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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울고 화내며 썼다”‥ 주 80시간 청년 과로사의 민낯
[2025년 11월 수상자] 쪼개기 계약 등 비정상적 노동 관행 드러낸 정소희 매일노동뉴스 기자
등록 2025.12.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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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노동뉴스는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청년 노동착취 실태를 공론화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서 일하던 26세 노동자가 지난 7월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족은 고인이 주 80시간에 달하는 극심한 과로에 시달렸다고 주장한 반면, 런던베이글뮤지엄 측은 지문인식기 오류 등을 내세워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월 20일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도 들여다보니 주 80시간에 육박하는 근로 동선이 확인된다”며 책임 회피에 일침을 가했다.

 

이 사건을 처음으로 심층 보도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매일노동뉴스 정소희 기자는 2025년 1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정 기자는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산재 은폐 정황과 비정상적 노동 관행을 드러내며 출퇴근기록 의무화 논의까지 촉발시켰다. 정 기자를 만나 취재과정을 들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주 80시간 노동’ 부정, 일관된 책임 회피

취재 계기는 무엇인가.

유족 대리인을 통해 제보가 들어왔다. 문제가 너무 많았다. 고인의 장시간 노동, 근로계약 등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런던베이글뮤지엄 측과 여러 차례 질의응답을 거쳤다.

유족은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책임 회피 등 비인간적 대응으로 이미 많은 고통에 시달린 상태였다. ‘조심스럽지만 최선을 다해 취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고인과 유족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많이 고민하며 취재하다 보니 최초 제보부터 기사 출고까지 3~4주 이상 걸렸다.

 

유족과 런던베이글뮤지엄이 11월 3일 합의했다. 이후 런던베이글뮤지엄 태도는.

합의 1주일 뒤인 11월 10일, 런던베이글뮤지엄은 2건의 보도자료를 냈다. 그중 <미디어 Q&A>의 첫 번째 질문이 “실제로 주 80시간, 일 21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는 경우가 존재하였나?”였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주 80시간, 일 21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유족과 합의하며 더 이상 고인의 근로시간에 대해 다투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인즉슨 고인의 장시간 근로에 대한 책임을 런던베이글뮤지엄도 인정했단 뜻이다. 그런데 합의 후 내보낸 보도자료엔 고인의 실명만 없을 뿐 그동안의 장시간 근로와 관련해 정면으로 책임을 부인했다.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거다.

 

기록 공개는 거부, 임원 폭언은 부인

런던베이글뮤지엄이 근태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장시간 노동 문제를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을 거다. 처음엔 고인이 사망 직전까지 근무했던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 지문 기록이 없고, 고인 사망 후 지문인식기를 설치했다고 했다. 그런데 고인 사망 전 지문인식기를 설치한 정황이 있더라.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스타그램에 인천점 오픈을 앞두고 매장 전경 사진과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거기 버젓이 지문인식기가 나와 있는 거다. 화면을 캡처해서 지적하니 돌아온 답변이 ‘고장 나서 재설치했다’였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인천점 외 다른 지점 근무기록은 남아 있을 거고, 인천점도 백화점 입점 매장이라 CCTV와 백화점 지문인식기록도 있을 거다. 기록을 내놓지 못한다는 건 문제를 너무 잘 알기에 공개를 꺼린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장시간 근로가 얼마나 관행이었으면 인천점 개점을 앞두고 근처에 숙소를 얻어줬겠나.

 

유족 측에 폭언한 임원에 대해 런던베이글뮤지엄은 “당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흔히 기자들이 ‘컨택 포인트’라고 하는데,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컨택 포인트로 지정한 사람이 유족 측 노무사에게 폭언에 가까운 말을 했던 임원이다. 해당 임원을 통해 나온 말을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니 누구와 소통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또 다른 노무 대리인도 ‘산재 아니다’, ‘과로 아니다’라며 고인의 장시간 근로를 부정하고 회피했다. 모욕적이고 충격적인 발언들도 많았지만 차마 기사엔 내보내지 못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최근 입장문부터 시작해 장시간 근로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컨택 포인트(Contact Point) : 기업이 대중과 소통하는 모든 접점

*고위급 임원은 고인 사망 2주 뒤 유족 측에 “과로사로 무리하게 (산재를) 신청한다면 진실을 알고 있는 저와 직원들이 과로사가 아님을 적극적으로 밝히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이 임원은 “(고인이) 과로사했다는 거짓에 현혹돼 직원들이 거짓협조는 하진 않을 예정이니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길 바란다. 굉장히 부도덕해 보인다”며 폭언에 가까운 말도 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

 

계약은 엉망, 기록은 조작‥청년을 소모품으로 만든 노동구조

고인의 근로계약서에서 가장 심각했던 부분은.

연장수당, 근로시간, 급여 등 기본적인 요소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 약정한 근로시간과 실제 급여 체계가 전혀 일치하지 않았고, 몇 달 단위의 ‘초단기 쪼개기 계약’을 1년 넘게 반복했다.

노무사들조차 “어떻게 이 따위 계약서를 만드냐”고 할 정도였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정상적 계약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근로시간을 은폐·축소하려는 정황은 여전한가?

그렇다. “고용노동부에서 근로감독 나온다니까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사 LBM) 본사에서 스케줄표 주 52시간 이하로 다시 조정하라고 한다”는 제보가 왔다. 지나간 근무기록까지 수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거다.

