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_
일본 언론의 ‘윤석열 평가’, 물컵의 절반은 누가 채우나
이홍천(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일본연구소 소장·민언련 정책위원)
등록 2024.06.21 10:16
조회 189

정상화인가, 굴욕외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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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3월 1일 서울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지금 한일 양국은 아픈 과거를 딛고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 인권,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

 

2024년 3.1절 기념식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일관계 정상화를 중시하며 양국 간 현안 해결에 힘썼지만, 대일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이전 대통령과는 물론이고 국민 여론과도 괴리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 대신 한국 기업의 자금으로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고 밝힌 일본 국가안보전략 문서에 대해 “일본 쪽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문제없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두둔하며, 오염수 방류 대응 예산 7400억 확대 편성을 발표했다.

 

특히 강제징용 해결방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며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우라고 했다. 발표 열흘 만인 3월 16일에는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12년 만의 셔틀 정상외교를 부활시켰다.

 

‘물컵 절반 채웠다’에 대한 일본 언론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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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의 국기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을 다룬 일본 주요 신문 사설 및 공영방송 NHK 보도를 분석해 보면, 아사히신문과 주간 동양경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며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산케이신문은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NHK는 중립적 입장에서 양국의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고, 마이니치신문은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 양면성을 지적했다. 닛케이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6월 3일자 <지속가능한 한일관계로, 발등에 불 인식차이 극복하는 논의를>에서, 지난 2년간 한일 관계는 극적으로 개선되었다는 일본 정부 관계자 평가를 전했다.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없이는 협력이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2023년 3월 23일자 오피니언 <한일의 미래>에서 “(징용공 문제 해결에) 가해자 일본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지 않고, 일본 정부도 관여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피해자가 요구한 것이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국 정부가 내세운 통 큰 양보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로 보일 수 있다면서도 ‘아직 반 컵’에서 ‘벌써 반 컵’으로 인식을 바꾸면 큰 변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올해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로 인해 일본 정부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재가 연임하기 위해서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한국에 우호적 입장을 취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양국 간 현안이 해결되어 가는 것은 기쁜 일이라면서도 ‘강제징용’은 한국 측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한국의 새로운 대일 정책은 여러 비판점이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2023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단죄한 것은 승복할 수 없다”며 징용공 문제에 일본 측의 죄는 없다고 주장했다.

 

닛케이신문은 2023년 3월 2일자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징용공 문제 해법이 한일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특히 ‘안보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기시다 총리에게 징용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행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의 일방적 양보와 일본 언론의 침묵

 

‘물컵의 반’이라는 표현은 한국이 먼저 절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호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이는 한국의 일방적 행동일 뿐이다. 일본이 반드시 호응해야 한다는 책임은 없다. 한국의 ‘통 큰 양보’에 대한 일본 언론의 평이한 논조는 일본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일본 언론은 겉으로는 윤 대통령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지만, 정작 우리도 한 발 물러서자고 일본 정부나 국회에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케이신문처럼 ‘군국주의 침략국’ 표현을 지적하거나, 강제징용은 한국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일본 기업에게는 죄가 없다고 일축하기도 한다.

 

사실 ‘물컵의 반’이라는 표현도 일본 언론은 쓰지 않는다. 2023년 3월 이후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말을 쓸수록 일본도 한국의 요구에 호응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해지고, 일본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할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에 일본 정부나 정치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일본 언론은 질문하지 않는다. 묻지 않으니 관련 보도는 없다. 대신 반응 없는 일본에 대한 한국의 초조감, 부정 여론을 소개하거나 윤 대통령의 연설이나 발언을 문제 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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