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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이행률 23.6%, 경기도의회 흔든 지역언론의 힘
[2025년 6월 수상자] ‘광역의원 공약 추적기’ 이연우·이나경 경기일보 기자
등록 2025.10.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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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 광역의원 공약 추적기 보도 이미지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 3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지역정치 과제는 무엇일까. 선거 때마다 뜨거운 관심을 받는 중앙정치와 달리 주민 삶과 직결되는 지역정치의 무게감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이런 문제의식 속 경기일보 ‘경기알파팀’은 경기도 광역의원 공약을 전수조사했다.

 

공약 이행률 23.6%, 기대보다 낮은 수치였다. 그런데 변화가 나타났다. 보도 2주 만에 경기도의회 홈페이지가 개편돼 공약이 세부 공개됐다. 각 정당에서는 공약 이행 실태를 공천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도 홈페이지에 의원 공약 공개를 권고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나경 기자는 이를 지켜보며 역설적으로 “하면 된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거구나” 깨달았다. 경기일보 ‘의원님, 뭐하세요? 광역의원 공약 추적기’는 충실한 권력 감시를 통해 공공정보 투명성을 강화한 사례로 평가 받으며 2025년 6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이연우·이나경 경기일보 기자를 만나 취재 뒷이야기를 들었다.

 

공약의 민낯 : 주민에겐 생존, 정치인에겐 당선용

취재 계기가 궁금하다.

이연우 : ‘경기α팀(경기알파팀)’은 부서에 상관없이 한 달간 기획기사를 취재하는 팀이다. 민선 지방자치 30주년과 5월 10일 유권자의 날을 맞아 대선에만 쏠린 관심을 지방선거로 확장해보고 싶었다. 대선후보 공약을 보는데 불현듯 광역의원 공약은 어떻게 공개돼 있는지 궁금했다. 의회 홈페이지가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볼 수 없었고,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 도서관에만 포스터로 남아 있더라. 선거정보 도서관은 시민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나. 공약 공개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사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취재를 시작했다.

 

이나경 : 도의원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3년 전 공약 이행 여부를 추적하려는데 공약이 공개돼 있지 않으니 얼마나 지켰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도의원 역할이 뭘까? 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경기도에 도의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상당하다. 심지어 도의원 스스로도 자기역할을 헷갈려 한다. 그러나 광역의원들은 지역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지역언론으로서 지역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취재에 임했다.

 

‘공약 비공개’가 왜 문제라고 생각했는가.

이연우 :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광역의원들의 사라진 약속’ 기획보도를 통해 제8대 경기도의원들의 공약 비공개 문제를 비판했다. 당시엔 인천시의회만 홈페이지를 통해 공약을 공개했다. 다행히 경기도의회는 해당 보도를 계기로 공약을 공개했다. 이번에 다시 이 주제를 다루면서 ‘경기도의회가 공약 공개를 잘 유지하고 있을까’ 확인했더니 아니더라. 게다가 인천시의회 홈페이지도 공약 공개가 중단됐다. 나아지기는커녕 후퇴한 거다.

 

공약 공개 필요성을 크게 실감한 순간은.

이나경 : 모 지역 도의원이 ‘상수원에 편의시설을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알고 보니 버튼 누르면 나오듯 10년째 반복되는 공약이더라. 해당 도의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에 자치단체장까지 선거철만 되면 들고 나오는 공약. 지역주민은 생존문제니까 공약이 나올 때마다 굳게 믿고 뽑아주는데, 정치인 입장에선 내걸면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 공약이었던 거다. 그래도 국회의원들은 공약이 공개돼 있으니 이행 여부를 평가라도 할 수 있지만 도의원은 제대로 공개돼 있지 않으니 책임조차 물을 수 없어 답답해하는 주민들이 많다.

