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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강기갑 대표 관련 보도와 의제왜곡에 대한 논평(2009.1.8)
등록 2013.09.2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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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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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국회 사무총장실 항의 사건을 의제설정 왜곡에 악용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국회사무처가 로텐더홀에서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당원, 당직자들을 강제해산 하려다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강기갑 의원은 손가락 뼈가 부러졌고 이정희 의원은 실신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또 이날 새벽에는 민주노동당 대변인과 보좌진들이 국회 경위들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유치장에 입감되기도 했다.
잇따른 국회사무처의 강제해산 시도에 강기갑 대표는 박계동 사무총장실을 찾아가 격렬하게 항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탁자를 내려치고 탁자위에 올라가는 등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7일 강 대표는 평화방송에 출연해 “당대표로 넘어서는 안되는 과한 행동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우리도 강 대표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본다. 그러나 공과(功過)는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강 대표의 지나친 행동을 비판하더라도 그가 ‘MB악법’을 막는데 헌신했으며, 누구보다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해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악법강행’이라는 국회 파행의 근본 원인을 가리고 겉으로 드러난 야당의 물리적 저항만 부각하면서 의제를 왜곡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강 대표 비난은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질책’을 넘어 또 다른 정략적 의도가 엿보인다.

조선일보, “국회가 소수야당 폭력에 굴복했다” 호도
6일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 <폭력에 굴복한 민의의 전당>를 실었다.
기사는 강 대표의 “폭력 행사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원내 의석의 1.7%에 불과한 5석짜리 군소정당인 민노당의 횡포에 국회는 ‘불법과 폭력의 전당’으로 전락”했다고 탄식했다. 또 국회의장이 “(야당의) 불법과 폭력 앞에 백기를 든 꼴”이라며 ‘MB악법’을 강행처리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을 내비쳤다. 반면 국회사무처의 강제 해산 시도로 강 대표 등이 크게 다쳤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기사의 옆에는 <‘격투기 선수’ 강기갑>이라는 캡션을 달아 “강 대표의 폭력 행사 장면”이라며 세 장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기도 했다.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조선일보의 의도가 무엇인지 읽힌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이 악법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을 두고 ‘야당의 폭력에 굴복했다’고 규정했다. 야당의 저항에 ‘폭력’의 이미지를 씌우고, 야당의 ‘폭력’ 때문에 국회가 유린됐다고 몰아가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7일 사설 <국회에서 난동 피는 저 의원 선거구가 어딘가>를 통해서도 이런 의도를 드러냈다. 사설은 강 대표의 사진 속 모습이 “영락없는 저잣거리 잡배의 난동”이었다면서 “대한민국 입법부가 이 미니 정당의 무뢰한 대표의 발 아래 철저하게 짓밟혀 버렸다”고 비난했다. 나아가 “의회의 의사 결정은 최종적으론 다수결로 한다”며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에 힘을 실었고, 야당의 ‘폭력’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조선일보가 앞장서자 동아일보도 뒤따랐다. 7일 동아일보는 기자칼럼과 사설을 통해 강기갑 대표 사건을 다뤘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에서 “전체 의석의 1.5%밖에 안되는 5석의 정당이 떼쓰기로 의정을 농단하고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8일 동아일보는 강 대표의 지역구인 사천 주민들의 비판 여론을 전했다.
한편, 과거 조선일보가 의제를 설정하면 방송사들이 그 뒤를 쫓는 경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 6일 조선일보가 강 대표의 사진을 1면에 싣고 ‘폭력 국회’를 부각하자 KBS와 SBS도 이날 ‘국회 폭력’이라는 틀로 강 대표가 박계동 사무총장실을 찾아 항의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KBS와 SBS는 사건이 벌어진 5일에는 강 대표의 영상을 보도하지 않았다. 7일에는 MBC가 여야 합의 후 각 당 내부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민노당에 대해서는 내부 반응이 아니라 ‘강기갑 대표가 폭력 논란에 휘말리면서 후유증을 겪었다‘는 멘트와 함께 강 대표의 영상을 짧게 내보냈다.

조선일보 주장과 똑같은 한나라당 ‘친이계’의 반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악법과 국회 파행, 여야 합의 과정을 ‘국회가 소수당의 폭력에 굴복했다’는 프레임에 가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 ‘친이계’ 인사들도 악법강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조선일보와 똑같은 논리를 펴며 여야 합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당 지도부는 ‘향후 국회법을 고쳐 민주당의 불법 점거와 폭력 행사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나섰다.
거듭 지적하지만 한나라당이 악법을 강행처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야당의 폭력’에 굴복했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굴복한 것이다. 아무리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한다 해도 국민들이 정부 여당을 지지했다면 한나라당과 국회의장은 악법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MB악법’ 자체에 대한 반대 여론, 법안을 무조건 밀어붙이려는 방식에 대한 반대 여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거대여당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의회가 소수야당의 폭력에 굴복했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후 쟁점법안의 논의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법안들을 강행처리 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야당이 물리적 저지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박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강기갑 대표 사건을 상징적으로 부각해 그 효과를 ‘극대화’ 하고, 동시에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던 야당 정치인의 영향력을 깎아내리는 부수 효과까지 얻겠다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원하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친이계’ 인사들은 한나라당 지도부가 ‘야당 폭력에 항복했다’고 우기지만 국민들 생각은 다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국회 파행의 가장 큰 책임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한나라당 43.9%, 민주당 26.6%, 청와대 14.5%, 국회의장 2.9%라는 답변이 나왔다. 60%에 이르는 국민이 국회 파행의 책임이 한나라당과 청와대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야가 국회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것을 원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도 다수의 국민들은 국회파행의 책임이 본회의장을 점거한 야당이 아니라 여당과 청와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은 거대 여당이 쟁점법안들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때 소수정당이 합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야당의 물리적인 저항을 ‘폭력 국회’라고 부각함으로써 다가올 2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악법강행을 부추기고 있다.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국회에서 ‘폭력’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거대 여당 한나라당의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촉구하고, 소수야당이 거대 여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한나라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악법을, 최소한의 사회적 논의 없이 밀어붙이려다가 국민에게 밀렸다. 이런 한나라당에게 다시 강행처리를 종용하고 그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원하는 것인가?
<끝>



2009년 1월 8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