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모니터_
저널리즘 실종된 유명인 사생활 보도, ‘클릭 수 경쟁’만 남았나
‘김선호 전 여친’ 찾아 헤매고, 조재범 판결문 퍼나르는 행태 멈춰야
등록 2021.10.22 15:34
조회 887

저널리즘 실종된 유명인 사생활 보도, ‘클릭 수 경쟁’만 남았나

‘김선호 전 여친’ 찾아 헤매고, 조재범 판결문 퍼나르는 행태 멈춰야

 

연예인, 스포츠선수 등 유명인 관련한 폭로성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내밀한 사생활뿐만 아니라 쉽게 공개되면 안 되는 개인정보까지 무차별로 드러나고 있는데요. 특히 유명인 사생활을 상품화한 언론의 경쟁적 선정보도가 급증하며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어 공적 보도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적 가치 없는 사생활 보도, 왜 양산되는가

한국 언론의 유명인 사생활 보도행태는 오래전부터 개선이 필요한 구태로 비판받아왔습니다. 2020년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425건 중 사생활 침해가 103건(24.2%)로 1위를 차지해 언론보도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전체 권고대상 매체 중 인터넷신문이 368건(86.58%)을 기록해 온라인 공간의 무분별한 공격과 빠른 확산 문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공적 보도가치가 없거나 낮은 데도 유명인들의 사생활 보도는 왜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을까요? 최근 배구선수 이다영 씨 이혼 관련 폭로전이 경쟁적으로 보도된 경우도 공적 보도가치를 따지지 않은 채 ‘칼부림’ 등 과격한 표현이 연일 등장하며 선정적으로 다뤄진 사례입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에 대한 2차 가해성 보도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조재범 전 코치의 1심 판결문이 법률전문 검색서비스 실수로 공개됐는데, 일부 언론이 구체적 가해사실 내용을 퍼 날랐습니다. 조 전 코치의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된 심 선수 휴대폰 메신저 내용이 고스란히 노출돼 보도됐는데요. 국가대표로서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지만, 개인의 휴대폰 메시지를 동의 없이 보도한 점은 불법적 소지가 다분합니다.

 

배우 김선호 ‘전 여친’ 색출 나선 언론

10월 17일엔 ‘대세 K배우의 실체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습니다. ‘K배우’가 전 여자친구인 자신에게 임신중지를 종용했다는 등 사생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10월 20일 배우 김선호 씨가 ‘K배우’가 자신임을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커뮤니티 글은 자극적으로 기사화됐고, 급기야 피해자인 여성의 신상정보를 캐내 퍼 나르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피해 여성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배우 김선호 씨 관련 보도는 ‘유튜버’ 입을 따라다녔고, 그 방향은 커뮤니티 글을 작성한 ‘전 연인’을 향했습니다. 부산일보 <“혼인빙자에 낙태까지 강요한 K 배우의 사과를 요구합니다”>(10월 17일 장혜진 기자)를 시작으로 커뮤니티 글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유튜버가 ‘K배우’로 김선호 씨를 거론하자, 일부 매체도 유튜버 발언을 근거로 실명과 사진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요.

 

조이뉴스24 <“K배우=김선호, 9월부터 前여친 문제로 곤욕” 의혹 제기>(10월 18일 정지원 기자), 스포츠경향 <“사생활 폭로 배우, 김선호 맞다…소속사도 이미 인지”>(10월 18일 이선명 기자) 등은 “소속사도 이미 김선호의 전 연인 사생활 논란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간 언론에 친화적인 태도를 바꾸고 전 직원이 연락을 끊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라는 유튜버 말 외엔 별다른 취재 내용은 없었지만, 해당 언론은 실명과 사진을 내걸었습니다. 김 씨가 해당 내용을 시인하기 전까지 사실 확인 없이 나온 기사가 550여 개에 이릅니다.

 

더 큰 문제는 김 씨의 전 연인이라고 주장한 게시글 작성자 직업이나 실명을 거론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김 씨 실명을 언급한 유튜버가 ‘전 여친 정체’ 등을 제목에 쓴 영상을 올리자 나온 보도인데요. 스포츠경향, 위키트리, 국제뉴스, 세계일보, MBC연예, 뉴스엔, 머니투데이,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스포츠투데이, 뉴시스, 중앙일보, 서울신문, 엑스스포츠뉴스, 여성조선, 파이낸셜뉴스 등이 해당 유튜버 발언을 받아썼습니다.

 

전 연인 실명·직업 보도하고 ‘2차 가해’ 우려?

이후 김 씨 전 연인의 직업과 실명, 사진까지 공개하는 보도까지 등장했습니다. 스포티비뉴스가 10월 18일 ‘단독’을 붙여 제목과 본문에서 전 연인의 현재 직업과 이전 직업, 종사 기간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제주교통복지신문 역시 ‘단독’을 붙여 직업을 공개했고, 비슷한 보도는 톱스타뉴스, 한국경제, 인사이트, 세계일보, 시사매거진 등에서도 계속됐습니다. 국제뉴스는 김선호 씨 논란에 대해 별다른 언급 없이 10월 20일 전 연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사람의 실명과 사진을 보도했습니다. 스타뉴스는 10월 21일 전 연인이 최근 다시 일을 시작했다며 근황을 전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2차 가해 논란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지만, 이들 언론 역시 ‘신상 털기’를 해오던 매체였습니다. 세계일보 <“김선호 전 여친이 XXX 맞나요?”….과열된 ‘신상 털기’ 우려>(10월 20일 강민선 온라인 뉴스 기자)는 “A씨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뉴스엔 <김선호 비겁한 침묵 속 전 여친 신상털기, 2차 가해 심각 [이슈와치]>(10월 20일 이민지 기자), 아시아경제 <K배우 사생활 폭로 A씨 ‘신상 털기’ 논란..“2차 가해” 비판도>(10월 22일 임주형 기자) 등도 “A씨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어떤 보도를 해왔는지는 잊은 듯합니다.

