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회원인터뷰] 알릴 가치가 있으면, 알릴 용기도 필요하다 (김경래 회원)
등록 2016.09.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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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제선 홍보부장
영상 안효광 활동가
동행 김언경 사무처장

 

직업이 기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누군가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먼저 생각날 테고, 진실을 파헤치는 지사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이번 달에 만난 김경래 회원은 둘 다 아니다. 첫인상은 유쾌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를 만나기 전 두차례 방송사 파업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고, 중징계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실제 인상은 ‘지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냥 동네에서 오다가다 만날 법한 인상 좋고 사람 좋은 아저씨를 만났다. 보람을 느끼면서 재미있게 기자 생활을 하고 싶어 <뉴스타파>에서 일한다는 김경래 회원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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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삼성이고, 이건희였다

 

김경래 기자를 만난 날은 지난 8월 4일. 2주 전인 7월 21일 김경래 회원은 심인보 기자와 함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보도했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는 성역인 삼성. 그리고 성역 중에서도 성역인 이건희. 그의 불법적이면서도 부적절한 치부를 들춘 보도였다. 

 

많은 사람이 삼성에 두려움을 느낀다. 삼성은 왠지 대단한 것 같고, 삼성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알 수 없는 위압감으로 다가온다. <뉴스타파> 최승호 PD는 보도 당일 아침 페이스북에 ‘시민들의 가호가 필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상대는 삼성이었고, 이건희였다. 그도 동료가 맡은 ‘두려움의 냄새’를 느끼지는 않았을까.

 

그는 “삼성이라는 조직이 미행이나 휴대전화 감청 같은 일을 벌인 적이 있어서 공포까지는 아니었지만, 걱정이 들긴 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실제 그가 어떤 구체적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취재 시작부터 끝까지 내용이 새어나가지 않기 위해 여느 때보다 보안에 더 신경을 쓰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동영상 분석은 호텔에서 했다. 보안도 보안이었지만, 야한 동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는 일을 사무실에서 하기는 좀 이상하지 않겠냐며 웃음을 지었다. 

 

 

여론에 밀려 한 방에 훅 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취재를 하면서는 보도 후를 더 걱정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했다. 보도를 언론사 단 한 곳도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성매매에 너그러운(?) 시각도 걱정되었다. ‘진보’ 매체가 별일 아닌 일로 ‘위대한 기업인’에게 상처를 내느냐는 질타와 어떤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느냐는 의혹 제기와 같은 근거 없는 비난도 신경이 쓰였다. 

 

삼성이라는 기업, 그리고 그 총수가 벌인 부적절하고 불법적인 행위. 그 불법에 기업 조직이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혹 제기가 모두 묻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취재를 시작했을 때의 선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여론 재판이 열려 오히려 나쁜 놈들로 매도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이 보도 하나로 뉴스타파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활동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말 그대로 ‘이 건 하나로 훅 가는 것’은 아닐까 우려했다. 삼성에 대한 막연한 공포보다 시청자들과 시민들에게 취재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고 오히려 왜곡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관련 보도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받아서 보도했고, 여러 온라인 매체들도 보도했다. 물론 방송과 보수신문들은 본질에 벗어난 보도로 면피하는 수준에 그쳤다. 보도 당일 뉴스타파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유튜브 조회 수는 무려 100만 회가 넘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뉴스타파의 협조가 없으면 성매매 혐의 수사가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수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성매매 의혹 동영상이 촬영된 ‘논현동 빌라(김인 전 삼성SDS 사장 명의로 전세계약이 되어 있다)’ 전세 계약 때 ‘대기업 임원’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계약을 했다는 증언도 후속 취재로 밝혀냈는데 말이다. 우물쭈물하는 경찰을 보니 삼성에 대한 두려움은 실재한다는 느낌이다. 

 

 

성매매 의혹 동영상은 전체 퍼즐의 일부, 전체 그림을 맞춰보고 싶다

 

그는 처음 동영상을 받았을 때, 그리고 취재를 하면서 동영상은 전체 그림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직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그릴 수 없지만 말이다. 첫 보도 이후 다양한 제보를 받았다. 그래서 성매매 의혹에서 파생되는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후속 취재를 준비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나머지 그림을 마저 맞춰 볼 생각이다. 공익적인 목적도 있지만, 기자로서의 강한 호기심이 당긴다는 이유도 있다. 김경래 회원이 맞출 퍼즐은 어떤 그림일까, 퍼즐이 맞춰질 수는 있을까. 일단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기다려 보자. 

