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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분이 만든 집요한 외곽취재, ‘건진법사 게이트’ 단독보도 나왔다
[2025년 5월 수상자] ‘건진법사 게이트’ 이자연 JTBC 기자
등록 2025.10.22 14:05
조회 378

윤석열 정권은 출범 초부터 천공, 건진법사 등 무속 비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건진법사 전성배 씨는 2022년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구성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윤석열캠프) 산하 네트워크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며 불법 대선캠프를 운영한 것으로 지목됐다. 대선 TV토론에 나온 윤석열 후보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사람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했던 전 씨가 JTBC 단독보도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건진법사 게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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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건진법사 게이트’ 보도 이미지

JTBC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방선거 공천개입 의혹 제기를 시작으로 전성배 씨가 인사청탁과 금전수수 등 전방위 정치브로커로 활동하며 윤석열 정권 비선실세 노릇을 해왔다고 폭로했다. 선거 후보를 비롯해 검·경, 대기업 임원까지 전 씨에게 청탁하면 공천과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통일교 측이 현안 해결 차 전 씨를 통해 김건희 씨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백 등 고가선물을 전달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김건희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모친 최은순 씨와 전 씨 사이 연락이 오간 정황, 전 씨 은신처에서 나온 5천만 원 관봉권 등도 세상에 알렸다.

 

민간인의 불법 국정개입과 청탁 문제를 정조준하며 수개월간 단독보도를 이어온 JTBC는 마침내 8월 21일 전성배 씨와 단독 인터뷰까지 성사시켰다. 끈질긴 추적으로 ‘건진법사 게이트’ 실체를 밝혀내 2025년 5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은 이자연 JTBC 기자를 만났다.

 

‘통일교 신자냐’ 나올 정도로 취재

‘건진법사’ 전성배를 취재하게 된 시작은?

처음 취재할 때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이야기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첫 보도를 준비할 때 선배 기자가 가져온 단초는 ‘건진법사 공천청탁 의혹’이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이 공천을 청탁하자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윤한홍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화했다는 내용이다. 공천청탁만으로도 중대한 사안이었다. 핵심 인물이 전 씨였던 만큼 그의 주변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는데, 수소문 끝에 만난 취재원을 통해 “공천청탁 수사과정에서 목걸이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은 김건희 씨로 보이며, 통일교 2인자가 얽혀 있다”는 전언을 들었다. 통일교와 전 씨 관계를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때 들은 ‘한 줄’이었다.

 

김건희 씨 뇌물로 나온 목걸이가 2개인데.

많이들 헷갈려서 늘 설명하는데 통일교에서 준 목걸이는 그라프 목걸이이고, 서희건설에서 준 목걸이는 나토 순방에서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반클리프 아펠이다. 목걸이만 있는 게 아니다. 명품백, 브로치, 시계 등 건네진 고가품이 다양하다. JTBC가 발굴한 것은 통일교가 준 그라프 목걸이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취재해, 올해 4월 처음 보도했다. 나토 순방 목걸이는 실물이 공개됐지만 누가 준 것인지 몰랐다. 그라프 목걸이는 김건희 씨가 하고 나온 적이 없다. 그래서 실물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통일교가 줬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통일교 취재가 어려웠을 텐데.

어려움은 어디나 비슷하다. 종교집단이란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단서를 모아 정보를 정리해나가는 과정은 다르지 않다. 통일교 내부 자료를 많이 보도하다 보니, 다른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취재팀 기자 중 통일교 신자가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발로 뛰며 치열하게 취재했다. 현장을 찾아가 누구든 만나려 했고, A에서 들은 이야기를 B에서 확인하고, C에서 확보한 자료를 D에서 맞춰가며 준비했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통일교는 승계과정에서 권력다툼이 있었고 크게 세 갈래의 분파가 존재한다. A에서 제보가 들어오면 그 자체로는 단편적인 단서일 뿐이지만, 이해관계를 세심히 파악해 B에 접근하면 새로운 정보가 열렸다. 또 C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 접근하면 추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단서를 조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곧 취재였다.

 

통일교는 ‘로비’만 하고 얻은 게 없는 셈 아닌가.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만남 등 일부 성사된 것도 있지만, 통일교가 원했던 YTN 인수나 메콩강 개발사업 등 굵직한 청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교 내부에서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전성배 씨에게 직접 청탁한 인물)이 나쁜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청탁금지법의 경우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행위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판단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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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이자연 기자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집요한 외곽취재로 만들어 낸 단독보도

건진법사 취재팀은 어떻게 구성됐나.

사안이 워낙 많아져서 잠시 추가인력이 합류한 적도 있지만, 이번에 수상한 기자들이 초기부터 함께했다. 언론사 대부분 특검 관련 사안은 법조팀에서 일괄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JTBC는 특검마다 팀이 다르게 움직인다. 건진법사-통일교 게이트는 사회부가 초반부터 보도해왔기에 남부지검 수사부터 김건희 특검 수사까지 취재를 도맡고 있다.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의 다른 사안은 법조팀이 맡고, 채 해병 특검은 1보를 했던 정치부에서 이어가고 있다.

 

특검 출범 이후 수사 진척이 빨라졌는데.

사건 전담 여부와 인력 때문이라고 본다. 남부지검은 가상자산을 다루는 수사팀에서 맡고 있어 인력도 적고 다른 일도 많았다. 건진법사 사안까지 병행하다 보니 속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나름대로 수사를 잘해왔다고 본다. 특검은 이 사건만 전담하라고 만든 팀이기도 하고, 남부지검 수사팀 일부도 특검에서 함께하고 있다. 빠른 건 당연하다.