 

전 연인 추측성 기사 모음_1021_네이버.png

△ 논란된 배우의 전 연인 관련 추측성 기사(10/21, 네이버 ‘김선호’ 검색 결과)

 

심석희 욕설 파문, 조재범 ‘성폭행’ 판결 영향준다?

2차 가해와 과도한 사생활 침해 보도는 스포츠 기사에서도 나왔습니다. 디스패치 <[단독] “평창 금메달이 창피해”…심석희, 국가대표 조롱 논란>(10월 8일 오명주·구민지 기자)은 심석희 선수가 동료 험담 등을 주고받은 개인 메신저 대화를 보도했는데요. 심 선수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조재범 전 코치 측이 심 선수 휴대폰 포렌식 자료를 확보해 언론사 디스패치에 제공하며 알려지게 됐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메신저 내용을 보도한 것만으로도 범죄성이 충분한데, 성범죄 가해자 측이 제공한 피해자 관련 정보를 섣불리 가져다 일방적으로 쓴 겁니다.

 

조재범 판결 영향_ 1009 _ 머니투데이.png

△ 동료 험담, 고의충돌 의혹 등이 불거진 심석희 선수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조재범 전 코치 성폭행 재판과 연결 짓은 머니투데이(10/9)


메신저 대화는 동료 선수를 험담하고, 고의충돌을 의심할 여지가 있는 내용이었는데요. 험담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고, 고의충돌 여부에 대해선 조사를 통해 밝히면 될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성폭행 재판과 무리하게 연관 짓는 보도입니다.

 

머니투데이 <심석희 파문, 조재범 ‘성폭행’ 혐의 3심 판결에 영향 줄까[팩트체크]>(10월 9일 유동주 기자)는 일부 커뮤니티를 출처로 “조재범 전 코치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보도했는데요. 여러 전문가가 “성폭행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언급한 내용이 기사에 포함됐는데도 커뮤니티 글을 굳이 언급하며 “추가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과 같은 가정으로 “재심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키우고, 피해를 축소한다는 점에서 2차 가해로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심 선수를 향한 2차 가해는 더 있습니다. 법률전문 검색서비스 플랫폼에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의 1심 판결문이 공개됐다는 사실이 이데일리 <[단독] 심석희 ‘2차 피해’ 나몰라?…조재범 판결문 공개한 법률사이트>(10월 14일 남궁민관 기자)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판결문은 공개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해당 재판은 피해자 요청으로 비공개로 진행됐고,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 역시 가해 사실이 상세히 적혀 있어 2차 가해 우려가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언론이 판결문이 공개됐다는 사실과 함께 그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입니다. 연합뉴스, 세계일보, 매일신문, 서울신문, 한국경제, 부산일보, 데일리안 등은 1심 판결문에 적힌 내용을 제목과 본문에서 모두 언급했습니다.

 

유명인 사생활 상품화, ‘클릭 수’ 욕심일 뿐

언론중재위원회는 국가·사회·개인의 법익을 침해한 사항을 심의 의결해 해당 언론사에 시정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유명인의 가족 등에 대한 사적 정보나 초상을 공개하는 보도,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당사자 동의 없이 그와 관련된 내밀한 정보 및 사생활을 공개할 경우 △성폭력 가해자의 범행수법을 지나치게 자세히 보도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재하여 선정적으로 묘사한 보도 △인터넷 상 조롱성 게시글 등을 여과 없이 게재할 경우 △사회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대해 보도하면서 사건과 관련 없는 인물의 초상 등을 게재한 보도 등은 모두 시정권고 대상입니다.

 

유명인은 필연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언론이 그들과 주변인의 사생활이나 관련 내용을 함부로 보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인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언론은 해당 사안의 보도가치를 따져 보도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다영 선수의 경우 잘못된 행위인 학교 폭력과 사생활인 이혼 등은 보도 가치가 분명히 다릅니다.

 

지금도 논란된 배우와 관련해 새로운 폭로 예고 내용이 보도되면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커뮤니티 글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기사 가치 없는 이런 보도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언론의 ‘클릭 수’ 욕심일 뿐 저널리즘 본연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언론 스스로 품위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보도에 대한 자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클릭 수만 높인다면, 돈만 된다면 어떤 소재든 모두 보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10월 17일~21일 오후 6시 기준 네이버에서 ‘K배우’, ‘김선호’ 검색했을 때 나온 모든 기사.

2021년 10월 8일~21일 오후 6시 기준 네이버에서 ‘심석희’, ‘조재범’, ‘판결문’ 검색했을 때 나온 모든 기사.

 

<끝>

 

monitor_20211022_07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