LBM은 “긴급하게 착수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조사에 성실하게 임하며 더 나은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족과 합의를 뒤집는 입장문을 내고 근로감독조사에 적발될 수 있는 부분은 직원을 시켜 없앴다. 과연 혁신 의지가 진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11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모두가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전사적 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초단기 쪼개기 계약에 대한 LBM 입장은.

노동자 탓을 한다. F&B(식음료) 업계는 진입장벽이 낮아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계속 일할 수 없단다. 오래 갈 직원을 선별하려다 보니 쪼개기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LBM 채용공고를 보면 조그맣게 ‘계약직’이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마치 정규직 채용 같다. 복지도 제공되는 것 같고 급여도 최저임금보다는 조금 높고 힙한 브랜드다. 그런 부분에 끌려 직원들이 지원한다. 막상 근무하면 노동강도가 높아 금방 그만두게 된다. 당연히 회사는 높은 퇴사율을 낮추기 위해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근무태만과 윤리의식 부족으로만 몰아간다.

오히려 회사가 쪼개기 계약으로 노동자를 높은 노동강도로 몰아넣어 지치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을 뽑아 쓰는 휴지처럼 쓰고 젊고 신선한 얼굴로 계속 갈아치우기 위한 방안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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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소희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불완전한 제도가 만든 비극, 마주한 업계의 두려움

청년 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제도는.

사용자에게 근무시간 기록 및 보관을 의무화하고 노동자가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시 지속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관행도 제한해야 한다. 현행 제도(기간제법)에선 2년 이내 10번의 계약을 체결하든 매달 쪼개기 계약을 하든 문제가 없다. 최소 계약 기간이나 갱신 횟수 제한으로 최소한의 고용 보장을 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포괄임금제다. 판례로 만들어진 임금 지급 방식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과 공짜노동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에 하루 빨리 제동을 걸어야 한다.

*포괄임금제 : 실제 근무 시간을 따져서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미리 일정액을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하는 제도로, 대법원 판례에 의해 정당성이 인정된다.

 

취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직원들과 접촉이 쉽지 않았다. 보도가 좀 나온 뒤에야 몇몇이 용기를 내긴 했지만 “신변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 “업계가 너무 좁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제과제빵업계뿐만 아니라 SNS상에서 유명한 디저트 브랜드 등 F&B(식음료) 업계가 좁다 보니, 계속 경력을 쌓고 싶어 하는 직원들은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으로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질의응답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른 언론사의 후속보도가 많았다.

파장이 클 거라 예상해 더 꼼꼼히 준비했다. 이번 사건은 참혹했다. 젊은 청년이 말도 안 되는 초장시간 노동 끝에 죽음에 이르렀다. 청년이 일하던 브랜드는 최근 언론의 호평을 많이 받던 곳이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노동 문제는 큰 관심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올해도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SPC, 쿠팡 등 대기업을 비롯한 일터에서 죽음을 맞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데 어느 순간 무감해진 건가 싶기도 하다. 이번 보도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산재 문제나 노동 문제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단기 성장의 그늘과 유족의 고통, 보도의 의미와 기자의 고민

앞으로의 취재계획은.

엑시트(투자자금 회수)를 목표로 단기간에 성장한 기업들에게 공통적으로 런던베이글뮤지엄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더라. 그런 사례를 취재 중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회사를 키운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지만, 청년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강도와 부조리한 방식을 당연한 것으로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회사가 잘못을 쇄신하고 최소한을 지키며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런던베이글뮤지엄처럼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기업이 폭삭 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이번 보도 이후 프랑스, 일본 등 외신에서도 ‘한국서 젊은 청년인 80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했다’고 보도했더라. 최소한 이렇게 부끄러운 기업은 아니었으면 하는 거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LBM은 약 2,000억 원 규모로 사모펀드 JKL파트너스에 매각되었다. 이를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엑시트라고 설명한다.

 

이번 보도의 의미는.

많이 울고 화내며 썼다. 유족에 대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대응이 충격적이라 매순간 화를 많이 냈다. 유능하다고 인정받던 직원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일하게 한 책임도 크지만, 유족에게 준 상처가 너무 크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든 임원과 책임자들이 평생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유족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매순간 너무 큰 고통을 견뎌야 했다. 고통 속에도 용기 내어 언론 앞에 섰다. 만약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성의 있게 유족을 대했다면 유족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다시 한번 얘기하지 않아도 됐을 거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유족들을 투사로 만든 거다.

 

좋은 보도란 무엇인가.

상을 받게 되면서 좋은 보도와 더불어 좋은 기자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너무 잘 울어서 “기자가 왜 이렇게 잘 우냐”는 타박도 들어봤고, “취재원에게 너무 끌려 다니는 거 아니냐”는 염려도 들었다. 그래도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취재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좁게는 고인과 유족의 명예, 이들이 받아야 할 사과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책임 있는 대응을 되찾고 싶었다. 나아가서는 더 이상 과로로 죽는 청년 없이 좀 더 이로운 방향으로 사회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꼼꼼히 취재했는데 독자들도 함께 분노하고 공감해주더라. 좋은 보도까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기자란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기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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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노동뉴스 ‘런던베이글뮤지엄 과로사 의혹 연속보도’가 2025년 11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