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호] [책이야기] 적을 이해하라
등록 2019.01.28 14:05
조회 20

적과의 대화.jpg

 

지인이 이 책, <적과의 대화>를 건넸을 때 스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고 전해진다. 이를테면, “죽을 사람은 다 죽었는데, 이제 와서 대화는 뭔 대화여.”라는 식이다. 평소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귀하여 여겼던 분인지라 살짝 당황하기도 했으나, 이내 나의 생각은 이해하는 쪽으로 흘렀다. 왜 아니겠는가, 평생 ‘대화합시다, 함께 삽시다.’를 화두로 들고 전국 방방곡곡 발길 아니 닿는 곳이 없었던 분이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싶었던 것이다. 회한과 아쉬움의 깊이에 내 어찌 다가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평생 길거리에서 생명평화와 대화를 나지막이 외치던 도법스님 이야기다.

 

아쉽고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해도, 전쟁의 당사자들이 마주 않아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전쟁 전반을 함께 되돌아보는 행위 자체가 내겐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책 표지에 있는 부제와 텍스트들이 이 책에서 무엇을 다뤄나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부제는 이렇다.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1997년이면, 베트남전쟁 종전 후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다. 그해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간 바로 그곳에서 맥나마라 전 미 국방장관, 응우옌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 전쟁을 수행했던 미국과 베트남의 지도자들이 모여 대화 나눈 기록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대화의 주제는 이렇다. “왜 전쟁을 하고 말았는가?”, “왜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 “왜 더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지 못했는가?” 이 전쟁으로 베트남인 300만 명, 미군 5만 8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자연이 파괴되는 전쟁은 불가피했던 것일까? 설령 그것이 일어났다 손치더라도 조기에 종결시키려는 어떤 외교적 노력도 실패에 다다랐다면, 조기 종결을 가로막았던 장애물은 무엇이었을까? 대화 참가자들은 당시의 ‘잃어버린 기회 missed opportunities’를 둘러싼 격론을 벌였다.

 

 한반도로 시선을 돌려 본다. 요즈음의 한반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맞잡은 백두산의 손으로, 겨레의 가슴이 뜨겁게 적셔지는 중이다. 만남과 대화 없이 평화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한반도 주민은 절절히 깨닫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 이후 남과 북/북과 남 사이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각종 만남과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군사 당국은 JSA를 비무장화했으며, 폐쇄된 개성공단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점검하기 위해 공단에 갈 예정이고, 산림 협력을 비롯하여 각종 문화와 경제 차원의 교류협력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기대한다. 물론 그 백미는 김정은 위원장의 남쪽 방문이 될 터이다. 두 정상/수뇌가 한라산에서 두 손 맞잡는 그림을 떠올려 본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다시 한반도 남쪽으로 돌려본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적’이라는 이미지로 고정시켜버 린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과 ‘대화’하고 있는가? 가족이라는 아주 작은 공동체를 비롯하여 마을과 학교 및 지역사회 내의 각종 공동체들은 내부의 갈등과 반목으로 말 그대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는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으며,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분쟁과 살인 사건도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최근 국민적 관심을 받은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이별 범죄’의 만연 또한 강퍅해진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화가 단절된 사회의 특징이 고스란히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북에 있는 주민들과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평생 ‘적’이라 규정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온전하게 대화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적과의 대화’에 적극 나섰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얻은 아래의 교훈은 한반도 남쪽의 작은 공동체들 그리고 남북/북남 백성들의 만남과 대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하노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대화의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은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교훈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지도자끼리의 대화, 그렇습니다, 대화를 계속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게을리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신호승 서클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