축에도 끼일까 말까한다. 게다가 한미 FTA를 추진한 정부를 향해 ‘반(反)시장․반(反)기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면 정치선동이다.
  “노무현 정권의 ‘평등주의적 분배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려 서민 생활을 더 고단하게 만들어 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해 정권을 잃게 됐다”는 분석에 이르면 어이가 없다. 일단 수치상으로만 따지면 참여정부 시기 국민 소득은 1만불대에서 2만불로 상승했고, OECD 국가 중 경제성장률 3위였다. 경제정책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정권을 창출한 ‘일등공신’ 조선일보가 참여정부의 ‘경제성장률 하락’을 비난하는 것은 참 낯뜨거운 일이다.
  또 참여정부와 민주당이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에서 패한 이유는 ‘평등주의적 분배’ 때문이 아니라 ‘서민․중산층 정당’, ‘중도개혁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 채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기득권세력들에게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이토록 국정을 파탄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능력있는 정당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오늘 반색을 하며 인용한 김효석 의원의 발언이 바로 서민이 민주당에 정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일보, 오바마의 ‘부유세 추진’은 왜 모른 척 하나?
  걸핏하면 스웨덴의 부유세 폐지를 들어 ‘부자정책’을 합리화하는 행태도 문제다.
  조선일보가 언급한 것처럼, 2006년 선거에서 집권한 스웨덴의 우파 정부는 부유세를 폐지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우파 정권의 ‘부유세 폐지’ 사실만 언급할 뿐 스웨덴에서 부유세를 폐지한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스웨덴 국민들은 우파 정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스웨덴 정부가 부유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를 ‘국영기업 매각’, ‘사회보장 축소’로 벌충하려 한다는 사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국영기업 매각도 여의치 않다는 사실, 부유세를 폐지한 집권 중도당의 지지율이 2008년 11월 현재 24.8%에 그친 반면 사민당의 지지율은 42.3%, 좌파 블록 전체의 지지율은 54.1%에 이른다는 사실(스웨덴 통계청 정당지지도 조사) 등은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부유세를 폐지한다고 주장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부유세 폐지를 곧장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유럽 국가들이 사민주의적 전통 아래 복지정책을 시행해 왔고 그 사회보장의 수준은 ‘복지의 과잉’을 우려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복지의 과잉’은커녕 사회복지를 확충해야 할 우리 처지에서 유럽 국가들을 쫓아 ‘부자감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장 미국의 경우를 보라. 미국의 오바마는 ‘부자증세’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달 26일에 발표한 예산안과 개혁과제를 보면 ‘부유층 증세’, ‘기업 해외 수익 과세’ 등 조선일보식 표현을 빌리면 그야말로 ‘반(反)부자․반(反)기업’ 정책들이다. 오바마 정부는 연간 소득 20만달러 이상 부유층에 대한 증세 방침을 분명히 밝혔고, ‘부유세’에 대한 미국민들의 지지는 49%에 달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부자들의 ‘조세피난처(Tax haven)’를 없애기 위해 스위스은행과도 일전을 벌이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밖에도 오바마 정부는 노동조합의 가입 절차를 간소화한 ‘피고용자 자유선택법안(EFCA)’을 추진하는 등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 정부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주당, ‘조선일보의 유혹’에 넘어가면 끝이다
  극심한 경제 위기 속에서 이명박 정권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한편으로 ‘수퍼추경’을 편성해 재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지극히 정략적인 의도로 민주당을 향해 ‘부자를 위한 정책에 더 이상 딴죽 걸지 말라’, ‘한나라당과 함께 부자정당의 길을 걸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기에 우리와는 경제정책의 맥락이 전혀 다른 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여 ‘부자감세’가 대세인 양 호도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다.
  우리는 조선일보의 오늘 사설을 접하며, 조선일보가 아닌 민주당에 촉구하고 싶다.
  조선일보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다면 민주당은 ‘끝’이다. 민주당이 ‘부자들에게도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을 때 그 결과는 뻔하다. 부자들과 수구기득권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면 한나라당 ‘이중대’라는 비난 속에 존재감 없이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당장 4월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끝>
 
 
2009년 3월 19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