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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피해 구제, 이대로 괜찮나요?(끝)] ‘가짜뉴스 척결’과 ‘언론 재갈’ 사이, 시민 피해구제 자리를 묻다2021년 9년 29일 배액배상제를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가 또 다시 연기됐습니다. 여야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중재법을 비롯해 정보통신망법, 방송법, 신문법 등을 언론 및 미디어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방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달 여가 지난 11월 15일에야 첫 회의를 열어 위원장과 간사를 선임하고 앞으로 운영방안을 논의하는 등 연말까지 언론중재법 처리가 가능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언론미디어제도개선특별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18명 여야 위원 동수로 구성됐으며, 활동기간은 올해 12월 31일까지입니다.
올해 초부터 국회에서 시동을 걸기 시작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어떤 개선점도 찾지 못하고 표류한 원인은 정쟁화에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언론피해구제 실효성을 고민하기보다 ‘가짜뉴스 척결’과 ‘징벌’이란 명칭을 내세워 개정안이 ‘언론 재갈법’으로 비난받는 빌미를 줬습니다. 국민의힘은 기자 대량해고를 비롯한 언론탄압을 주도한 과거는 잊었다는 듯 갑자기 언론자유 수호자가 된 양 행세하며 생산적인 논의를 방해했습니다. 언론사업자단체와 일부 현업단체들은 시민피해구제 방안을 찾기보다 ‘최순실 보도를 못한다’, ‘봉쇄소송이 는다’는 등 논리로 법안 반대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짜뉴스 진원지는 정치권과 유튜브’라며 언론신뢰 추락의 책임을 언론중재법 개정에 나선 여당과 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여론에 돌리기도 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중재법 논란이 한창이던 7월 넷째 주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언론소송 사례 10건을 카드뉴스로 소개했습니다.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 현실화라는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려면 현실에 발을 딛고 사안을 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민언련이 소개한 보도피해 사건은 모두 일반인·자영업자·간첩조작 피해자·노동조합 등 언론의 ‘권력감시’와는 거리가 먼 사건일 뿐 아니라 소위 ‘가짜뉴스 피해’로 규정할 수 없는 사건도 있습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시도 의미없었을까
카드뉴스에서 다룬 사건 중 이번에 추진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손해배상액이 늘어날 수 있는 사건은 얼마나 될까요? 1화 <‘찐빵소녀’ 조작방송>의 경우 방송 내용이 고의적으로 조작된 정황이 명백하니 해당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4화 <KBS 보도로 병원 폐업> 사례처럼 피해가 크지만 방송사의 단순 실수인 경우 법원은 언론사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2화 <아동 성폭행 사건과 언론보도 2차 피해>와 같은 중대 사생활 침해는 배액배상 요건인 ‘허위보도’조차 아닙니다. 3화 <기사형 허위광고 사기>와 같은 허위·과장광고 피해 역시 언론사가 직접 허위광고를 의도한 것이 아니므로 배액배상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7화 <먹거리X파일>의 ‘벌꿀 아이스크림’이나 ‘대만 카스테라’ 사례처럼 아예 소송에서 이기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보도’는 언론보도가 끼칠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피해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는 완전히 의미가 없는 일이었을까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구제는 일종의 종합대책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언론의 책임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논쟁의 핵심으로 부각된 배액배상제도는 애초 언론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이는 데 핵심이 아니었고, 법안 자체도 부실했으며, 제재 수위도 언론에게 부담되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높은 지지를 보였다는 것은 ‘언론보도 피해가 워낙 크니 뭐라도 당장 하라’는 정당한 요구였습니다. 이마저 ‘언론 재갈’이라고 낙인찍는 태도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요? 언론계는 우선 시민들의 요구에 겸허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다시 추진되는 자율규제, ‘기본권 조화’ 문제로 풀어야
언론중재법에 반대해온 언론단체들은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9월 23일 7개 언론단체들이 기자회견에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것은 일견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해법이 또 다시 ‘자율규제’라는 데는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기사형 광고만 해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신문윤리위원회와 같은 자율규제부터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까지 심의기구 세 곳에서 연간 수백, 수천 건의 ‘주의’, ‘경고’ 등 제재를 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자율기구 한국ABC협회가 신문부수조작 등 부패의 온상으로 드러난 것도 얼마 전입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천부인권과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국민 기본권과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문제에 ‘신의 한 수’ 같은 해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실제 언론환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례를 축적해 연구하고, 급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이번 카드뉴스 시리즈를 마치며 민주언론시민연합 역시 앞으로의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언론피해구제 실효성 강화를 위해 언론중재법 처리 여부와 관계없이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