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_
고 성유보 선생 11주기, 올해부터 개별 추모로 뜻을 기립니다안녕하세요. 긴 연휴를 앞두고 회원님들에게 인사 올립니다. 아무쪼록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며 충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연휴 기간 중 민언련과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진 고 성유보 선생의 기일이 돌아옵니다. 바로 10월 8일입니다. ‘큰 숲을 이룬다’는 뜻을 가진 ‘이룰태림’으로 불린 성유보 선생은 2014년 10월 8일 만71세에 숙환으로 별세할 때까지 언론인이자 언론운동가로, 사회운동가로, 통일운동가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19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성유보 선생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우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강제해직됐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과 동아일보 사측의 탄압으로 쫓겨난 동아일보 기자, 동아방송 PD·아나운서 등 150여명은 그해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습니다.
1984년 민언련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당시 초대 사무국장으로 부임해 <말>지 창간을 주도하며 본격적인 언론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으로 ‘87년 6월항쟁’을 이끌고,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 등을 지내며 국민주 신문 한겨레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1991년 한겨레 논설위원 퇴임 후 다시 언론운동계로 돌아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언론개혁운동에 매진했고, 희망래일 이사장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화통일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2003년 방송위원회 상임으로도 활동하였습니다.
민언련과 언론·통일단체들은 성유보특별상을 제정해 그 뜻을 계승하며 매년 기일마다 마석모란공원 묘역을 찾아 민주화정신을 기려왔습니다. 지난해 10주기 추모식을 마치며 선생의 뜻을 기리는 행사는 개별 추모로 전환해 올해부터는 공동 추모행사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10월 8일 선생의 뜻을 기릴 분들은 개별로 묘역을 찾아주시거나 마음으로 추모의 뜻을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성유보 선생이 잠든 곳은 마석모란공원 묘역번호 ‘특3 818’입니다. 묘역을 찾기 어려울 경우 현장 관리실(031-594-6362)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 [민언련 6주기 추모영상] https://youtu.be/nalHCWoDkV4?si=ixZMW3cBKJJ3Tplx
☞ [뉴스타파 : 참언론인 성유보 선생의 마지막 육성]
https://youtu.be/stJLteTSrAQ?si=-ht3HzVbPJf9zM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