 

이연우 : 도의원 대부분은 시의원, 구의원 같은 기초의원을 거친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전 공약을 가져오는 경우도 꽤 있다. 시의원 혹은 구의원일 때 이행한 공약을 도의원 선거에 그대로 가져오는 거다. 그런 사례를 보면서 공약 공개 필요성을 크게 실감했다.

 

‘샌드위치 신세’ 광역의원, 왜 공약은 감춰졌나

광역의원 공약이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이연우 : 몇 년 전 경기도의원을 인터뷰하는데 본인을 ‘샌드위치’라 표현하더라. 국회의원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기초의원은 동네사람이라 친밀도가 높은데 도의원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샌드위치 같은 존재라는 거다. 왜 그렇게 됐을까. 유권자 무관심이 큰 원인이다. 인천시의회와 경기도의회의 공약 공개가 사라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역의원에 대한 무관심이 공약 비공개의 근본 이유라 생각한다.

 

공약 공개 제도화는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까.

이나경 : 행정안전부가 ‘정보 공개 알림’ 시스템으로 몇 년 전부터 의원정보를 공개하려고 노력 중인데 권고만 가능할 뿐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이걸 의무화해야 한다.

 

이연우 : 공직선거법에 ‘선거관리위원회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의원들의 공약을 공개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간단하다. ‘공개할 수 있다’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바꾸면 된다. 즉 공직선거법을 개정하거나 담당주체인 선관위가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면 된다.

 

경기도의원 공약 이행률 23.6% 예상했는가.

이연우 : 생각보다 낮았다. 적어도 30%는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3년 제8대 경기도의원 공약 비공개 기획보도 당시엔 없던 정책지원관 제도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지원제도까지 갖춰진 상태에서 당연히 이행률이 더 높아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도의원 지역 맞춤형 공약 이행률은 제8대 21.0% vs 제11대 23.6%. 결과적으로 3%p 차이도 나지 않았다.

*정책지원관 : 의원 의정활동을 전문적·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경기도의회 소속 공무원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편인가.

이연우 : 이런 기사를 쓴 언론사도 없고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도 광역의원 공약은 손을 놓고 있다. 그렇다 보니 명확한 이행률을 따질 수 있는 비교 데이터 자체가 없다. 그런데 고무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충청도 지역언론에서도 광역의원 공약 이행률을 점검하는 취재에 들어갔다더라.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언론에서도 조만간 광역의원 공약 이행률 분석을 시작한다고 한다. 각 지역언론이 분석을 완료하면 경기도 공약 이행률과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나경 : 우리가 3월에 취재를 시작해 7월에 보도를 끝냈는데, 앞장서 기획보도를 하면 다른 지역으로 퍼질 수 있겠다고 기대해왔다. 바람대로 호남, 영남, 충청까지 우리 보도 취지에 공감하고 취재와 분석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와 기뻤다. 서로 다른 지역, 다른 언론사라는 걸 떠나 지역언론끼리 힘을 합쳐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유권자 무관심과 언론 외면, 제자리 이행률

공약 이행률은 왜 제자리걸음일까.

이연우 : 과거에 없던 정책지원관 제도까지 생겼다. 지원제도까지 확충됐으니 이행률이 높아져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책지원관은 말 그대로 의원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인데 사실상 의원들을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책지원관이 아무리 확충돼도 의원 스스로 입법활동에 관심 갖지 않고 공약 이행에 나서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거다. 지역의원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하고, 그에 앞서 유권자들이 꾸준한 감시가 중요한 이유다.

 

광역의원들의 입법활동 등한시도 지적됐는데.

