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과 나] 그리운 얼굴들, 그대들이 모조리 보고프이
등록 2015.01.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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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과 나]

그리운 얼굴들, 그대들이 모조리 보고프이



전경일 회원

원고를 하나 쓰라는 연락을 받고 무턱대고 그러자 했는데 제목이 ‘민언련과 나’라는 소리에 ‘어쿠’ 싶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정함 복판에 부정한 언론이 있었고, 그에 맞서 삼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흔들림 없이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땀방울로 지켜온 민주언론운동이 아로새겨진 민언련이라는 큰 이름과 변두리 인생을 살아온 ‘나’는 결코 격이 맞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여 제목을 조금 바꿉니다. ‘민언련 영화분과 민씨네와 나’로.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졌던 이유, 영화분과 민씨네


사실 이것도 부담스러운 것은 처음 언론운동에 열의가 있어서 활동을 했던 것이 아니고 그냥 영화보고 수다 떠는 것에 취해서 발을 들여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뭇한 기억으로는 1992년 어느 비 오는 여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대문 아현 시장통을 지나 허름한 건물 2층 언협 사무실에 처음 갔던 날이지요. 그 뒤로 한 사오 년간은 매주 금요일이 기다려질 만큼, 제겐 살아가는 데 작은 낙이었습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제3세계 영화들을 볼 수 있었고, 왠지 비슷한 생각들을 가졌을 것 같은 동질감 속에 만나는 사람들이 좋았고, 점점 담뿍 정이 들었지요.


언제 어디에서 만나도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모임


그리고 왜 그렇게 됐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정기모임이 없어지면서 다들 점점 발길이 뜸해지고 이제는 어르신들 장례식장이나 송년회 자리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 발걸음이 뜸하게 된 핑계를 하나 대라면, 먹고사는 문제로 10년 전에 멀리 깡촌으로 터전을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끈이 이십 년 넘게 이어져 오는 것은 그 당시 영화분과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였던 도타운 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자리를 함께해도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모임이 그리 많지 않지요. 제겐 삼십 년이 된 학교 동창회도, 마음의 고향같이 다니던 교회도 이와 같지 않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1년에 한 번 겨우 볼까 말까 해도 민언련 전체 행사가 있는 자리면 영화분과가 가장 많은 수로 자리를 메우는 걸 보면 다른 분과원도 그 시절을 그리워함을 알 수 있지요.


지난 연말 30주년 행사에는 이래저래 함께 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리운 민씨네 식구들

하여, 세월이 갈수록 점점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이 자리를 빌려 붙잡아 봅니다.


영화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으신 우리들의 영원한 반장 이주호 선생님, 항상 새색시 같더니 어느새 곱게 늙어버린 낙수 누님,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는 명순 누님, 똑똑한데 겸손하기까지 한 경실 선배, 보기와 다르게(^^)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덕호 선배, 돈 안 되는 일인데도 즐거움으로 청춘을 다 바친 우리 전미희 선수, 항상 새로운 뭔가를 찾아가는 영애와 반듯한 성문 씨, 우리 큰딸과 동갑이라 엄청 컸을 희상이, 항상 소리 없이 자리를 지키는 재영이와 웬만한 세상일에는 꺾이지 않을 만큼 단단한 유나, 분과에 가을날 고독을 흩뿌리고 다녔던 해부, 영화에 꽂혀서 시집도 안 가고 있는 우리 민경이, 큰 키에 허허실실 사람 좋은 웃음을 잃지 않던 종관이,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포스로 첫인상을 남겼던 윤실이, 역시 영화판에서 잔뼈를 굵게 하고 있는 날렵한 수진이, 다방면에 재능을 가졌던 은애와 사람 진국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남석이, 이렇게 말을 잘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을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식이, 그리고 기억이 쇠잔하여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한 민씨네 식구들.


새해 벽두, 그대들이 모조리 보고프이….


민언련 사무국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젊음을 사르는 사무국의 청춘들, 선봉에서 시린 바람을 안고 민언련 수레바퀴를 굴리는 그 어깨들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줄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각 분과를 지나간,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회원들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언론이 내릴 수 없는 깃발일진데 그 깃발이 세찬 바람에 흔들림 없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때 그 큰 나무 그늘 한쪽 귀퉁이에서 옷깃을 여밀 수 있는 것이 한편으로 더없이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큰 위로가 됩니다. 사무국 여러분, 새로운 한해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