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은의 콜금리 인하' 관련 신문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8.13)
등록 2013.08.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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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타령'하면 경기회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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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2일 콜금리를 0.25% 인하했다. 한국은행 박승 총재는 "국제 유가 상승세가 예상보다 심각해 별도의 대책이 없으면 경제 성장세가 하반기부터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내수경기 회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금리를 인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한은의 금리인하 조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보통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조처는 고금리 등에 따라 기업이나 가계의 투자,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있을 경우에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금 기업의 투자 부진이나 가계의 소비 위축이 고금리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인하'가 효과도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설령 일시적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하더라도 물가를 인상시키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해 왔다.
그 같은 측면에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등은 '금리인하' 조처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며,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은 금리인하를 놓고 엉뚱하게 '정권의 정체성'을 거론하고 나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겨레신문은 사설 <부작용 우려되는 콜금리 인하>에서 콜금리 인하 조처가 '효과나 시기' 모두 부정적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겨레는 현재의 투자와 소비부진의 이유가 "기업들이 여유자금이 없거나 금융비용이 과다해 투자를 안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금리인하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오히려 한겨레는 금리인하로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 '부동산투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몇 달 전까지도 경제 낙관론을 펴던 한은이 갑작스럽게 '금리인하' 결정을 내린 이유도 뚜렷하지 않으며, 오히려 최근 내수가 감소세를 멈추고 나아지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겨레는 금리인하가 '물가상승'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경기를 살리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를 빌미로 그동안 어렵게 추진해오던 부동산시장 안정, 재벌개혁, 부패청산 작업 등이 무산될까 걱정"이라며 '금리인하'가 '개혁후퇴'로 이어지는 것을 단도리하고 나섰다.
경향신문도 사설 <금리인하 부작용 철저히 막아야>에서 "금리인하가 '경기부양 카드'로 실효성이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금리인하가 경기침체에 대한 제대로된 처방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경향은 오히려 "저축의욕을 떨어뜨리고 금리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더욱 줄어 소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번 조치에 따른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물가상승압력을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정책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부동산 투기가 재연되어서는 안되며, 자본의 해외 이탈과 환율이 치솟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처럼 정부의 금리인하 조처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으나, 엉뚱하게 참여정부의 '좌파적 정체성'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는 13일 사설 <한은의 금리인하 충격요법>에서 이번 조처는 "경제이론의 상식을 넘어선 일종의 충격요법"이라며 "경기부양을 위해서는 물가상승과 외화유출의 부담을 무릅쓰겠다는 뜻…그만큼 우리 경제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은 "우리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이 금리인하와 재정확대 같은 전통적인 처방으로 치유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중앙대학교 안국신 교수의 "참여정부는 좌파정권이고 '좌파적 가치의 덫'에 걸려 있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조선은 안 교수의 주장이 "정권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장기적 투자보다는 단기 수익을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릴 수밖에 없고, 정권의 정체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부자들도 지갑을 열면서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고, 부자가 돈을 쓰지 않으니 돈이 돌지 않은 경제는 빈혈 증상을 보인다는 설명"이라며 "우리경제는 병의 뿌리를 다스려야 할 단계…그것없이는 금리인하가 아니라 그 어떤 처방으로도 이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해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으로서의 '금리인하'에 대한 제대로된 분석과 대안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 <금리인하 효과가 제대로 나오려면>에서 '금리인하조치'를 환영하고 나서 다른 신문들과 차이를 보였다. 중앙은 "그동안 경제현장과 동떨어진 낙관론만 펼치던 경제당국이 비로소 경제난국을 인식했다는 상징적인 효과만으로도 이번 금리인하는 의미가 있다"며 "또 이번 금리인하로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인 가계대출과 부동산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을 다소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한편 조선일보처럼 '정부 정체성'까지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중앙일보도 '분배론'에 대한 못마땅한 태도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며, 기업가와 부자들의 '기를 살려주는 정책'을 주장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분배를 앞세우며 구시대적인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로 기업가와 가진자를 죄인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안에서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지 않는 한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경제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기업가와 가진자'들이 부당한 대우라도 받는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사실의 왜곡이다. 오히려 IMF 이후 우리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심각한 수준의 빈곤층이 늘었지만 이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의 대책이 충분치 않다. 게다가 부유층은 최소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조차 외면하고 조세저항에 나서고 있지 않은가.


각종 경제지표와는 관계없이 지금 우리 경제가 '침체'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금리인하'와 '재정확대'라는 처방을 내놓았지만 이번 대책이 실효성있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은 걱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이 해야 할 일은 경기침체 현상을 과장없이 보도하고 그 원인을 차분하게 분석해 해법을 찾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른바 '메이저신문'들의 보도는 이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기업들의 투자 부진과 가계소비의 침체가 '정권의 정체성 때문'이라거나 기업가와 가진자들을 '죄인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등의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물론 경제가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요인'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부 언론에 묻고 싶다. 경제지표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극심한 내수 침체의 이면에 '경제위기'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가계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킨 일부 언론들의 영향은 정말 없는 것인가.
또 '온실 속의 화초'로 커온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정경유착'이 사라진 환경에서 손해를 볼것이 두려워 '장기적 투자'를 외면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이 진보적인 경제논리를 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정녕 우리 메이저 언론은 최소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경제논리로 납득할만한 수준의 원인 분석과 대안을 내놓을 역량이 없는 것인가.

 


2004년 8월 13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