이연우 : 광역의원에게 입법활동은 당연한 활동이다. 그런데 왜 제대로 안 되고 있을까. 앞선 답변의 연장선이지만 유권자 무관심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역의회에 관심이 없다. 국회 본회의에 어떤 법안이 상정되면 많이 보도되지만, 지역의회는 보도 빈도가 떨어진다.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지역의회 보도를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 보도를 안 해버리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광역의원부터 ‘의원’이라는 자각을 갖고 자신의 역할이 뭔지 곱씹어봤으면 한다. 수많은 플래카드 중 ‘무엇을 위한 예산을 확보했습니다’는 많아도 ‘무슨 조례를 발의했습니다’는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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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일보 이연우·이나경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그게 공약이라고요?” 확인조차 어려웠던 취재 현장

공약을 전수조사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연우 :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공약을 세부 분류했다. 이른바 ‘성적표’라 불렀는데, 전수조사가 완료됐을 때 모든 분야별 성적표를 갖게 되었다. 지역 맞춤형 공약을 3년 동안 1건도 이행하지 않은 의원도 있고, 열심히 이행한 의원도 있다. 성적표를 나열하면 굉장히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처음엔 성적표 공개가 목표였다. 하지만 공식 기준에 의해 책정한 결과가 아니다 보니 그렇게 할 순 없었다.

 

이나경 : 한정된 시간 내 많은 양의 공약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니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초조하기도 했다. ‘공약 이행 여부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지?’ 막막함도 있었다. 의원이 툭 내던진 공약의 실제 실행 주체가 어디일지 생각하며 전화를 돌려야 했다. 문의하면 대부분 모른다고 하거나 오히려 “그게 공약이라고요?”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약은?

이연우 : 얼토당토않은 공약이 기억에 남는다. 오지라 해도 무방할 지역에서 유명 연예인이 배출됐다. 그런데 해당 지역의원이 이 연예인을 위한 공연장을 짓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특성상 공연장을 지어도 사람이 가기 힘들 정도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공약이라 잊히지 않는다. 공연장 이름도 그 연예인 이름을 붙인 ‘OOO 공연장’이었다(웃음).

 

이나경 : 비슷한 사례인데, 한 지역에 어떤 예술인 문학관을 짓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 예술인은 해당 지역과 전혀 관련 없었다. 해당 지역에 전화를 해보니 거기서도 의아한 듯 되묻더라. 해당 공약을 낸 의원조차 선거철 이후 한 번도 관련 발언을 하거나 활동을 한 적이 없다.

 

“하니까 된다” 다음은 기초의원 공약 추적

보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나경 : ‘하니까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반대로 보자면 그동안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독자들 관심이 도의회와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 같다. 경기도의회가 개편됐으니 전국 광역의회도 충분히 바뀔 수 있겠구나 싶다는 희망을 봤다.

 

보도에서 아쉬운 점이나 후속보도 계획이 있다면?

이연우 : 공약 집계를 팀원들과 분담해서 했는데, 같은 파일을 보고도 수치가 달라 여러 번 다시 세야 했다. 그러다 한밤 중 카페에서 동시에 같은 숫자를 말하고 뿌듯해하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맞춰본 숫자가 지역 맞춤형 공약의 총 개수였는데 예상보다 적어 아쉬움도 컸다. 기초의원도 분석하고 싶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이번엔 빼게 돼 아쉬웠다. 후속보도가 이뤄진다면 기초의원 공약 추적기를 해보고 싶다. 곧 지방선거가 다가오는데 각 정당이 현역의원들의 공약 이행 실태를 공천에 반영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지역언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이연우 : 중앙만 따라가며 자극적인 기사들을 쓰기보다 소소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많이 쓰면 좋겠다. 그것이 지역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지역언론이 자신 지역을 가장 잘 알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주체다.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지역민들이 지역언론 보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나경 : 지역언론으로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한다. 중앙에서 다루지 못하는 세밀하고 내밀한 지역문제는 우리만 발굴할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임하다 보면 유의미한 제보가 이어지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등 기회가 생긴다. 그러면 자연스레 지역주민들의 응원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보도를 통해 문제를 드러내고 긍정적인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진심으로 해나간다면 좋은 결과도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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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에 참석한 경기일보 이나경·이연우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