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조선일보 지원 받아 지상파 저격한 서울대 교수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등록 2019.02.14 09:37
조회 998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상파 방송 시사 프로그램의 정부 비판성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지난 11일 공개한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평가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정말 놀랍다.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보고서를 몇 번이나 다시 살펴봤다. 

 

첫째, 이 보고서는 조선일보가 발주한 보고서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윤석민 교수는 처음에 이 보고서를 발주한 곳을 밝히지 않다가 미디어오늘이 확인 취재를 시작하니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에서 3000만 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뤄진 연구라는 사실을 밝혔다. 

 

윤 교수는 뒤늦게 “연구비가 어디에서 왔건, 연구자는 독립적으로 연구목적에 충실한 완성도 높은 연구를 수행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연구는 연구의 내용 자체로 평가돼야 하고 이 연구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둘째, 출처를 밝히면 논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경쟁하고 있는 TV조선과 한 몸이고 윤 교수는 조선일보의 고정 칼럼니스트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추천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냈고 종합편성채널 출범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윤 교수의 학자적 소명과 양심을 믿어야겠지만 애초에 조선일보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지상파 방송의 편향성을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박근혜 정부 땐 제대로 비판이나 했나. 

 

셋째, 조선일보는 서울대 단독 연구인 것처럼 기사를 썼다. 

 

11일 낮에 공개한 보고서를 조선일보는 미리 받아서 11일 아침 기사로 내보냈다. 자신들이 발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마치 서울대가 자체적으로 연구해서 만든 보고서인 것처럼 서울대의 공신력을 빌려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사흘 연속으로 내보내고 있는 “공정성 잃은 지상파”라는 시리즈 기사에는 서울대 보고서를 인용한 부분과 정권이 바뀌면서 지상파 방송이 좌 편향됐다는 평소 이 신문의 주장이 뒤섞여 있다. 

 

넷째, 편향성을 임의로 재단하고 있다. 

 

상당수 프로그램이 문재인 정부 들어 신설됐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는 비판적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비판성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런 조사에서 주의할 부분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정부에서 벌어진 수많은 다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두고 비판성이 줄어들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애초에 접근 방식 자체가 편향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다섯째, 과연 박근혜 정부 때 비판은 제대로 했나. 

 

오히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시사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반부터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과 통합진보당 해산, 간첩단 조작 사건,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잃어버린 7시간, 메르스 사태, 개성공단 폐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사드 배치, 마지막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탄핵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치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KBS와 MBC의 시사 프로그램이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랬다면 왜 수많은 기자와 PD들이 파업을 하고 해고를 당하고 방송 독립을 외치면서 싸웠을까.

 

의견 개진하면 편향?

 

여섯째,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이 정부를 감싸고 도나. 

 

물론 문재인 정부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사회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북 화해 분위기가 불편한 보수 언론이 해묵은 색깔론을 들고 나오고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망언이 쏟아지면서 팩트 체크 성격의 보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보도가 정권에 우호적이거나 정권을 변호하는 것으로 분류되고 그래서 편향됐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논리 비약이다. 

 

일곱째, 진행자가 의견을 개진하면 편향적인가. 

 

심지어 “삼성 공화국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홍준표 대표가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요”, “사법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꼽히는 충격적인 이야기”, “국민 안전의 버팀목인 119 대원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요”, 이런 식의 표현을 편향성의 주요 사례로 거론했다. 정치적 견해를 넘어 애초에 진행자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편향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 편향성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그때는 이랬는데 지금은 왜 이렇느냐는 기준으로 편향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설플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누구나 각자의 편향이 있고 조사하는 사람 역시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해관계를 충족하고 정치적 입장 차이를 끌어안는 언론 보도는 있을 수 없다. 완벽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계적 중립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아홉째,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김어준씨와 김용민씨 등 일부 진행자들의 강한 주관을 드러내는 새로운 형태의 방송을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방송 안팎에서 강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과 지상파 방송의 전체 시사 프로그램을 묶어서 편향성이 강해졌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약이고 왜곡이다.

 

출연자의 성비와 소속 등을 계량화하고 사실 전달과 주장 또는 의견의 비중을 분석하는 조사는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논쟁적인 사안을 다루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언론이 논쟁적인 사안을 정면으로 다루는 건 오히려 바람직한 일 아닌가. 종편과의 비교를 포함해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론이 뒷받침됐다면 좋은 연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 많다. 

 

열째, 언론은 좀 더 공정해졌는가. 

 

언론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장의 저널리스트들이 얼마나 외부의 압력에서 자유롭게 주장과 신념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저널리즘의 원칙과 사명감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 비로소 공정성이 보장된다. 여전히 언론의 신뢰가 바닥 수준이지만 적어도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덜 보는 구조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방송이 문재인 정부에 더 우호적인 방송이 됐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문제라고 끝날 게 아니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완벽한 정치적 독립에서 해법을 찾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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