 

 

보람이 있어야 재미도 있다

 

김경래 회원의 이전 직장은 KBS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공영방송 기자를 그만 뒀다. “KBS를 그만 둘 때 ‘탄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보는 분들도 있다. 일부는 사실이지만 그만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징계는 받았지만 해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 마음먹으면 여유를 즐기며 직장 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유 있는 직장 생활을 할 것이냐, 재미있는 인생을 살 것이냐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런 생각 중에 ‘어차피 한 번 사는 데 재미있게 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기자로 살 거라면 기자 생활 재미있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재미가 있으려면 보람이 있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뉴스타파>가 보람과 재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살면 사는대로 그냥저냥 살 것 같았다. 나를 강제하기 위해 뉴스타파라는 환경에 들어왔다.” 그는 재미있는 기자라는 인생을 살기 위해 <뉴스타파>라는 공간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은 것이다.

 

 

다른 언론을 바라는 시민 열망의 결집체 <뉴스타파>

 

<뉴스타파>의 시작은 폭발적이었다. <뉴스타파> 첫 회는 ‘진짜 뉴스가 나타났다’는 평가와 함께 1주일 만에 조회 수 30만을 기록했다.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으로 언론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대거 해직되었고, 공영방송은 정신을 못 차린 채 망가진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취재하는 언론에 대한 시민의 열망도 커졌다. 

물론, 우리 사회에 괜찮다는 평가를 받는 매체도 있다. 그런데도 왜 시민들은 <뉴스타파>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뉴스타파>를 만든 기자들 개개인이 가진 브랜드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전에 보여줬던 방송에 대한 신뢰가 <뉴스타파>에게로 옮겨간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김경래 회원은 더 보탠다. “우리 사회에 좋은 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 매체들이 보여준 것 이상을 시민들이 바라는 것 같다.” 기존 주류 언론이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자뻑’ 같은 말이지만, 이번 이건희 보도와 같은 보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류 언론은 사실 이번 보도를 하기 어렵다. 흔히 생각하는 광고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성매매 의혹과 같은 스토리를 공개하는 데 부담이 있다.” 보도해도 괜찮은지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조직 논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뉴스타파>도 이건희 보도를 할지 말지를 토론을 많이 벌였다. 김경래 회원의 기준은 ‘보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였다.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론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김경래 회원이 생각하는 <뉴스타파>의 존재가치는 ‘주류 매체가 하지 못하는 다른 보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자원을 많이 들여야 하는 탐사보도일 수도 있고, 기자로서 보도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나만으로도 보도 할 수 있는 용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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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해 취재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자부심

 

김경래 회원에게 <뉴스타파>는 공영방송 기자일 때와는 또 다른 부담감을 주면서 자부심도 주고 있다. KBS는 수신료로 방송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시청자와의 거리는 멀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시민의 후원금으로 방송을 만들기 때문에, 직접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크게 받는다. 후원회원 덕에 방송을 만들 수 있고,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온전하게 시청자를 위해 복무할 수 있다는 느낌이 커졌다. 

 

물론, 그 느낌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없는 살림을 아껴 후원한다는 회원들의 사연을 접하면 부담감이 커지지만, 그 부담은 다시 제대로 보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

 

 

99년 언론학교 수강, 10년 후에 가입한 ‘늦깎이 회원’

 

김경래 회원과 민언련과 인연은 1999년부터다. 당시 기자를 지망하는 대학 졸업반이었을 때 언론학교를 들었다. 언론학교를 함께 들었던 같은 조원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나는 막역한 사이다. 6월 회원 인터뷰에서 소개했던 정은경 회원과 같은 조여서 지금까지 만난다. 

 

그러나 그는 10년이 흐른 2008년에서야 회원 가입을 했다. ‘언론학교를 들었으면 바로 회원 가입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김경래 회원이 답한다. “사실 그때는 강사진이 좋아 언론학교만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2008년 KBS에서 <미디어포커스>를 맡으면서 뒤늦게 민언련 회원이 되었다. <미디어포커스>를 하면서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고 후원까지 이어졌다. 

 

김경래 회원 스스로 평가하기를 그 전에는 평범한 기자였다면, <미디어포커스>를 하면서 직업관 자체가 달라졌다고 한다. 사실 <미디어포커스>라는 프로그램은 기자사회에서 기자가 기자를 ’조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처음에는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미디어포커스>를 하면서 ‘좋은 기사와 좋은 기자, 좋은 언론’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제야 민언련의 그동안 노력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 민언련 활동은 ‘당연한 활동’이다. 언론이 존재하는데 시청자와 독자의 눈으로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재미를 찾기 어려운 언론 모니터를 묵묵히 하는 민언련을 보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지겨운 일을 어떻게 쉬지 않고 해왔는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에게 민언련은 ‘지겨운 일’을 지치지 않고 해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민언련 활동은 지속해야 하고,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민언련을 지켜준 회원들이 우리 사회에 참 소중한 분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바꾸는 일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람 있고 재미있는 기자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경래 기자. 그가 우리 회원이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