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속으로] EBS판 자기계발서가 된 ‘공부 못하는 아이’, 공부 잘 하는 방법만 제시해
등록 2015.04.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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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

EBS판 자기계발서가 된 ‘공부 못하는 아이’, 

공부 잘 하는 방법만 제시해


김상경 방송모니터위원회 회원





“환경을 탓하기 전에 너의 행동을 먼저 바꿔라” 

서점가를 넘어 이젠 방송가까지 강타하고 있는 자기계발의 논리는 위 문장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계발 논리는 특정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 구조의 변화보다는 개인의 행동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지엽적이며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실제 기업이나 교육의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와 제도로 힘들어하는 개인의 삶에 자기계발 논리가 얼마나 유용했는지도 사실 미지수다. 그럼에도 자기계발서 논리는 글을 읽거나 방송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문제가 곧 해결될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강점이 있다. 때문에 자기계발서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여전히 상승세다. 


EBS는 신년 기획특집으로 <다큐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이하 ‘공부 못하는 아이’)를 5부작으로 구성해 1월 5일부터 13일까지 방송했다. 다큐를 관통하는 주제는 공부를 잘하려면 ‘좋은 지능이 아닌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부모는 자식의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큐는 1부에 등장하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5부에서 제작진이 준비한 마음교육을 받고 집중력과 성적이 향상되는 변화를 보여주는 수미쌍관 구조로 ‘주제’를 증명한다. 


1부, 1등조차 불안하게 만드는 입시경쟁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드러내

1부 ‘공부 상처’는 2014년 제작진이 주최한 <공부 못하는 아이로 산다는 것은> 공모전에 응모한 학생들 인터뷰와 출품작을 교차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의 출품작은 성적순으로 개개인이 평가되는 ‘경쟁교육 체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출품작 <랭킹게임>에서는 “학교에선 암묵적으로 계급이 존재한다. 상위권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특별과외와 공부방. 그런 상위권에 진입하고자 애쓰는 중위권 아이들까지”라며 성적을 통해 매겨지는 학내 ‘계급’문제를 전한다. 또 다른 출품작 <명찰>에서는 “깔창, 저의 다른 이름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깔창’이라는 명찰을 보여준다. 여기서 깔창은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성적을 깔아주는 역할’이라는 의미한다. 


다큐에 나오는 학생 인터뷰는 시험점수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경쟁교육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전교 1등 학생은 “성적이 내려가면 부끄럽고 인생 끝난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하고, 또 다른 학생은 공부를 잘해 외고에 갔지만 그곳에서 1등을 못해 결과적으로 공부 못하는 아이가 돼버렸다고 한탄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는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아이가 공부를 못하게 되는 원인에 대해서도 짚어주었다. 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비교와 경쟁의 부담 속에서…공부가 싫어져서 안 하는 아이, 공부를 거부하는 아이가 현재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로 취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자신의 본능에 보복하는 거에요”라고 지적했다. 또한 “대학만 아니라면 사회적인 잣대만 아니라면 애들 마음대로 키웠으면 좋겠죠. 어떤 엄마가 이렇게 학원 보내서 막… 우리나라가 사실 대학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나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는 학부모의 한탄도 담았다. 이처럼 1부는 현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공부 스트레스의 원인이 입시경쟁교육제도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5부, 마음이 긍정적이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 통해 입증

그러나 ‘공부 못하는 아이’는 2부에서부터 공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솔루션 프로그램으로 변화한다. 마음을 방치면 공부도 망친다는 설명부터 시작해서 정서적 안정과 강점 계발 등을 통해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변화할 수 있다는 주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특히 5부 ‘마음이 자라는 180일’은 학생이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되는지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강점 생각하기’ 훈련을 통해 시험공부 이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며 긍정적인 마음을 형성해 나갔다. 자녀와 함께 실험에 참가한 부모 역시 아이의 강점을 함께 찾아보고, 시험점수 이외의 주제로 대화하는 등 부모가 아이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 결과적으로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성적은 조금씩 올랐고, 표정도 밝아졌다. 다큐에 등장하는 전문가는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강점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 입학시험 성적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공부가 자신의 강점이 아닌 학생들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솔루션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생각하고 찾은 학생들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가 입시공부에 열중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이 어렵게 알게 된 자신의 강점을 살리는 것은 현 교육과 사회제도 속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실제 1부에서 영상 제작자가 꿈이라고 말한 학생은 5부에서 “‘영상을 하려면 넌 지금 영상을 그만둬야 한다’ 얼마나 모순이냐고요”라고 하소연한다. 


자기계발 논리의 맹점에 빠진 제작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공부 상처는 반복됨을 외면

EBS <다큐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는 1부에서 현 경쟁교육시스템의 문제를 모두 드러냈지만, 정작 ‘2부 마음을 방치면 공부도 망친다’, ‘3부 성적표를 뛰어넘는 성공 비밀’, ‘4부.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5부 마음이 자라는 180일’에서는 공부 잘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솔루션이 된다. 시스템의 문제를 제기해놓고, 정작 문제 있는 시스템에 잘 순응할 수 있는 방법만을 알려주는 데 그친 셈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극심한 학력사회와 교육제도 속에서는 결국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매한가지일 것이라는 점은 애써 외면한다.


실제 다큐프라임 이은정 CP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학벌 지상주의인) 우리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사회 환원적인 이야기는 공허할 수 있잖아요. 지금 당장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불가능해 보일 정도인 학벌 지상주의 사회와 교육제도를 개선하자는 선언적 다큐보다는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당장 필요한 내용을 전하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의도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EBS 제작진이 놓친 명제는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공허해질까봐 이야기하지 않은 ‘학벌 지상주의’가 잉태한 것이 바로 입시경쟁 교육 시스템이고, 이 시스템 하에서 다큐에 등장한 학생들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규정됐다. 아무리 학생과 학부모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공부 상처’는 반복된다. 애써 찾은 긍정적인 마음도 오래가기 힘들다. 금방 바뀌지 않아 공허할지도 모를 ‘교육 시스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또한 교육방송 EBS의 의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