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2021년 1월호] [여는글] 민언련이 언론개혁 책무를 잘 해내길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등록 2021.02.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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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언경입니다. 사무처로부터 ‘여는글’ 요청을 받고 조금 망설였습니다. 민언련 회원께서는 이미 아시듯 저는 지난해 7월 초 공동대표를 사임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책무를 놓아버린 것에 대해 회원 여러분께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면목이 없어 마냥 피하고 싶었지만, 민언련이 준 지면을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글을 보내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마감날을 넘겨도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서 또는 자판 위에서 계속 뭔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마음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언론개혁 이야기를 쓰려고 했고, 그러니 어떤 말을 해도 변죽을 울리는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래서 소식지 ‘여는 글’이란 부담을 잊고 그냥 제 SNS에서 수다를 떤다고 생각하고 이어보겠습니다.

 

‘소쿠리로 물 뜨기’라도 열심히 해보자며 버텼습니다

2014년 7월, 저는 민언련 사무처장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소식지 ‘여는 글’에서 우치다 타츠루 교수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학교가 큰 피해를 입었을 당시 조용히 학교로 나와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쌓인 잔해를 치우고, 무너진 책장을 치우고 쓰레기를 치웠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학교가 나아질 때까지 전혀 나오지 않았으면서 누가 나오라고 지시하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했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학교에 오긴 했지만 일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효율적인 인력배치를 해야 한다고 ‘입방정’만 떨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치다 교수와 일행은 온종일 아래만 내려다보며 쓰레기를 치우고 넘어진 가구를 세우는 등 ‘소쿠리로 물 뜨기’ 같은 작업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 보수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종편의 막말 방송 등 대응해야 할 일이 폭포처럼 쏟아지던 그때 저는 우치다 교수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무처장 역할을 잘 할 능력도,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소쿠리로 물 뜨기’ 같은 일이라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어서 민언련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저는 다시 그 상황을 유지하는 것에 매몰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소쿠리로 물 뜨기’를 너무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멈춰 우선순위를 정하고, 보다 면밀한 계획을 세웠어야 했는데 그럴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습니다. 이전보다는 조금 여유 있게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공동대표를 맡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2년 임기를 버티려다 어쩌면 제 자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원 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지만, 저는 재충전 수준을 넘어 ‘리셋’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민언련의 터전 마련을 축하하며 언제나 응원합니다

지금 저는 치유의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습니다. 너무 늘어져 있으니 더 잦아드는 기분이 들어 둘째 딸과 함께 개인 유튜브를 시작했고요. 민언련에서 열심히 살았던 덕분에 간혹 불러주시는 방송, 회의, 강연도 가고 있습니다. 매일 눈을 뜰 때 또 어떤 나쁜 뉴스가 터졌나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하나 분노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회복될 것 같던 컨디션은 나아지지 않고 어쩌면 더 많이 골골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지인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우리 나이가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든 것을 써 버리고 이제 스스로 자신의 부모가 되어 나를 다시 키워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요. 그래서 신생아를 키우는 심정으로 자신을 돌봐주라고요. 생각해보니 저도 이 나이까지 ‘살아냈고’, 맨날 지지고 볶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기까지 함께 살며 모셨고, 두 아이를 낳아 키웠습니다. 그 와중에 민언련 등의 일을 하면서 ‘삶의 텐션’을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했습니다. 2021년, 54세가 되었습니다. 하하 젊네요. 그러니 이제 제2의 인생을 위해 잘 비우고 다듬고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수다는 다 풀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언련의 숙원사업인 터전 마련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것이 회원님들 덕분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고생스러운 일을 나서서 하는 시민단체 민언련에 대한 격한 기대와 응원이었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앞으로 민언련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지고 그만큼 힘겨울 것입니다. 하지만 회원의 응원과 지지가 계속된다면 민언련은 그 책무를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도 언제나 민언련을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영원한 제 친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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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경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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