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안녕들 하신가요, 우리?" (2013년 12호)
등록 2014.01.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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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신가요, 우리?"



김경실 부이사장 



“정치적인 이유로 소설 연재를 거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74명의 작가들이 거부 성명을 냈다. 권혁웅, 서효인, 심보선, 이이체, 한유주, 황인찬 등 작가 74명은 16일 ‘우리는 <현대문학>을 거부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같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현대문학>이 비상식적인 기준으로 작품을 제한하고 작가의 메시지를 검열한 것에 대해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며 “우리는 <현대문학>에 우리의 글을 싣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거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뉴스1>의 기사입니다(이 내용은 12월 12일부터 경향신문을 비롯한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계속 읽어내려 갑니다. 


“작가 이제하는 한국으로 귀화한 어느 선교사를 다룬 장편소설 ‘일어나라, 삼손’을 <현대문학> 내년 1월 호부터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박정희 유신’과 ‘87년 6월 항쟁’이라는 단어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작가 정찬과 서정인 역시 1970년대 유신 시절 혹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해 <현대문학>에 연재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현대문학>은 지난 9월 호에 박근혜 대통령이 쓴 수필 네 편과 이를 크게 기린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바른 것이 지혜이다-박근혜의 수필 세계’라는 비평을 실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평론가 양경언은 <현대문학> 11월 호에 이 교수의 비평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평론을 썼다. 그러나 양숙진 주간의 요청으로 결국 해당 부분을 삭제해 게재했다고 전해졌다.....”


이것이 2013년 12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저로서는 그 어떤 뉴스보다 공포스럽게 다가옵니다. 다른 분야도 아닌 문학작품에 대한 검열이 “표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예지의 편집자가 현 정부의 눈치를 보며 ‘자기검열’에 들어갔다는 이 사안은 지금 우리 사회의 심장을 비추는 적나라한 거울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사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 주기에 여기에 더 이상의 설명을 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아, 결국은 여기까지 오는구나......’ 하는 탄식이랄까, 공포랄까, 허탈감이랄까, 뭐라고 꼭 집어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맘 깊은 곳에서 올라옵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시감’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소설이건 시이건 그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검열이 당연시되던 시절을 겪은 문인들은 “그 덕분에 우리나라 문학에 은유와 풍자와 알레고리의 기법이 풍성하게 발달했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 어떤 것이 은유인지, 알레고리인지 잘 분별할 수 없었던 ‘관계기관’의 편의를 위해, 어떤 작가들이 문제적 작품의 문제적 문장에 일일이 줄을 쳐서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 어떤 작가가 누구누구라더란 말도 종종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설마 그 시절이 다시 오지는 않겠지요. 설마 우리 문학사의 2010년대가, 유신 이후 우리 문학이 다시 검열의 칼날을 피해가기 위해 날랜 은유와 의뭉스런 풍자로 무기를 삼아야 하는 시절로 기록되지는 않겠지요. 훌륭한 작품을 쓴 작가들보다 용감한 행동을 한 작가들로 이 시대의 문학사를 채우게 되지는 않겠지요.


세밑이라서 그런지 이 기사에 뒤이어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한 편의 시가 따라붙습니다.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입니다.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1982년 시인은 바람의 말을 빌어 ‘부끄럽지 않은가’ 물었지만, 30년 뒤인 2013년 한 대학생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1982년 바람의 물음을 귓전으로 흘리며 늪으로 한 발자국 더 걸어들어갔던 사람들처럼 2013년의 우리도 ‘살기 위해 사는’ 일상의 늪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 어느 해보다 고통스럽게 시작했던 2013년의 끝에서 묻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앞으로도 안녕할까요, 우리?