 

JTBC 검찰발 보도가 타사보다 깊이가 있던데.

많은 분들이 기자들의 취재방식을 오해하는데 출입처가 법조라면 검사나 수사관을, 정치라면 의원이나 보좌진을 자주 만나 친분을 쌓고 정보를 얻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다. 물론 그런 방식의 취재도 있고 의미가 없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이고 중요한 내용은 대부분 ‘외곽 취재’에서 나온다. 검찰이 ‘통일교에서 6천만원대 목걸이가 나왔다’라고 기자에게 흘려주는 일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외곽에서 끈질기게 발품을 팔아야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024년부터 꾸준히 외곽취재로 자료를 쌓아놓은 덕분에 검찰 브리핑에서 “누구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정도만 언급해도 빠르고 자세하게 보도가 가능했다.

 

인맥과 말솜씨로 권력을 휘어잡은 전성배

전성배 씨를 평가한다면.

남부지검에서 정치자금법과 부정청탁법 위반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공천청탁 수사인 만큼 전성배 씨를 정치브로커로 보고 취재했다.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과 가까웠다는 타사 보도도 있고, 2013년 이후 김건희 씨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고문일 때 기업후원 유치활동을 많이 했다고 하니, 전성배 씨가 정·재계에 줄을 대기 시작한 지는 오래된 듯하다. 사법, 정치계 인맥도 많이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윤 전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알려지며 전 씨는 브로커로서 더욱 세력이 커졌다. 대대적으로 대통령실에 줄을 댈 수 있는 사람이란 홍보가 된 셈이니 말이다.

 

전성배 씨는 주변에서 ‘호사가’로 통한다. 한번 입을 열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고, 이야기가 흥미로워 듣는 이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고 한다. 공천을 앞두고 불안한 정치인으로서는 그의 시원하고 직설적인 분석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조언뿐 아니라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하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말솜씨만 좋은 것이 아니라 입이 거칠기로도 유명하다. 마치 역술인이 점 보러 온 사람을 하대하며 기선을 제압하듯 대화 주도권을 쥔다고 한다. 이런 화법과 태도가 사람을 휘어잡고 결국 빠져들게 한 건 아닐까 싶다.

 

공천개입 등 의혹을 받는 명태균 씨까지 정치브로커가 많나.

호사가라는 점에서 전성배 씨와 명태균 씨가 비슷하긴 하다. 전성배 씨는 본인을 중심 브로커라고 생각하던데 둘 말고도 더 있을 거다. 자신을 브로커라 규정하진 않지만 인맥을 활용해 자리를 연결해주고 돈을 주고받는 일들은 있다고 본다.

 

전 씨가 김건희 집안의 정치적 멘토라는 주장도 있던데.

2022년 논란 이후 김건희 씨와 표면적으로 거리를 좀 둔 것으로 보이는데, 최은순 씨와는 상당히 긴밀하게 연락을 지속했다. 김건희 모녀와 친분을 바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알게 된 것이고,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조언을 하면서 연을 이어왔다. 김건희 집안의 정치적 멘토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공분’이 우리를 움직였다

앞으로 수사를 전망한다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키맨’의 입이 열려야 한다. 나토 순방 목걸이도 서희건설의 입이 열려서 단번에 풀리지 않았나. 전성배 씨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압수수색을 열심히 해도 작은 목걸이를 찾긴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핵심 인물의 입이 열리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수 개월간 취재를 이어온 원동력은.

공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나” 하는 분노가 우리를 움직였다. 늦은 밤이라도 전화 한 통 더 돌리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한 명이라도 더 만났다. 화가 나는 일이다 보니 더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 기사가 나왔다.

 

또 다른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흐름이다. 시작은 건진법사-윤한홍 의원의 공천청탁 보도였지만 통일교로 이어졌고, 통일교 그라프 목걸이에서 서희건설 반클리프 아펠(나토 순방) 목걸이로 확장됐다. 이어 통일교에서 권성동 의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더니,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원정도박이 튀어나왔다. 새로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보도도 자연스럽게 확장됐고 흐름 속에서 취재를 멈출 수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보도’란.

힘 있는 곳을 감시하고 힘없는 사람을 조명하는 것이 좋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보도는 단순하고 직관적이고 간결하다. 오늘 수상한 다른 언론사 보도도 인상 깊게 봤다. 한겨레 ‘암장’은 ‘이주 노동자의 죽음은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로, 한국일보 ‘전광훈 유니버스’는 ‘지지자들이 낸 돈이 결국 다 전광훈 세력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로 아주 간결하다. 우리 보도도 ‘통일교가 현안 해결을 위해 김건희 씨에게 목걸이를 주려 했다’로 쉽고 직관적이다. 이처럼 좋은 보도는 힘 있는 곳은 감시하고 힘없는 곳을 비추며, 직관적이고 간결하다.

 

기자로서 느끼는 좋은 보도는 “이 기사를 마무리하면 이제 일주일은 놀아도 되겠다” 싶은 기사다. 그런데 또 다음 날이 되면 새로운 사실이 끊임없이 나오다 보니 쉬지 못한다. 취재를 해야 할 것 같고, 단독보도를 써야 할 것 같고. 이 정도면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어떤 것, 그게 바로 좋은 보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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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5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시상식에 참석한 JTBC 양빈현·김영민·이자연 기자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