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가짜들의 천국 - 가짜뉴스, 가짜사회
김평호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등록 2019.12.10 13:14
조회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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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왜곡정보. 가짜뉴스의 가장 일반적 정의다. 요즘 문제처럼 생각되지만 선전선동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허위/왜곡정보라는 가짜뉴스는 시대와 사회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오래된 미디어적 현상이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것이 창궐하는 사회적 맥락과 배경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상이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가짜뉴스의 문제는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게, 뉴스의 생산자든 소비자든 공히 인식/적용하는 튼실한 판단기준이 있고, 그에 입각하여 뉴스를 생산/유통/소비한다면, 가짜뉴스는 그저 먼 변방의 찌라시일 뿐이다. 그러면 변방의 찌라시 정도여야 할 가짜뉴스가 어떻게 사회의 중추로 자리 잡은 것일까?  

 

부서진 개인들

 

첫 번째는 부서진 개인들 때문이다. 가짜뉴스를 만들고 가짜뉴스를 읽고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 이들은 부서진 개인들이다.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이다. 공부가 아니라 입시문제 푸는 10대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취업/토익 참고서 푸는 20대들, 근근이 취업해 어렵게 살아가는 30대들, 일자리 쫓겨날까 불안한 40대들, 막막하게 홀로 영업하며 살아가는 50대들, 가난에 찌든 60대들, 그리고 나머지들... 경제는 세계 11위 규모라는데, 소득은 3만 불이라는데, 이들에게 그건 뜬구름 같은 이야기다. 사회는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공동체라는 말은 허상이다. 이들은 가슴 가득 불만과 불안을 안고 산다. 부서진 개인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정서는 분노다. 분노하는 대중에게 합리적 판단이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부서진 개인들이 세상의 불만과 불안을 표시하고 털어내는 가장 손쉬운 메커니즘이다.

 

타락한 언론사들

 

두 번째는 타락한 언론사들과 내부의 기자/기레기들 때문이다. 사회의 중추기관이 변방의 찌라시와 다를 바 없다면, 장삼이사가 만드는 가짜뉴스는 외려 귀여운 일탈행위다. 뉴스 판단의 합리적 기준 문제를 넘어, 예를 들어 사람이라면 정직해야 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별력이 있어야 하며, 책임을 알아야 하며 같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진리나 가치, 목표들. 그런 공통의 가치나 규범이 있게 마련이다. 허나 가짜기사를 쓴 기자들이나, 그런 언론사들을 보라. 그들은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고, 옳고 그름을 생각지 않으며,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들이 써내는 기사는 사실 가짜뉴스와 다르지 않다. 이번의 조국 사태는 언론과 기자/기레기들이 한국의 가장 큰 암 덩어리 중 하나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정작 사회권력 기관인 언론사, 그 번지르르한 건물 안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찌라시를 생산해내는 판에 다른 사람들이 그 비슷한 찌라시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지금은 콘텐츠 생산과 유통이 획기적으로 저렴해진 시대가 아닌가.  

 

망가진 사회

 

세 번째는 사회가 망가진 탓이다. 여기서 사회란 사람들 상호 간의 신뢰, 그리고 국가 기관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 정도를 말한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 사회의 신뢰지수는 190여개가 넘는 전 세계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행정, 사법, 교육, 안전 분야 등에 대한 공적 신뢰도가 낮은 것은 물론, 가족과 친구 등 개인 간의 사적 신뢰도 역시 최하위 수준이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신뢰의 문제가 바닥 수준이라면 돈은 오히려 신뢰악화의 주범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공동체가 받아들이는 공통의 진리, 가치, 목표 같은 것이 없거나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망가지면 기관도, 조직도, 그리고 사람도 망가지게 마련이다. 가짠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사회. 가짜가 아니어야 할 사람들이 가짜여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 진짜가 가끔 나타나는 의외의 사건인 사회.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뜨려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 그런 것에 별다른 문제제기하지 않는 사회. 상호 간에 아무런 기대를 품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책임한 말을 서로에게 칼처럼 내던진다.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최상의 환경이다. 

 

가짜뉴스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초래한다거나,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폐해의 주범임은 다 아는 얘기다. 이에 맞서 시민사회 단체들이 ‘가짜뉴스체크센터’를 만들려 하는 것은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럼에도 비관적이지만 가짜뉴스는 없어지지 않는다. 애초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배경은 사실, 또는 진실과 거의 무관하기 때문이다. 정말 가짜뉴스 문제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정부를, 국회를, 법원을, 언론을 바꿔야 한다. 이들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가짜뉴스에 눈멀 수밖에 없는 가짜사회에 사는 가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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