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모니터_
‘핵우산’이 ‘핵방패’로 진화? 어디서 나온 개념인가
등록 2023.04.27 19:22
조회 139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으로 ‘워싱턴 선언’이 발표됐습니다. 기존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대신, 독자적 핵개발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명문화한 것이 골자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하던 대로 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 여러 경제적 지원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동맹국의 독자적 핵개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한 성과를 냈습니다. 당장 한국은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얻은 것이 없다 보니, 그나마 미국이 약속해 준 ‘강화된 확장억제’에 대한 다소 무리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핵우산’이 ‘핵방패’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핵방패’라는 표현은 중앙일보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중앙일보는 <한국 이제 '핵방패' 손에 쥐었다...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의 의미>(4/27)에서 “‘핵우산’이 ‘핵방패’ 개념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어 매일경제가 <[사설] 핵우산 강화한 '워싱턴선언', 한미 안보동맹 도약 계기 되길>(4/27)에서 “핵우산을 ‘핵방패’ 수준으로 격상”했다고 썼고, 해설 기사나 칼럼을 제외하면 서울신문, 문화일보 등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핵우산이 강화되어 핵방패가 되었다는 개념은 한국 언론이 이번에 최초로 만든 것입니다.

 

2023년 4월 27일 이전 ‘핵방패’라는 용어가 쓰인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놀랍게도 이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있던 곳은 북한입니다. 2013년 4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한·미 비핵화 협상 시도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위성과 핵방패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중국 방문에 대해 미국 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동족의 정의의 핵방패를 걸고든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영문으로 번역해 ‘nuclear shield’ 등으로 사용된 경우도 찾아봤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이었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을 점거하고 병력을 단지 안에 배치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원전을 핵방패로 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nuclear shield’를 ‘핵우산’과 같은 의미로 쓴 사례도 있지만, 보통은 ‘nuclear umbrella’가 쓰입니다. 애초 이 용어를 번역한 표현이 ‘핵우산’입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도 이번 ‘워싱턴 선언’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중앙일보는 <[사설] 핵 억지 강화 워싱턴 선언첫 공동문서 실행이 중요하다>(4/27)에서 “워싱턴 선언은 의미가 크지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충분한 안전판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며 비판했고,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 <조선일보는 왜 한국 핵무장론에 목매는가>(1/12)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핵무장 여론을 띄우는 데 앞장섰던 조선일보는 <[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한 핵 족쇄는 강화됐다>(4/27)에서 워싱턴 선언을 ‘핵 족쇄’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 보도에서 워싱턴 선언에 대한 비판 논조가 강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주요 독자들이 원하는 바가 ‘실제 한미 동맹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한미 동맹이 강화된 것 같은 기분’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정체불명의 홍보성 문구가 아닌, 워싱턴 선언의 국제정치학적 맥락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설입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핵우산’, ‘확장억제’와 같은 용어만이라도 바로써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4월 27일 ‘워싱턴 선언’ 관련 기사

 

monitor_20230427_037.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