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_
언론 제자리 찾기, ‘언론’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이유
이명재(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 자유언론실천재단 편집기획위원)
등록 2020.12.16 11:29
조회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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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민중의소리)

언론 대 시민의 갈등

 

우리 사회 개혁의 큰 과제 중 하나인 검찰 절대권력 분산을 위한 진일보가 지난주에 이뤄졌다. 고위공직자수사처법이 검찰과 기득권 정치세력의 거센 저항을 뚫고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라는 장애물에도 해냈다’라고 해야겠다. ‘언론이라는 장애물에도’, 이 말은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발전과 개혁을 위한 여느 과제의 행로에서도 피할 수 없는 역류(逆流)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 진전을 위한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한국 언론은 지금 공기(公器) 아닌 공기(攻器), 이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양식과 상식을 공격하는 공기가 되고 있다.

 

우리 언론의 다수가 매일같이, 아니 매 순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가끔 사실을 말하고, 자주 사실을 제조하며, 언제나 사실을 가공하는’ 것이다. 한때는 타기돼야 할 것으로 여겨진 사실 전달의 ‘기계적 균형’이 어느덧 언론에 기대하는 최대치가 돼버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언론의 일부 문제였던 것이 이제는 대부분 언론, 아니 모든 언론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면 중의 하나는 언론 전체의 현상이 되버린 ‘지면의 사유화’다. 과거 지면의 사유화 규탄 구호는 일부 유력 신문사에 대한 반대 운동이 분출하면서 시민들이 들고 나온 구호였다. 이른바 족벌 언론사주에 의한 신문사 운영의 전횡과 제왕적 지배에 대한, 공공재의 사유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 보도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시민들이 언론에 던지는 질타에 대한 기자들의 불통과 냉소를 보라. 지면의 사유화가 이제는 사주와 그 일가, 일부 간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 모두의 일심동체로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야 할 듯하다. 게다가 그 같은 유력언론의 족벌 반민주 행태를 비판하며 개혁적 양식 언론의 깃발을 들고 나왔던 신문사들마저 일부 그에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이제는 언론사 대 언론사의 갈등이 아니라-이른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언론 대 시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언론, ‘문자’의 주인될 자격이 있는가

 

한국 사회가 언론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일부 ‘문제 언론’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언론 그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한국 사회는 과연 언론을 필요로 하느냐는 의문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것은 한국 언론이 ‘언론(言論)’의 일을, 문자와 글을 갖고서 하는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먼 옛날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이는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창힐이다. 창힐은 새와 짐승의 발자국을 본떠 한자를 만들었는데 그때 귀신들은 밤새 울부짖고 신령스러운 용은 구름을 타고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서양의 그리스 신화에서도 프로메테우스가 신으로부터 훔친 불과 함께 문자를 인류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제우스는 격노해 그를 얼음산에 묶어놓고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하는 형벌을 내렸다.

 

이것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인류에게 문자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를 경고한 것이다. 지금 우리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글로써 글을 죽이고, 사실로 진실을 가리는 ‘문자의 옥(獄)’이라고 해야 할 현실은 한국 언론이 문자의 주인될 자격이 있느냐는 것, 언(言)과 론(論)을 담당할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한국 사회는 언론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이 있냐는 의문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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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전통적인 창힐의 초상화)

 

‘눈 밝은’ 시민들이 언론을 제자리에 돌려놓아 달라

 

2020년 올 한해 한국 사회는 코로나라는 전에 없이 지독한 바이러스에 내내 시달렸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인류 모두의 고통 외에 한국인들은 코로나만큼이나 우리를 괴롭히는 ‘악성 언론 바이러스’를 겪어내야 했다.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선 마스크를 쓰면 됐지만, 언론을 피해서는 눈과 귀를 둘 데가 없었다는 점에서 ‘악성 언론 바이러스’는 코로나보다 더 끈질긴 바이러스다.

 

해가 바뀌면 코로나는 물러날 것인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다만 의료기술의 진보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은 한국의 방역 시스템은 지금 고비를 이겨낼 것으로 애써 낙관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 언론 아닌 언론의 이 강력한 병원균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생명과 안전을 지킬 것인가.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군인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디 전쟁뿐이겠는가. 우리가 올해 생생히 봤던 것처럼 교육도 의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언론 또한 언론에게만 맡길 수 없다. 스스로 언론이 되려는 의지와 역량에서 회의를 갖게 하는 사회 ‘밖’의 언론, 사회 위에 군림하고자 하지만 사회 ‘밑’으로 내려가 있는 언론, 그런 언론을 끌어올리고 끌어당겨야 한다.

 

다시 위의 얘기로 돌아가서 창힐의 초상을 보면 그는 네 개의 눈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문자를 쓴다는 건 두 개의 눈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일 텐데, 네 개의 눈은커녕 두 개도 아닌 외눈박이로 문자를 쓰고 있는 언론을 하나하나의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이끌 네 개의 눈을 가진 시민들, 그런 눈 밝은 시민들이 한국의 언론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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