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2023)_

패악과의 단절, 그리고 지속가능한 로드맵을 세워야 할 때

공영방송 정상화의 길
등록 2017.08.28 17:19
조회 290

정상화란 무엇인가?

 

전국언론노동조합과 200여 시민단체가 지난 25일 청계광장에서 KBS와 MBC 정상화 시민행동 집회를 가졌으며, 소속 기자·PD 등은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영화 ‘공범자’는 개봉 11일 만에 14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이제 공영방송의 문제는 국민 모두의 관심 사항이 되었다. 왜 이토록 공영방송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상처로 남게 되었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망가진 MBC와 KBS의 모습은 공영방송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공영방송이 정말 필요한가?’ ‘권력의 충복들이 자리 나눠 먹기 하는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어떻게 무너진 저널리즘을 복원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과거 정권의 흔적 지우기나 새 정권의 정책 지향에 부합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급변하는 시청각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역할을 정의하고, 그에 부합하는 지배구조를 제도화하며, 이를 위해서 선행적으로 지난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의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124호-언론포커스-01.jpg
△ 8월 25일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돌마고 불금파티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상을 밝히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전국언론노조)

 

정상화의 세 방향

 

먼저, 공영방송의 위기는 2000년대 초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상업적 공영방송’의 모습을 가진 MBC, 공공재원이 매우 미약한 KBS의 불안정한 모습은 다채널 디지털 융합 미디어 환경에서 그 존재적 가치가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익성’ ‘공영성’이란 설득력 없는 개념으로는 더 이상 공영방송의 존립 근간을 마련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시민이 배제된 국가 주도, 공권력 주도의 공영방송에 대해 시민들은 더 이상 그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철학과 기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치사회에 귀속되어 정치논리에 좌우되었던 공영방송을 시민사회로 넘겨야 할 때가 되었다. ‘공공 서비스 방송’ 혹은 ‘공공 시청각 서비스 플랫폼’으로서의 재정립을 통해 개방과 소통이 이뤄지는 공영방송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가치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영방송이 공공 시청각 서비스 플랫폼으로 재정립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사회 안에서 권력의 나눠 먹기식 사장과 이사 선임 관행을 혁신해서 임명권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2000년 이후 여‧야 합의로 인해 법적 근거도 없이 관행이 돼온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추천 그리고 권력의 낙하산 사장 임명 관행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과잉 정치화를 해소하는 방식으로는 독일 ZDF처럼 77인의 사회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방송위원(Fernsehrat)’, BBC처럼 13인의 실무 전문가와 각 지역 대표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BBC이사회(BBC board)’ 프랑스 텔레비전처럼 정부 추천, 프랑스 상하원 추천, 시청각 최고위원회(CSA) 추천, 사원대표 등 15인의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행정 위원회(Le Conseil d’administration)’ 의 사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장 임명에 있어서는 ‘국민사장추천단’을 구성하여 공영방송 사장 후보들에 대해 검증하고, 복수로 이사회에 추천하여 임명토록 함으로써 국민의 인정을 받는 사장 임명제도의 정착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나타난 공영방송 패악의 정점에는 항시 권력의 낙하산으로 임명된 사장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 향후 어떤 권력이 들어와도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지배구조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124호-언론포커스_02.jpg
△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해외 사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77인의 사회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독일의 ‘방송위원(Fernsehrat)’(왼쪽)과 정부 추천, 상하원 추천, 시청각 최고위원회(CSA), 사원대표 등 15인의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프랑스의 ‘행정 위원회(Le Conseil d’administration)’(오른쪽). 

 

셋째는 지난 정부의 패악을 청산하는 일이다. 근대 인권사상이 출현하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천부인권적 보편적 권리로 명시한 것 중의 하나가 표현의 자유다. 1789년 인권선언(11조)은 “생각 및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가치 있는 권리 중의 하나이다.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자유를 외치다 수백 명이 징계를 받고, 쫓겨나고, 해고되는 언론 참극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없었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서 잘못된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청산하려 한다. 전국언론노조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언론장악을 위해 부역한 언론부역자 명단을 발표하고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고 있다. 불행한 언론 역사의 청산은 언론계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과제로 남아 있다.

 

현대사회의 민주적 정체를 설명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미디어 민주주의’다. 모든 민주적 담론의 생산, 정치적 논쟁은 미디어를 통해서 그리고 미디어에 의해서 실현된다. 미디어는 매체이자 소통망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미디어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오늘날 공영방송을 되살리고, 정상화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되살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건강하기 지키는 처방이 될 것이다. 

 

박태순(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미디어로드 소장)

 

*언론포커스는?
언론포커스는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회원들을 찾아갑니다. 언론계 이슈를 다루면서 현실진단과 더불어 언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언론포커스'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고승우(민언련 이사장), 김동민(단국대 외래교수),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평호(단국대 교수),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박태순(민언련 정책위원), 신태섭(동의대 교수),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이용성(한서대 교수),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정환(미디어오늘 대표),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 최진봉(성공회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