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불법적 ‘기사 위장 광고’ 근절할 제재 규정을 마련하자
등록 2019.11.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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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불신과 저널리즘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목되던 ‘기사 위장 광고’의 폐해가 최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보도로 재차 확인됐다. ‘기사형 광고’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이하 자율심의기구)의 공식 정의에 따르면 “기사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 광고”인데, 기사로 오인될 수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광고로 허용은 하지만 폐해를 줄이기 위해 자율심의 규정에서는 기사가 아니라 광고임을 분명히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자율심의기구의 심의 규정마저 일상적으로 위반하면서 ‘기사형 광고’를 넘어서서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남발하고 있다. 독자들은 광고를 보고도 버젓한 기사인줄 알고 속고 있으나 자율심의기구의 제재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고 여타 관련 법에도 처벌 조항이 없다. 법안의 허술한 틈새를 악용하여 기사로 위장한 ‘독자기만 광고’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더욱 조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매일 보는 수많은 기사가 사실은 광고였다니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1~6월) 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심의에서 경고 및 주의 처분을 받은 사례는 조선일보가 무려 551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경제가 415건, 매일경제가 376건으로 뒤를 이었다. 조선일보의 경우 하루 3건 꼴로 ‘기사형 광고’ 심의 규정 위반으로 제제를 받은 셈이다. 제재를 받는 ‘기사형 광고’는 누가 봐도 심한 경우, 즉 ‘기사형 광고’ 중에서도 아예 광고 표기가 없거나 심지어 작성 기자의 이름까지 달아 마치 기자가 직접 취재해 작성한 일반적인 기명 기사처럼 위장한 것이다. 실제로 독자가 광고임을 알아볼 수 없는 기만적 ‘기사형 광고’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은 매일 수없이 많은 ‘기사를 가장한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건강기능식품 회사 ‘씨스팡’의 제품 홍보 기사를 올해 1년 내내 50여 건이나 실었는데 그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그렇다보니 신문사가 같은 상품을 “일교차 큰 봄철”에도, “설연휴”에도, “심근경색 발병률 높은 겨울철”에도, “피부 속 침투한 미세먼지”에도 복용해야 하는 식품으로 적극 추천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펼쳐졌다. 뉴스타파가 조사한 올해 상반기 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제재 건수 중 이처럼 동일한 상품이 여러 번 반복해 게재된 사례가 최소 348건, 즉 348개 상품이 무려 1,439건의 ‘기사형 광고’로 홍보됐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씨스팡’ 사례처럼 같은 매체에서 여러 번에 걸쳐 실은 경우도 634건에 이른다.

 

독자 속이는 광고로 매출액 상승? 더 이상은 안 된다

이러한 ‘기사형 광고’의 은밀한 뒷거래 정황은 올해 초 뉴스타파가 보도했던 ‘로비스트 박수환 문자’에서 일부 드러난 바 있다. 2015년 4월 4일, 파리바게뜨가 바게트빵 3종류를 출시했다는 내용의 1단짜리 짧은 ‘기사’를 조선일보가 냈는데, 홍보대행사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 박수환 씨가 직원과 나눈 문자 메시지 대화에는 그 기사가 파리바게뜨 모기업 SPC이 조선일보에 무려 1억 원을 주고 산 ‘광고’였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박수환 씨는 “단신 하나에 1억씩 주고 사네요”라고 말했다. 고작 1단짜리 짧은 기사가 1억 원이라면 독자를 속이는 ‘기사형 광고’가 사실상 신문사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신문 구독자가 매년 감소하고 지면 신문 시장 자체가 사양 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증가하거나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신문들이 ‘기사형 광고’ 수준을 넘어, 아예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파는 비정상적인 영업으로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보수 정권의 ‘날치기’로 사라진 처벌 규정, 다시 만들자

이와 같은 기형적, 반저널리즘적 행태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기는 하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물론, 식품위생법 등 관련법들도 모두 기사와 광고를 혼동케 하는 일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처벌 규정은 없다. 그나마 신문법에 있던 ‘2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조항은 2009년, 이른바 ‘미디어법 날치기 사태’ 당시 감쪽같이 사라졌다. ‘미디어법’으로 불리는 것 중 하나인 신문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 등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들이 처벌 조항을 지워버린 것이다. ‘미디어법’이 조중동의 방송 겸영 허용이 지상 목표였던 점을 감안할 때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조중동에 특혜를 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법을 난도질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기사형 광고’ 제재가 논의되기는 했으나 신문협회는 “기사형 광고가 신문사의 신규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신문사 영업권과 생존권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매번 극렬히 반발했다. 독자를 기만하는 ‘기사위장 광고’가 신문사들의 ‘생존권’이라고 우긴다면 더 이상 신문사들은 ‘언론’이기를 포기하겠다는 자기 고백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만’은 또 다른 ‘기만’을 낳을 뿐이다.

 

언론계 광고 시장 전반이 혼탁…시민들만 피해 본다

언론계 광고 시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 체계와 사업자들의 여러 탈법적 행위로 혼탁해진 지 오래됐다. 2015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밝혀낸 ‘MBN 광고영업일지’는 ‘뉴스 앵커와의 스튜디오 인터뷰’까지 액수를 측정해 매매하고 무차별적 영업으로 협찬을 받아놓고 전혀 ‘협찬’이라 고지하지도 않으며,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 중인 상품을 같은 시간대에 교양 프로그램에서 ‘연계’하여 소개하는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들의 광고 백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 있다. 최근 뉴스타파가 보도하고 있는 신문사들의 ‘기사 위장 광고’ 행태도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다. 미디어 이용자에게 물건을 팔고자 하는 광고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정보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 광고도 개혁 필요, ‘기만 광고’ 퇴출 위한 조치에 나서야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기업이나 사업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정부 기관들과 언론 사이에서도 부적절한 광고 매매가 벌어지고 있다. 광고 대행사에 정부 홍보·광고를 외주화하는 이른바 ‘턴키 계약’이다. 정부 정책 홍보가 방송 프로그램에 간접 광고처럼 교묘히 삽입된 사례가 많다. 뉴스타파 보도에 의하면 특정 신문사가 광고 대행사를 만들어 그 대행사가 정부 홍보·광고로 돈을 받아 홍보 기사를 자기 신문사에 싣도록 하고, 다시 그 실적을 정부 기관에 보고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도 지적된 지 오래됐으나 기관들은 광고 대행사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다. 민주 사회 공론장의 기본 토대인 언론이 광고를 기사로 위장하여 국민과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을 막아야 할 정부기관이 오히려 편승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기사인지 광고인지 그 구분조차 혼란스럽게 하는 지금의 실태는 언론사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할 정도로 낯부끄러운 작태다. 언론에 대한 법적 제재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언론으로서의 금도를 어긴다면 타율의 칼날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기사 위장 광고’는 언론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어 오히려 언론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더 늦지 않게 ‘기사위장 광고’ 등 탈법적 광고 영업을 막기 위한 법 제·개정 등 실질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끝>

 

2019년 11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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