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여성 아이돌의 삶과 미디어의 역할
홍남희(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등록 2019.12.16 16:17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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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1월 연이어 세상을 떠난 고 설리 씨와 고 구하라 씨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언론은 악플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었다며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다시 주장했다. 일명 ‘설리법’으로 불리는 ‘악플방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악플러를 탓하기 이전에 ‘황색 저널리즘’을 돌아봐야 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포털 이후 검증되지 않은 언론사의 급증과 경쟁 심화가 클릭을 유발하는 여성 연예인 관련 무분별한 보도의 원인으로도 진단된다. 그러나 설리 씨의 생전 6개월치 관련 보도에 대한 민언련의 분석 결과(https://bit.ly/38J4JPl) 연예, 스포츠 매체보다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의 주류 매체들에서 관련 뉴스를 더 많이 생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은 클릭 경쟁의 적극적인 행위자이자 여성혐오적 시각의 뉴스 생산의 주체로 가담해 왔다. 

 

올 한해를 굵직하게 장식한 버닝썬 사건, 프로듀스 101 조작 논란, 보니하니 사태 등은 연예 산업과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조장해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 자체의 자정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미디어 규제 또한 이러한 측면에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류 미디어들이 적극적으로 여성혐오적 시각을 생산해 내며 여성 연예인들을 옭아 매는데 큰 기여를 해 왔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는 여성 게스트들에게 사적인 생활이나 실질적으로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사안을 무례하게 질문했고, 남성들 앞에서 애교를 강요하기도 했다. 정준영을 배출한 <1박 2일>은 여전히 건재하고, 승리를 성공한 사업가로 포장한 <나 혼자 산다>도 순항 중이다. 대중의 ‘선택’, 공정함으로 포장된 <프로듀스 101>도 애당초 ‘건전한 야동’을 만드는 것이 제작 의도 중 하나였음을 노골적으로 밝힌 바 있다. <보니하니>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어린 10대 여성 아이돌이 삼촌뻘인 30대 개그맨에게 성희롱적 발언과 폭력을 당한 것도 공영방송 EBS에서였다.

 

주류 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외모 지상주의, 여성 아이돌의 적절한 역할, 젊고 어린 여성에 대한 이상화는 인터넷 공간에서 재생산된다. 아이돌의 데뷔 연령이 낮아지고, 성별 스테레오타입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더 어린 연령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친다. 또한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일상적 모욕, 성차별적 혐오표현, 이미지 기반 합성과 디지털 성폭력은 케이팝과 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포르노 합성에 케이팝 여성 연예인 비중이 25%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연예인에게 행해지는 각종 성적 모욕과 악플에 기획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환경에서 일부 아이돌들이 공황장애, 불안증 등을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연예인이 되고 감당하지 못할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이 사회의 이상으로 제시되는 곳에서 ‘여성’ 아이돌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상품이 되는 과정에 참가한다는 동의로 여겨진다. 선택의 ‘자발성’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인권 침해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다음이 연예 뉴스란의 댓글을 폐지했지만, 애시당초 미디어와 대중이 합작해 생산해 낸 여성혐오의 굴레는 여성 연예인의 행보를 가부장제 틀 안에 가둬 왔다. 

 

미디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아이돌이 소비되는 방식을 구성한 주요 행위자다. 제작진의 젠더 감수성 부재는 부끄러워해야 할 요소지만,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제작 가이드라인은 제작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극렬히 반대했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 서구 국가들에서는 방송에서의 성차별적 재현을 근절하기 위해 각종 규제 조치들을 시도하고 있다. 성별 스테레오타입과 그에 근거한 성차별적 재현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제약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미디어는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아예 포기한 것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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