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8월호] [여는글] 좋은 언론이 살아야!
등록 2020.08.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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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완벽한 적은 없으니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사도 참 오래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 운동의 역사에서 1992년 총선보도감시연대(선감연) 활동의 의미는 특별하다. 1987년 언론의 왜곡 편파보도는 노태우 후보 당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를 경험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 민언련의 전신)를 비롯한 언론운동단체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선거보도를 감시하고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고자 선거보도모니터를 시작했다. 그 이후 민언련은 매번 선거 때마다 모니터를 해왔다.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중심 기제가 올바로 작동되기를 바라는 맘이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민언련은 상시적으로 언론 모니터를 해왔다. 언론이 독재 권력에 굴복하거나 유착해서 권력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것을 넘어서, 스스로 권력이 되어 자신들의 이념과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왜곡 편파 보도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방송장악, 종편 도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대다수 언론들이 왜곡 보도로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때 이런 언론의 행태를 고발한 것은 민언련의 자부심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민언련 모니터

민언련의 모니터는 많은 시민들이 언론의 문제점을 깨닫고,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막연하게 느낀다 하더라도 막상 무엇이 문제인지 근거가 없는 주장은 탁상공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하거나 모니터가 가능하도록 조직을 운영하는 민언련 활동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언련 활동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주는 회원들은 우리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 혹자는 모니터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의 왜곡은 명확하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변한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 상업적인 동기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멀리하는 보도 행태들은 굳이 면밀히 따져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문제임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운동이란 우리끼리 성토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은 주장이 아니라 ‘근거’다. 그래서 민언련의 모니터는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지만 그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걱정스런 언론 기피 현상

하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비판적인 모니터 못지않게 중요한 언론 운동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만이 아니라 올바른 ‘관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구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 언론의 현실은 마치 시한부 생명 같다. 물론 아직도 정말 많은 언론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플랫폼들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대부분이 언론이 생산하거나 언론의 생산물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의 존재 이유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언론의 자유도 순위는 매년 올라가지만 신뢰도는 계속 낮아지거나 오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국 옥스퍼드 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가한 언론의 신뢰도는 21%로 40개의 조사 대상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다. 정파적, 상업적 언론의 행태가 신뢰도 하락의 주요 원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을 불신하는 우리의 행태가 옥석 가르기의 결과라기보다 언론 일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비록 완벽한 언론은 없다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진실을 보도하려 노력하는 언론, 사회에 정말 기여하는 기사나 프로그램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과거 기울어진 운동장 시절과 달리 우리들의 적은 노력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언론이 늘어났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언론 소비행태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자체를 멀리하거나, 내 입맛에 맞는 언론, 콘텐츠만 소비하는 형국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좋은 언론 소비 운동이 필요하다

다양한 정보나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는 언론을 접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하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주권자로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한편 올바른 저널리즘 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이라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 현명한 시민이라면 불량제품을 소비하지 않아야 함과 동시에 양질의 제품을 선택 소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불량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나 결국 시장에서 선택받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민언련이 많은 시간을 들여 좋은 보도,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내고 시상을 시작한 이유다. 그 열악했던 이전 정부 시절에도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들이 있었고, 그 엄혹한 시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겠다고 투쟁했던 언론인들이 지금 그 뜻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불량제품을 피하는 만큼이나 양질의 콘텐츠를 선택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 사라지면, 언론의 기능이 사라지면 누구에게 가장 이로울까? 민언련의 회원들이 좋은 언론 소비 운동의 주체로 나서기를 제안해본다. 민언련이 고른 좋은 보도상 수상작들을 회원들이 챙겨 보고 주변에 권해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민언련도 알리고, 좋은 언론도 살리고.

 

 여는글 김서중 상임공동대표.jpg

김서중 상임대표

 

▼날자꾸나 민언련 2020년 7.8월호 PDF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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